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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정초본] 66권, 광해 5년 5월 6일 계해 10번째기사 1613년 명 만력(萬曆) 41년

박응서의 역모 사건이 무고였음을 말하는 사관의 논평

살피건대 박응서서양갑 등은 단지 강도짓을 한 2, 3명의 미천한 서얼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박응서가 도적질을 하다가 형을 받고 죽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나머지 역모(逆謀)했다고 무고하면서 대군에게 핑계를 대고 스스로 죄를 면해 보려고 하였던 것이다. 여기에 서양갑이 또 자기 가족들을 멸절시킨 국가를 원망한 나머지 대비에게 핑계를 돌리고 김제남을 끌어들여 임금의 뜻을 맞춘 다음 그 옥사를 확대시켜 국가를 전복하고 원수 갚을 계책을 꾸몄으니, 그야말로 응서가 말한 대로 ‘죽는다면 큰 이름을 날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원래 그의 속마음이었다. 그러다가 그 뒤에는 정협(鄭浹)이 또 하나의 계책을 꾸며내어 ‘응서서양갑이 공초한 것은 모두가 사실이 아니다.’고 하면서 대신과 명망있는 재신(宰臣)들을 모조리 끌어들여 같은 패거리라고 하였다.

아, 십여 인이 큰 일을 모의하면서 어떻게 삼중으로 논의를 하며 서로들 모르게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서양갑이 공초하면서 아무리 교묘하게 얽어들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윤남(吳允男)과 논의한 시말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그가 한번도 김제남을 만난 사실이 없었고 보면 김제남을 역적의 괴수라고 하는 것도 허탄한 일이다. 그리고 윤남의 처가 말한 것은 다만 재물을 공급해 줄 만한 개인적인 재화를 대비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을 뿐 이런 모의를 대비가 들었다는 말은 한번도 하지 않았고 보면 대비에 대해 밖으로 호응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긋나는 일이다. 왕이 안으로는 대군을 꺼리고 밖으로는 참소하는 말에 미혹되어 온갖 일을 더욱 얽어 확대시킨 것은 괴상하게 여길 것도 없다. 그런데 공경(公卿)과 좌우에 있는 신하들 역시 모두 화복(禍福)의 갈림길에서 마음이 동요된 나머지 팔을 걷어붙이고 천고에 없었던 역적이라고 탄식하면서도 적도의 조종에 놀아나는 것인 줄은 깨닫지 못한 채 마침내 강상(綱常)이 절멸되고 종사(宗社)가 거의 망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서양갑이 원수를 갚으려 했던 것도 이루어진 셈이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는가.


  • 【정족산사고본】 16책 66권 8장 B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2책 170면
  • 【분류】
    역사-사학(史學)

○按應犀羊甲等, 只是行刼二三賤孽也。 應犀恥以盜伏刑, 誣告逆謀, 托於大君, 以自解免。 羊甲又怨國家, 滅其身家, 托於大妃, 及引金悌男, 以中主意, 張大其獄, 以爲傾覆國家, 報敵讎怨之計。 正應犀所謂, 死則擧大名者, 本其心術也。 其後鄭浹, 又生一計, 以應犀羊甲所供, 爲皆非眞, 而盡引大臣名宰, 以爲同黨。 嗟乎! 豈有十餘人謀大事, 而乃有三層論議不相知者乎? 且羊甲之招, 雖甚巧構, 然不過與允男論議始末, 而渠未嘗一接悌男, 則謂悌男爲逆魁者誕也。 允男妻, 但言大妃有私藏可給財, 而未嘗言大妃聞此謀, 則謂大妃外應者悖也。 王內忌大君, 外惑讒言, 一切增加鍛鍊, 無足怪者。 公卿左右, 亦皆眩動於禍福, 扼腕歎息, 以爲千古所無之逆賊, 而不覺陷於賤捭闔之中, 遂致綱常殄絶, 宗社幾亡。 羊甲之仇亦報, 豈不痛哉?


  • 【정족산사고본】 16책 66권 8장 B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2책 170면
  • 【분류】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