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광해군일기[중초본] 176권, 광해 14년 4월 20일 을유 2번째기사 1622년 명 천계(天啓) 2년

감군에게 익일연을 행하다

왕이 남별궁에 거둥하여 감군을 접견하고 익일연(翌日宴)을 행하였다. 감군이 말하기를,

"어제 세자를 보니, 영민하고 슬기로움이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너무도 기뻐 경하합니다. 삼가 고서(古書)를 부지런히 읽어나가길 빕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요동과 광녕이 함락된 후 중국 조정의 소식을 까마득히 알지 못하여 매양 걱정하고 근심하였소. 지금 대인을 보니, 우리 나라 백성들이 너무도 감격하며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대인께서 전후로 설계하고 있는 방략(方略)을 들었으면 하오."

하니, 감군이 말하기를,

"저에게 무슨 별다른 방략이 있겠습니까. 다만 경략(經略)의 지휘만을 따라 행할 뿐입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양경략(楊經略)고(顧)·웅(熊)·주(朱)·양(梁) 등의 대인들께서는 지금 어디에서 무슨 관직으로 있소? 여러 대인들께서 명을 받아 동쪽으로 오셔서 혜택이 두루 미쳤으니, 나는 항상 생각이 나오. 〈그동안 나왔던 차관(差官) 대인들도 모두 평안하오?〉"

하니, 감군이 말하기를,

"이렇게까지 굽어살피어 물으시니 국왕의 훌륭하신 뜻을 알 만합니다. 양 경략은 현재 옥중에 있는데 죄를 면할 수 있을지는 기필하기 어렵고, 주한림(朱翰林)은 남경 예부 시랑(南京禮部侍郞)으로 옮겨 제수된 바 있는데 지금은 사직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양유년(梁有年)·웅화(熊化)는 모두 참정(參政)으로서 집에 돌아가 있고, 염등(冉登)은 사예감(司禮監)에 있고, 유홍훈(劉鴻訓)은 상중에 있습니다. 양도인(楊道寅)은 대리승(大理丞)으로 승진되었고, 고천준(顧天峻)은 현재 중요하게 등용되어 있고, 최정건(崔廷健)은 외직에 나아가 있고, 유용(劉用)은 잘 모릅니다. 〈차관에 대해서까지 물어보신 것은 비록 훌륭한 뜻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양경략이 명을 받들고 왜(倭)를 정벌하여 〈공로가 이미 많으므로〉 우리 나라의 〈신민들이 지금까지도〉 감사하게 여기고 있소. 혹 〈죄 받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면 어찌 가엾지 않겠소."

하니, 감군이 말하기를,

"제가 길가에 거사비(去思碑)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이미 귀국에서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록 구속되어 있긴 하지만 황상께서도 그가 무죄임을 아실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술을 11번 돌리고 파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0책 60권 6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439면
  • 【분류】
    외교-명(明)

○王幸南別宮, 接見監軍, 行翌日宴。 監軍曰: "昨見世子, 英睿動人, 無任賀。 竊願勤讀古書。" (王曰: "見陷之後, 天朝消息, 邈不聞知, 每用憂悶。 今見大人, 小邦臣民, 不勝感幸。 願聞大人前後設試之方略。" 監軍曰: "俺有何別樣方略? 但當遵行經略指揮而已。" ○)王曰: "楊經略諸大人, 今在何地, 做何官耶? 諸大人受命東臨, 惠澤彌洽, 不穀思之不置耳。 (前後出來差官諸大人, 亦皆平安否?)" 監軍曰: "俯問至此, 可占國王盛意。 楊經略方在獄中, 免罪難必; 而朱翰林遷拜南京禮部侍郞, 今則辭職歸卿, 梁有年熊化皆以參政還家, 冉登 以九門提督, 在司禮監, 劉鴻訓在喪, 楊道寅陞大理丞, 顧天峻方聽用, 崔廷健出補外職, 劉用則不知矣。 (俯問差官, 雖出盛意, 俺何以知之?)" 王曰: "楊經略受命征, (功勞旣多,) 小邦(臣民)感戴(至今)。 倘或不免(於罪戾), 豈不矜怛?" 監軍曰: "俺見路左有去思之碑, 已知貴國之不忘也。 雖在縲絏(之), 皇上亦知其無罪矣。" (王行十一爵罷。)


  • 【태백산사고본】 60책 60권 6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439면
  • 【분류】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