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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정초본] 40권, 광해 3년 4월 10일 기묘 3번째기사 1611년 명 만력(萬曆) 39년

관학 유생 이무 등이 정인홍은 이언적과 이황을 무함하였으니 배척할 것을 청하다

관학 유생 이무(李楘) 등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이르기를,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 국정(國政)을 시작하신 뒤 맨 먼저 오현(五賢)의 신하들을 추장(推奬)하여 묘에 배향함으로써, 제기에 제물이 차려지고 사사(祀事)가 매우 분명해졌으니, 아, 문(文)이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어질거나 어리석은 자와 선하거나 악한 자들이 다들 제 소원을 이룬 셈이었으니, 그 누가 전하가 학문을 흥기시키고 문치(文治)를 숭상하는 성주(聖主)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진정 어진이를 해치며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고선 뉘라서 감히 허튼 말을 하여 욕을 하고 그 사이에서 엉뚱한 논의를 제 기하겠습니까.

신들이 삼가 들으니, 정인홍의 차자 중에 논한 바가 오로지 문원공(文元公) 이언적문순공(文純公) 이황을 공박하였는데, 거리낌없이 헐뜯어 욕하고 온통 음험하고 참혹한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뭇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전하면서 그를 비난하는 국언(國言)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신들이 그 글은 보지 못하였고 그 대개만을 들었으니, 비록 차자 중에 논한 바가 과연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현(大賢)이 무함을 당하자 사류(士類)가 일제히 분함을 느끼어 마치 메아리가 울려 퍼지듯이 서로 의논하는 일이 없는데도 똑같은 말로 들고 일어나니, 천리와 인심은 정말이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신들이 고심하다가 부득불 덕언(德言)을 들어 주시는 성상께 한번 호소하게 된 이유입니다.

아, 오늘날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고, 입는 옷과 하는 말이 오랑캐의 범주에 빠져들지 않게 된 것은, 모두가 두 신하의 공입니다. 더구나 이황은 생전의 행실이 독실하여 뭇 어진이를 집대성한 인물이니, 그가 지난날을 계승하고 후세를 개도(開導)한 공로를 따지면, 실로 우리 나라의 주자(朱子)인 셈입니다. 이는 모두가 세상에서 영원히 의귀할 바이자, 전하께서 환히 살피고 있는 일입니다.

신들은 인홍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치우친 견해를 고집하면서 튕겨나와 우쭐대었습니다. 그러다가 감히 방자하게 헐뜯어 무함하고 무엄하게 짓밟아 뭉갬으로써, 위로 천청(天聽)을 현혹시키고 아래로 인심을 거슬리어, 자기만의 사적인 견해를 가지고서 일국의 공적인 여론을 덮어 가리면서, 진실을 어지럽히는 의논을 제기하여 올바른 자를 해치고자 하는 꾀를 부렸으니, 역시 통한스럽지 않겠습니까.

아,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이 작다고 말을 하는 것은, 하늘이 작은 것이 아닙니다. 인홍이 두 선현을 작게 여기는 것이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을 작게 여기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인홍의 말은 입에 올릴 거리도 못되고 그와 더불어 곡직 시비를 따지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또한 인홍의 말이 전하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전하께서 또한 명쾌히 분변하시어 통쾌하게 거절하실 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사특한 말이 아침에 상주(上奏)되자 뭇사람의 분노가 저녁에 당장 비등하여, 사람들은 전하께서 즉시 그 견해를 물리치어 호오(好惡)를 분명히 보이실 것이라고 여기면서 차자가 내려지기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더니 반달이나 오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선비들의 분노는 갈수록 격렬해지고 백성들의 의혹이 갈수록 깊어진 나머지, 어쩔줄 모르고 억울함을 느끼면서 침식을 잊을 정도에 이름으로써, 배운 것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까지도 너나없이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신들은 유학을 숭상하고 도(道)를 중시하는 오늘에, 이렇게 사특한 기운이 싹틀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어제 저녁에 삼가 정원에 내린 비답을 보건대, 정원이 그 차자를 이미 보았으면 정원의 계사는 누가 봐도 늦었다고 할 것인데, 전하께서는 도리어 이르다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은 각자 소견이 있는 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신들이 더욱 심하게 의혹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 두 선현의 도는 곧 공자·맹자·정자·주자가 전한 도입니다. 두 선현의 도가 밝혀지지 아니하면 공자·맹자·정자·주자의 도도 사라지게 될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한시바삐 그 차자를 내리어 안팎에 게시함으로써, 사리에 어긋나고 엉뚱하게 어지럽히는 설이 하루라도 하늘의 해 아래에 용납되지 못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양(陽)을 붙들어 세우고 음(陰)을 눌러 억제하여 사특하고 음험한 것을 내쫓아 사라지게 함으로써, 백성들의 의혹을 풀고 선비들의 분노를 풀어주신다면, 전하께서 학문을 흥기시키고 문치(文治)를 숭상하는 교화가 시종 일관 변하지 않게 되어 국가의 다행이자 사문(斯文)의 다행이 될 것입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소의 내용은 모두 살펴보았다. 다만 정 찬성(鄭贊成)035) 은 시골에서 독서하는 선비로 평생동안 도를 지키면서 흔들림이 없이 살아왔다. 차자 속에서 진달한 바는, 그 스승이 알아줌을 받지 못한 실상을 따져 밝히려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 또한 군자로서의 생각이니, 공박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제생(諸生)은 물러가 자수(自修)하고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 【정족산사고본】 10책 40권 4장 A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1책 619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물(人物) / 사법-탄핵(彈劾)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035]
    정 찬성(鄭贊成) : 정인홍을 가리킴.

○館學儒生李楘等上疏, 其略曰

伏以殿下卽之後, 首奬五賢之臣, 以配大烹之享, 籩豆有踐, 祀事孔明, 噫! 文不在玆乎? 賢愚善惡, 咸得其心, 孰不曰殿下興學右文之聖主也? 苟非戕賢媢嫉之人, 孰敢妄言罵詈, 橫議於其間也? 臣等竊伏聞, 鄭仁弘箚中所論, 專攻文元公李彦迪文純公李滉, 毁訾無忌, 滿紙陰慘。 衆口喧傳, 國言未已。 臣等未見其辭, 徒得其槪, 雖不知箚所論, 果如何也, 大賢受誣, 士類齊憤, 不謀同辭, 如響赴聲, 天理人心,果不可誣也。 此臣等之所以痛心疾首, 不得不一籲於聽德之聰也。 嗚呼! 今日之所以君君臣臣父父子子, 而不至於左衽其服, 侏𠌯其言者, 皆二臣之切。 而況此李滉, 踐履篤實, 集群賢而大成, 則其繼往開來之功, 實我東方朱子也。此皆百世之所依歸, 殿下之所洞燭也。 臣等不知仁弘何如人也, 執拗偏滯, 引而自高, 乃敢肆然醜詆, 踐踏無嚴, 上惑天聽, 下拂人心, 欲以自己之私是, 而掩一國已定之公是, 提起亂朱之談, 以爲毒正之計, 不亦痛乎? 嗚呼! 坐井而觀天曰, 天小者, 非天小也, 仁弘之小兩賢, 不幾於坐井而小天者乎? 固知仁弘之言, 不足掛諸齒牙, 而羞與之較曲直辨皂白, 亦知仁弘之言, 不入殿下之耳, 而殿下亦將明辨而痛絶之矣。 然念邪說朝奏, 衆怒夕騰, 人以爲殿下,卽黜其說, 明示好惡, 翹足佇待, 箚下而一日二日, 至於半月之久, 而漠然無聞。 多士之憤, 久而愈激, 國人之惑, 久而愈深, 彷徨鬱抑, 忘寢與食, 以曁愚夫愚婦, 厮養下賤, 莫不齎咨。 臣等不圖崇儒重道之日, 有此邪氣之蘗也。 況於昨夕, 伏見答政院之批, 政院旣見其箚, 則政院之啓, 亦云晩矣。 殿下反以爲早, 且以人各有見爲敎。 臣等之惑,抑有甚焉。 嗚呼! 二賢之道, 卽所傳之道也。 二賢之道不明, 則 之道, 亦幾乎熄矣, 伏願殿下, 亟下其箚, 揭示中外, 使悖理胡亂之說, 不得一日容隱於天日之下。 扶陽抑陰, 息邪放淫, 以解國人之惑, 以解多士之憤, 則殿下興學右文之化, 終始不替, 而國家幸甚, 斯文幸甚

答曰: "疏辭具悉。 但鄭賛成, 乃林下讀書之人, 平生守道不撓。 箚中所陳, 不過辨明其師不見知之實而已。 此亦君子之意也, 有何攻破之事乎? 諸生, 退而自守, 勿爲煩論。"


  • 【정족산사고본】 10책 40권 4장 A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1책 619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물(人物) / 사법-탄핵(彈劾)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