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이 일어나자 도망하여 의관 안국신의 집에 숨다
왕이 대신·금부 당상·포도 대장을 부르게 하고, 또 도승지 이덕형(李德泂), 병조 판서 권진을 입직하게 하였다. 【이반의 상소를 올렸으나 왕이 여러 여인들과 어수당(魚水堂)에서 연회를 하며 술에 취하여 오랜 뒤에야 그 상소를 보았는데, 역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이에 유희분·박승종이 두세 번 비밀리에 아뢰어 속히 조사하게 할 것을 청하였으므로 이 명을 내렸다. 대신 이하 관원들이 대궐에 나갔으나 대궐문이 벌써 닫혔으므로 비변사에 모였는데, 비변사 당상들도 와서 모였다. 】 도감 대장 이흥립(李興立)은 군사를 거느리고 궁성(宮城)을 호위하게 하고, 【흥립은 박승종의 사돈으로서 그의 추천으로 직임을 제수받았는데 이 때 은밀히 반정군과 합세하였다. 】 천총 이확(李廓)을 보내어 창의문(彰義門) 밖을 수색하게 하였다. 【이반이 문 밖에 반정군이 주둔해 있다고 고했기 때문이었다. 이확이 명령을 받고 즉시 시행하지 않았는데 이 때 밤이 이미 자정이 지났다. 】 이날 금상(今上)은 연서역(延曙驛) 마을에 주둔하였는데, 대장 김류(金瑬), 【이때 전 강계 부사(江界府使)로 집에 있었다. 】 부장 이귀 【이때 전 평산 부사로서 논핵을 받아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 등은 최명길(崔鳴吉) 【전 병조 좌랑. 】 ·김자점·심기원 【유생. 】 등과 홍제원(弘濟院) 터에서 모였고, 장단 방어사(長湍防禦使) 이서(李曙)는 부하 병사를 거느리고 왔고, 이괄(李适) 【북병사(北兵使)에 제수되었는데 떠나지 않았다. 】 ·김경징(金慶徵) 【전 찰방인데 김류의 아들이다. 】 ·신경인(申景禋) 【도총도사(都摠都事). 】 ·이중로(李重老) 【이천 방어사(伊川防禦使). 】 ·이시백(李時白)·이시방(李時昉)· 【유생인데 이귀의 아들이다. 】 장유(張維) 【전 한림. 】 ·원두표(元斗杓)·이해(李澥) 【유생. 】 ·신경유(申景𥙿) 【무신인데 전 부사이다. 】 ·장신(張紳)·심기성(沈器成)·송영망(宋英望) 【유생. 】 ·박유명(朴惟明)·이항(李沆) 【무신. 】 ·최내길(崔來吉) 【사예. 】 ·한교(韓嶠) 【전 현감. 】 ·원유남(元𥙿男) 【전 병사. 】 ·이의배(李義培) 【무장. 】 ·신경식(申景植) 【전 현감. 】 ·홍서봉(洪瑞鳳) 【전 승지. 】 ·유백증(兪伯曾) 【전 좌랑. 】 ·박정(朴茢) 【승문원 정자. 】 ·조흡(趙潝) 등이 모두 와서 모였다. 문무 장사(將士) 2백여 명이 【군사는 모두 1천여 명이었다. 】 밤 3경에 창의문으로 들어가 【전날부터 바람이 불고 운애가 끼어 성안이 낮에도 어두웠었는데 반정군이 문 안으로 들어오자 갑자기 바람이 멈추고 구름이 걷혀 달빛이 대낮처럼 밝았다. 】 창덕궁 문 밖에 도착했을 때 이흥립이 지팡이를 버리고 와서 맞이했고 이확은 군사를 이끌고 후퇴하였다. 그리고 대신 및 재신(宰臣)들은 군대의 함성소리를 듣고 모두 흩어져 도망갔다.
김류 등이 단봉문(丹鳳門)을 열고 들어갔고, 상이 구굉(具宏) 【무장. 】 ·심명세(沈命世) 【유생. 】 ·홍진도(洪振道) 【전 현감. 】 등과 함께 잇달아 도착하였는데 김류가 인도하여 인정전 서쪽 뜰 위에 가서 동향하여 호상(胡床)에 앉았고 여러 장사들이 줄지어 시위하고 있었으며, 궁 안의 시위 장졸은 모두 흩어졌다. 【입직 승지 이덕형·정립(鄭岦), 형방 승지 박홍도, 좌우 사관과 선전관 등이 처음 군대의 함성을 듣고 침전의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 시위할 것을 청하였으나 궁중에서 대답이 없었고 시신(侍臣)들도 모두 흩어졌다. 이때 승지 유진증(兪晉曾)·권규기(權奎己)·민성징(閔聖徵)은 집에 있었다. 】 왕이 북쪽 후원의 소나무숲 속으로 나아가 사다리를 놓고 궁성을 넘어갔는데 【평상시에 궁인들이 후원에 긴 사다리를 설치하여, 밤에 출입하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는데 왕이 이 사다리를 사용하여 궁성을 넘어갔다. 】 젊은 내시가 업고 가고 궁인 한 사람이 앞에서 인도하여 사복시 개천가에 있는 의관 안국신(安國信)의 집에 숨었다. 【왕이 국신의 집 사람인 정담수(鄭柟壽)로 하여금 나가서 변란이 일어난 것에 대해 탐지하게 하였는데, 담수가 돌아와서 들은 것이 없다고 아뢰니, 왕이 말하기를 "혹시 이이첨이 한 짓이 아니던가." 하였다. 왕이 이때 임취정(任就正) 등을 신임하여 이첨의 권세를 억제하려고 했었는데 유희분이 은밀히 왕에게 아뢰기를 "이첨의 세력이 너무도 높으니 그가 꺾임을 받지 않고 변란을 일으킬 계략을 가질듯 합니다."라고 했기 때문에 왕이 의심했던 것이다. 】 그리고 세자 이지(李祬)는 왕을 뒤쫓다가 찾지 못하고 장의동(莊義洞) 민가에 숨었다.
- 【태백산사고본】 64책 64권 64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496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王命召大臣、禁府堂上、捕盜大將, 又命都承旨李德泂、兵曹判書權縉入直。 【而攽疏上, 王方與諸姬, 燕酣魚水堂, 久而方見其疏, 亦不以爲意。 柳、朴家祕啓再三, 請速究之, 故遂下是命。 大臣以下詣闕, 闕門已閉, 遂會于備邊司, 備邊司堂上亦來會。】 都監大將李興立, 領兵扈衛宮城, 【興立, 本朴承宗姻家, 爲其薦任, 至是密與義師合。】 遣千摠李廓, 搜彰義門外。 【而攽告兵屯門外故也。 廓受令不卽行, 時夜已半矣。】 是日今上出次延曙驛村, 大將金瑬【時以前江界府使, 家居。】、副將李貴【時以前平山府使, 被劾待命。】 等與崔鳴吉【前兵曹佐郞。】、金自點、沈器遠【儒生。】 等會于弘濟院基, 長湍防禦使李曙領所部來赴, 李适【北兵使, 未行。】、金慶徵【前察訪, 瑬之子。】、申景禋【都摠都事。】、李重老【伊川防禦使。】、李時白、李時昉【儒生, 貴之子。】、張維【前翰林。】、元斗杓、李澥【儒生。】、申景𥙿【武臣, 前府使。】、張紳、沈器成、宋英望【儒生。】、朴惟明、李沆【武臣。】、崔來吉【司藝。】、韓嶠【前縣監。】、元𥙿男【前兵使。】、李義培【武將。】、申景植【前縣監。】、洪瑞鳳【前承旨。】、兪伯曾【前佐郞。】、朴炡【承文正字。】、趙潝等皆來會。 文武將士二百餘人, 【兵合千餘人。】 夜三鼓, 入自彰義門【自前日風霾, 城中晝晦。 及義師入門, 忽風止雲霽, 月色如晝。】 進至昌德宮門外李興立放仗來迎李廓引兵退次。 大臣諸宰聞軍聲皆逬散。 瑬等遂開丹鳳門以入。 上與具宏【武將。】、沈命世【儒生。】、洪振道【前縣監。】等繼至。 瑬引至仁政殿西階上, 東向坐胡床, 諸將士列侍, 宮內侍衛將卒皆散。 【入直承旨李德泂・鄭岦、刑房承旨朴弘道, 與左右史、宣傳官等, 初聞軍聲, 叩寢門, 呼請入衛, 宮中不應, 侍臣亦避匿。 時承旨兪晉曾、權奎己、閔聖徵在家。】 王從北苑松林中, 設梯踰宮城。 【常時宮人設長梯于苑中, 以便夜間出入, 王用是梯踰城。】 有小宦負之而行, 一宮人前導, 匿于司僕渠邊醫官安國信家。 【王使國信家人鄭柟壽, 出探變事, 柟壽還白以無所聞。 王曰: "儻非爾瞻耶?" 蓋王方仗任就正等, 欲抑爾瞻權勢, 柳希奮密白王曰: "爾瞻勢已, 亢恐不受挫, 宜有亂略。" 故王疑之。】 世子祬追王不得, 竄匿于莊義洞民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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