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 대비가 왕을 폐하여 광해군으로 삼고 금상으로 왕위 계승케 하다
대왕 대비가 왕을 폐하여 광해군(光海君)으로 삼고 이지를 서인(庶人)으로 삼고, 금상을 책명하여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는데, 그 교지는 다음과 같다.
"소성정의 왕대비(昭聖貞懿王大妃)는 다음과 같이 이르노라. 하늘이 많은 백성을 내고 임금을 세우게 하신 것은 인륜을 펴고 법도를 세워 위로 종묘를 받들고 아래로 백성을 잘 다스리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선조 대왕(宣祖大王)께서 불행하게도 적자(適子)가 없으시어 일시의 권도에 따라 나이의 순서를 뛰어넘어 광해(光海)를 세자로 삼았다. 그런데 그는 동궁에 있을 때부터 잘못하는 행위가 드러났으므로 선조께서 만년에 몹시 후회하고 한스럽게 여기셨고, 그가 왕위를 계승한 뒤에는 도리어 어긋나는 짓을 그지없이 하였다. 우선 그 중에서 큰 죄악만을 거론해 볼까 한다. 내가 아무리 덕이 부족하더라도 천자의 고명(誥命)을 받아 선왕의 배필이 되어 일국의 국모 노릇을 한 지 여러 해가 되었으니 선조의 아들이라면 나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광해는 남을 참소하고 모해하는 자들의 말을 신임하고 스스로 시기하고 혐의하는 마음을 가져 우리 부모를 형벌하여 죽이고 우리 일가들을 몰살시켰으며 품속에 있는 어린 자식을 빼앗아 죽이고 나를 유폐하여 곤욕을 치르게 하였으니, 그는 인간의 도리가 조금도 없는 자이다. 그가 이러한 짓을 한 것은 선왕에게 품었던 유감을 풀려고 한 것인데 미망인에 대해서야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그는 형과 아우를 살해하고 조카들을 모조리 죽였으며 서모(庶母)를 때려 죽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여러 차례 큰 옥사를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가혹하게 죽였고, 민가 수천 호를 철거시키고 두 궁궐을 창건하는 데 있어 토목 공사의 일이 10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선왕조의 원로 대신들을 모두 축출시키고 인아(姻婭)·부시(婦寺)들로서 악한 짓을 하도록 권유하는 무리들만을 등용하고 신임하였으며, 정사를 하는 데 있어 뇌물을 바친 자들만을 기용했으므로 무식한 자들이 조정에 가득하였고 금을 싣고 와서 관직을 사는 자들이 마치 장사꾼이 물건을 흥정하듯이 하였다. 그리고 부역이 많고 수탈이 극심하여 백성들이 살 수가 없어서 고난 속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으니, 국가의 위태로움은 말할 수 없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우리 나라가 중국을 섬겨온 지 2백여 년이 지났으니 의리에 있어서는 군신의 사이지만 은혜에 있어서는 부자의 사이와 같았고, 임진년에 나라를 다시 일으켜준 은혜는 영원토록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선왕께서 40년 간 보위에 계시면서 지성으로 중국을 섬기시며 평생에 한 번도 서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으신 적이 없었다. 그런데 광해는 은덕을 저버리고 천자의 명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배반하는 마음을 품고 오랑캐와 화친하였다. 이리하여 기미년001) 에 중국이 오랑캐를 정벌할 때 장수에게 사태를 관망하여 향배(向背)를 결정하라고 은밀히 지시하여 끝내 우리 군사 모두를 오랑캐에게 투항하게 하여 추악한 명성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 온 중국 사신을 구속 수금하는 데 있어 감옥의 죄수들보다 더하였고, 황제가 칙서를 여러 번 내렸으나 군사를 보낼 생각을 하지 아니하여 예의의 나라인 우리 삼한(三韓)으로 하여금 이적 금수의 나라가 되는 것을 모면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가슴 아픈 일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천리(天理)를 멸절시키고 인륜을 막아 위로 중국 조정에 죄를 짓고 아래로 백성들에게 원한을 사고 있는데 이러한 죄악을 저지른 자가 어떻게 나라의 임금으로서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으며, 조종의 보위에 있으면서 종묘·사직의 신령을 받들 수 있겠는가. 이에 그를 폐위시키노라.
능양군(綾陽君) 이종(李倧)은 선조대왕의 손자이고 정원군(定遠君) 이부(李琈)의 첫째 아들인데 총명하고 효성스러우며 비상한 의표를 지니고 있으므로 선조께서 특별히 사랑하시어 궁중에서 키우게 하셨고 그에게 종(倧) 자의 이름을 지어주신 데에는 은미한 뜻이 있었던 것이며, 용상에 기대어 계실 때 그의 손을 잡고 탄식하시며 여러 손자들보다 특별한 관심을 가졌었다. 그런데 이번에 대의를 분발하여 혼란스러운 조정을 토평하고 유폐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는 나를 구해냈으며 나의 위호(位號)를 회복시켜 주어 윤기(倫紀)가 바르게 되고 종묘 사직이 다시 편안하게 되었다. 공덕이 매우 성대하여 신명과 인민이 그에게 귀의하고 있으니 보위에 나아가 선조대왕의 후사를 잇게 하노라. 그리고 부인 한씨(韓氏)를 책봉하여 왕비로 삼노라. 이리하여 교시하노니, 모두 알라."
- 【태백산사고본】 64책 64권 64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498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01]기미년 : 1619 광해군 11년.
○癸亥三月十四日甲辰大王大妃命廢王, 爲光海君, 祬爲庶人, 策命今上嗣位。 其敎曰, 昭聖貞懿王大妃若曰: "天生烝民, 樹之后辟, 蓋欲使敍彝倫、立經紀, 上奉宗廟, 下安黎庶也。 宣祖大王, 不幸無適嗣, 因一時之權, 越長少之序, 以光海爲儲貳。 旣在春宮, 失德彰著, 宣祖晩節, 頗有悔恨, 及至嗣位之後, 反道悖理, 罔有紀極。 姑擧其大者, 予雖不德, 祗受天子之誥命, 爲先王之配體, 母儀一國, 積有年載, 夫爲宣廟子也者, 不得不以予爲母, 而光海聽信讒賊, 自生猜隙, 刑戮我父母, 魚肉我宗族, 懷中孺子, 奪而殺之, 幽廢困辱, 無復人理。 是蓋逞憾於先王, 又何有於未亡人? 至戕兄殺弟, 屠滅諸姪, 㩧殺庶母, 屢起大獄, 毒痛痡無辜, 撤民家數千區, 創建兩闕, 土木之功, 十年未已。 先朝耆舊, 斥逐殆盡, 惟姻婭、婦寺逢惡從臾之徒, 是崇是信, 政以賄成, 昏墨盈朝, 輦金市官, 有同駔驓。 賦役煩重, 誅求無藝, 民不堪命, 嗷嗷塗炭, 宗社之危, 若綴旒然。 不唯是也, 我國服事天朝, 二百餘載, 義則君臣, 恩猶父子。 壬辰再造之惠, 萬世不可忘也。 先王臨御四十年, 至誠事大, 平生未嘗背西而坐。 光海忘恩背德, 罔畏天命, 陰懷貳心, 輸款奴夷, 己未征虜之役, 密敎帥臣, 觀變向背, 卒致全帥師投虜, 流醜四海。 王人之來我國, 拘囚覊縶, 不啻牢狴, 皇勅屢降, 無意濟師, 使我三韓禮義之邦, 不免夷狄禽戰之歸, 痛心疾首, 胡可勝言? 夫滅天理、斁人倫, 上以得罪於皇朝, 下以結怨於萬姓, 罪惡至此, 其何以君國子民, 居祖宗之天位, 奉廟社之神靈乎? 玆以廢之。 綾陽君某, 宣祖大王之孫定遠君某第一子也, 聰明仁孝, 有非常之表, 宣廟奇愛之, 養于宮中, 命名之意, 厥有微旨, 憑几之際, 握手歔唏, 屬意深重, 異於諸孫。 今者奮發大義, 討平昏亂, 脫予囚辱, 復予位號, 倫紀得正, 宗社再安。 功德甚懋, 神人所歸, 可卽大位, 以繼宣祖 大王之後, 冊夫人韓氏爲王妃。 故玆敎示, 想宜知悉。"
- 【태백산사고본】 64책 64권 64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498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