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수비를 인정전에서 접견하여 요광의 함몰 등 변방의 정세를 논하다
〈왕이 손 수비(孫守備)를 인정전(仁政殿)에서 접견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대인의 선영(先瑩)이 요동 지역에 있다 하던데, 오랑캐들이 침략해서 요성(遼城)을 완전히 함락시켰으니, 대인은 틀림없이 너무나 원통해서 비통한 심정을 금하지 못하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천 리나 되는 지역을 방어하는 데 병력이 부족하고 약해 단지 앞뒤에서 서로 호응하며 견제하는 형세만 유지할 뿐입니다. 바라건대, 대인께서는 감군 대인과 함께 천천히 진격할 것을 도모하되 완벽하게 되도록 힘써 주기 바랍니다."
하니, 손 수비가 말하기를,
"군대는 만전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니, 어찌 가벼이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오직 앞뒤에서 서로 견제하면서 안팎으로 서로 호응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가달이 뒤섞여 간첩들이 틀림없이 많을 것이니, 선척을 구해 요민(遼民)들을 실어 보낸 뒤에야 이러한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지금 가르침을 받으니, 매우 감사합니다. 다만 우리 나라는 난리를 겪은 뒤라 배를 만들 재목이 다 떨어졌으니, 충분히 마련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요광(遼廣)이 함몰된 뒤로 천조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하다가 양 대인을 만나게 되어 기쁜 심정 금할 길이 없습니다. 더구나 대인은 몸가짐이 정간(靖簡)하여 매우 탄복하고 있습니다."
하니, 수비가 말하기를,
"요광이 함몰된 것은 전쟁을 잘못한 탓이 아닙니다. 장수를 제대로 얻지 못한 데다가 인심마저 잃어 성을 비우고 달아나 끝내 이러한 화를 초래한 것입니다. 조종(祖宗) 2백 60 년의 국경이 하루아침에 오랑캐의 손아귀에 넘어갔으니, 어찌 가슴 아프지 않겠습니까. 지금 군량과 기계를 운반하고는 있으나 훌륭한 장수를 구하지 못하면 진격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감군께서 비록 폐단을 살피려고는 하지만 이목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틀림없이 소란을 피우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당당한 대국이 땅이 넓고도 물력이 풍부한데 요광(遼廣) 전역을 하루아침에 잃은 것은 어찌된 연고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산해관 밖에서 지키는 장수는 누구인지요? 우리 나라로 피난온 사람들이 전하는 말은 사실과는 달라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하니, 수비가 말하기를,
"요광과 심양(瀋陽)은 입술과 이 같은 관계인데, 우 총병(尤摠兵)이 13만의 병력으로 심양을 지키다가 지난해 3월 13일 싸우다 패해 성을 잃게 되자 적이 이어 요동을 범한 것입니다. 원경략(袁經略)은 노약자들을 거느리고 성에 들어가 굳게 지키며 적과 싸웠는데, 승패가 나기 전에 본시 오랑캐였던 하세현(賀世賢)은 그대로 달아나 버렸고, 싸움에 패한 나머지 군사들은 물러나 하구(河口)를 지키고 있다 합니다. 이는 바닷가의 풍문으로 떠도는 말인데, 어제 통보(通報)를 보니, 서쪽 지역에 있는 오랑캐들이 중국 군대와 힘을 합해 쳐 없애기를 원하고 있다 합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이렇게 기쁜 소식을 들으니,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그리고 양 대인의 한 몸에 천하의 안위가 달렸는데, 지금 들으니 대인이 장차 곧바로 창성과 의주 사이로 가려 한다고 합니다. 지금 가달을 성문 밖에서 잡기까지 하였으니, 어찌 염려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적들의 흉악하고 교활함이 날로 더욱 심해져서 간첩들이 여기저기 깔려 있으니, 대인께서는 강가에 머무르고 있다가 상황에 따라 잘 대처하였으면 합니다."
하니, 수비가 말하기를,
"대왕의 말씀은 실로 간절히 돌보아서 아껴주는 심정에서 나온 것이니, 제가 돌아가 고하여 상황을 보아 잘 처리하겠습니다. 가달은 당초에 권관(權管)이 요동 사람들을 아끼고 불쌍히 여겨 오게 한 것이니, 어찌 고의로 딴 마음이 있어 그런 것이겠습니까. 귀국의 법령을 어긴 잘못은 있지만 만약 간첩이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하였다. 파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1책 61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452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사급(賜給) / 군사-군정(軍政)
○(王接見孫守備於仁政殿。 王曰: "大人先塋在遼云, 奴賊猖獗, 盡陷遼城, 想大人必增痛惋, 爲之慘悽。 小邦防守千里, 兵殘力弱, 只爲掎角之勢而已。 願大人與監軍大人, 徐圖進取, 務在萬全。" 守備曰: "兵貴萬全, 豈宜輕動? 惟當彼此掎角, 表裏相應而已。 且假㺚相雜, 細作必多, 要得舡隻, 載送遼民之後, 可無此患矣。" 王曰: "今承指敎, 多謝。 但弊邦經亂之後, 船材乏絶, 恐未優數措備用, 是憂慮。 自遼、廣陷没, 天朝消息, 邈未聞知, 得見梁爺, 不勝喜悅。 況大人律已靖簡, 不勝歎服。" 守備曰: "遼、廣見陷, 非戰之罪。 旣不得將, 又失人心, 空城而走, 終致此禍。 祖宗二百六十年之疆域, 一朝陷没胡塵, 豈不痛心? 目今糧餉器械, 雖或運致, 將非其人, 進剿誠難矣。 監軍雖欲省弊, 耳目不及之處, 必多擾害矣。" 王曰: "堂堂大朝, 旣廣且富, 而遼、廣全城, 一朝見失, 未知何故? 卽今關外把守將領誰耶? 下邦走回人, 所傳失實, 願聞其詳。" 守備曰: "遼與瀋, 迭爲唇齒, 尤摠兵以十三萬兵守瀋陽, 去歲三月十三日, 戰敗失守, 賊仍犯遼東。 袁經略以老弱嬰城, 與賊交鋒, 勝敗未決, 賀世賢素是㺚子, 仍爲遁走, 戰敗餘卒, 退守河口。 此出海上風聞, 而昨見通報, 西㺚願與天兵合力剿滅云耳。" 王曰: "聞此喜報, 深幸。 且梁大人一身, 係天下安危, 今聞大人將爲直抵昌、義之間云。 卽今假㺚至捕於城門之外, 豈非可憂? 此賊兇狡日甚, 細作遍滿, 願大人駐箚江岸, 臨機善處。" 守備曰: "大王之言, 實出眷愛, 俺當歸告, 相機善處。 假㺚則權管初爲恤遼人而來, 豈故爲有心哉? 違貴國法令之罪有矣, 若曰細作, 恐或不然也。" 罷。)
- 【태백산사고본】 61책 61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452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사급(賜給)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