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광해군일기[중초본]176권, 광해 14년 4월 19일 갑신 5번째기사 1622년 명 천계(天啓) 2년

감군을 접견하여 적병의 정세에 대해 묻다

〈오시(午時)에〉 왕이 감군을 남별궁(南別宮)에서 접견하고 하마연(下馬宴)을 행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중국 조정의 성스러운 교화가 바야흐로 성대한데, 노적(奴賊)이 감히 교화를 가로막을 마음을 내어 이내 요동·광녕을 잇따라 함락시키게 되었으니, 중국 조정의 당당한 위령(威靈)으로 어찌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말이오."

하니, 감군이 말하기를,

"이 적이 천자를 넘보는 악을 쌓아온 지 오래되었는데, 변방의 신하가 편안한 데 젖어 그것을 심상하게 보아 이러한 변고를 초래하였습니다. 〈그 사이의 곡절은 술자리에서 다하기 어렵습니다.〉 마땅히 접반사와 비밀히 의논하여 일일이 통고하겠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왕세자가 주례(酒禮)를 행했으면 하오."

하니, 감군이 말하기를,

"국왕께서 술을 돌릴 때 제가 실례를 면치 못했습니다. 왕세자가 술을 돌릴 때에는 네 번째 술잔은 제가 마땅히 친히 집어 올리겠습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달리 실례한 것이 없소. 의주(儀註)가 실로 이와 같을 뿐이오."

하였다.〉 감군이 또 말하기를,

"〈마땅히 명대로 하겠습니다.〉 국왕의 충의로움은 천하에 모두 알려져 있는데, 세자도 총명하고 예를 아니 너무도 기뻐 경하드립니다."

하니, 〈왕이 천만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노적이 현재 어디에 있소? 적의 소굴을 정벌할 기일을 〈까마득히 들어 알지 못하고 있으니〉 자세한 것을 들었으면 하오."

하니, 감군이 말하기를,

"왕 순무(王巡撫)가 방어를 제대로 하지 못한 후 서달(西㺚)이 병력을 원조하여 이미 회복하고 더 넓혔기 때문에 노적이 이미 요성(遼城)으로 달아났습니다. 단지 요병(遼兵)들은 겁에 질리고 간담이 서늘해져 다시 진작시킬 수 없으니, 마땅히 섬서(陝西)의 달병(㺚兵)을 조발하여 대군이 모두 모인 연후에야 군대를 출동시킬 날짜를 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자, 왕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주회인(走回人)을 인하여 듣건대, 관외(關外)의 동쪽이 모두 적의 소굴이 되었다고 하니, 우리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간담이 서늘해져 〈밤낮으로 걱정하고 있었소.〉 그런데 지금 대인의 말을 들으니 매우 기쁘고 위로가 되오. 다만 관외에도 병마(兵馬)가 있소? 이를 이끄는 장관(將官)은 누구요?"

하니, 감군이 말하기를,

"전쟁에서 패한 장수와 군졸들을 관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현재 관외에 둔을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내(關內)는 〈계진(薊陣)〉 20만이 〈바야흐로〉 와서 둔을 치고 있습니다. 장관은, 이회신(李懷信)두송(杜松)의 조카가 총병(摠兵)으로서 와서 지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알고 있는 바이지만 이밖의 장관은 어찌 다 들 수 있겠습니까. 노적이 고립 무원한 군대로 깊숙이 들어왔으니, 중국 조정의 대군이 모두 모인다면 소굴을 섬멸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국왕께서는 염려하지 마소서."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웅 경략(熊經略)왕 순무(王巡撫)는 지금 어느 곳에 있소?"

하니, 감군이 말하기를,

"웅 경략은 신문을 받고 있고 왕 순무는 대죄하고 있으나, 광녕을 잘못 지킨 것은 오로지 장관들이 적을 가벼이 여기고 출전한 데 말미암습니다. 〈혹 말에서 떨어지기까지 하여〉 끝내 법을 어긴 채 패배하였으니, 이 어찌 웅 경략이나 왕 순무의 죄이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수군은 조발한 것이 얼마나 되며, 모두 우리 나라에 모여 있소? 또한 다른 길을 경유하여 나아오는 자도 있소?"

하니, 감군이 말하기를,

"수군을 조발한 숫자는 2만이며, 혹 여순(旅順)을 경유하여 나아오는데, 혹은 귀국으로 나아왔기 때문에 그리된 것입니다. 그 형세상 마땅히 귀국에 다 모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대인이 고시(告示)를 내어 일로(一路)를 엄금해서 우리 나라의 잔약한 백성들이 해를 당하는 데서 면할 수 있었으므로, 우리 나라의 신민들이 모두 청렴하고도 간략한 다스림에 감복하였소. 〈너무도 감격스럽소.〉"

하니, 감군이 말하기를,

"일로에 여러 차례 후한 은혜를 입었으니, 너무도 미안합니다. 〈개성부에 있을 때 접반사가 이미 저의 뜻을 다 알았습니다.〉 제가 마땅히 자신을 바루고 아랫무리들을 단속하고 금했어야 하는데, 제가 이미 먼저 범하여 폐단을 끼침이 많을 듯하였으니, 제가 어찌 감히 힘을 다하여 단속시켜 금지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정주(定州)에서 금법을 범한 저의 파발은 즉시 잡아다 곤장 1백 20 대를 때렸는데, 다시 사람들에게 물어서 중하게 추궁하려고 했으나 말이 통하지 않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야흐로 이 때문에 탄식하고 있었는데, 도리어 감사의 말씀을 듣게 되었으니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내일 알성(謁聖)을 한 후에 연례(宴禮)를 행하려고 했는데, 날씨가 점차 더워지고 있어서 존체(尊體)를 수고롭힐까 두렵소. 〈전부터 명을 받든 사신이 우리 나라로 올 경우 다음날에 연례를 행하는 것이 이미 규례가 되어 있소.〉 내일 연례를 행하고 모레 조용히 알성을 하오."

하니, 감군이 말하기를,

"제가 지난해 10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왔을 때 문묘(文廟)에 전알(展謁)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이미 반년이 되었습니다. 이에 먼저 알성을 행하고 〈모레 연례를 행했으면 합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대인이 문(文)을 숭상하는 정성은 지극하오. 다만 도착한 다음날 연례를 행하는 것은 우리 나라의 2백 년 간 내려온 옛규례이니, 대인께서 내일 연례를 행한 후 그 다음날 조용히 알성을 하는 것이 온당할 것 같습니다."

하니, 감군이 말하기를,

"이렇게까지 분부하시니, 내일 알성한 후에 이곳에 돌아와 연례를 베푸는 것이 좋겠습니다. 해가 길어져서 비록 갔다 와서 예를 행해도 여유가 있을 듯합니다."

하자, 왕이 이르기를,

"해가 길어졌어도 오랫동안 먼 길을 온 끝에 또 하루에 거듭 행한다면 존체를 수고롭힐까 두렵소. 내일 연례를 행하고 다음날 알성을 행하게 되어도 늦지 않을 것이오."

하니, 감군이 말하기를,

"내일 알성한 후 돌아오는 길에 왕문(王門)을 지나치면서 들어가지 않는다면 실로 매우 미안할 것입니다. 마땅히 명하신 대로 내일 연례를 행하고 모레 알성을 행한 후 두루 사례하겠습니다. 다만 회사(回謝)하는 것이 너무 늦어져 미안할 뿐입니다."

하였다. 술을 열 차례 돌리고 파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0책 60권 62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438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軍事) / 왕실-국왕(國王)

    午時, 王接見監軍於南別宮, 行下馬宴。 王曰: "天朝聖化方盛, 而奴賊敢生梗化之心, 仍致連陷, 以天朝堂堂威靈, 何至於此耶?" 監軍曰: "此賊稔射天之惡久矣, 而邊臣狃安, 置諸尋常, 致有此變。 (其間曲折, 難盡於酒席間。) 當與接伴使密議, 一一通告。" (王曰: "王世子請行酒禮。" 監軍曰: "國王行酒時, 俺未免失禮。 王世子行酒時, 則第四爵俺當親執而進。" 王曰: "別無失禮。 儀註固如是耳。" 監軍) 曰: "(當依令。) 國王忠義, 天下皆聞, 而世子聰慧知禮, 不勝欣賀。" (王曰: "不敢不敢。") 王曰: "奴賊時在何地? 征勦之期, (邈不聞知,) 願聞其詳。" 監軍曰: "王巡撫失守之後, 西㺚助兵, 已爲恢拓, 故奴賊退遁遼城矣。 但兵則恇劫喪膽, 無復振作, 當調發陝西 兵, 大軍齊會, 然後可定師期。" 王曰: "因小邦走回人聞‘關外以東, 盡爲賊藪’, 小邦臣民, 莫不喪膽。 (日夜憂憫。) 今聞大人之言, 深用喜慰。 但關外亦有兵馬耶? 所領將官誰耶?" 監軍曰: "戰敗將卒, 不許 關, 故方屯關外, 而關內則(薊陣)二十萬(方)來屯。 將官則李懷信杜松之姪, 以摠兵來守。 此則俺所知者, 而此外將官, 何能盡擧? 奴賊孤軍深入, 天朝大軍齊集, 則殲勦不難, 國王勿用憂慮。" 王曰: "熊經略王巡撫今在何處?" 監軍曰: "熊經略 勘, 王巡撫待罪, 而廣寧失守, 專由於將官輕敵出戰。 (或致堕馬,) 終見失律敗衂, 此豈 之罪哉?" 王曰: "水軍調發幾許, 咸集於我國耶? 亦(有)由他路而進(者)耶?" 監軍曰: "水軍調發之數則二萬, 而或由旅順而進, 或出來貴國而然, 其勢當咸集於貴國矣。" 王曰: "大人出告示, 嚴禁一路, 使小邦殘氓, 得免擾害, 小邦臣民, 咸服淸簡之政。 (不勝感激。)" 監軍曰: "一路屢受厚恩, 不勝未安。 (在開城府時, 接伴使已悉俺意矣。) 俺當正己, 禁約下輩, 而俺已先犯, 恐多貽弊, 俺何敢不爲盡力禁約乎? (俺之撥兒犯禁於定州者, 卽拿致棍打百二十, 更欲訪問重究, 而語言不通, 無由得聞。 方用嘆馬, 反承垂謝, 不勝慙愧。)" 王曰: "明日謁聖後, 欲行宴禮, 而但時氣熱, 恐勞尊體。 (自前奉命東臨, 翌日行宴, 已成規例。) 明日行宴禮, 明明從容謁聖(, 似爲便當例)。" 監軍曰: "俺上年十月, 乘舟浮海, 不得展謁文廟者, 今已半歲。 玆欲明日先行謁聖(, 明明日行宴禮)矣。" (王曰: "大人右文之誠則至矣。 但翌日行宴禮, 乃是弊邦二百年流來舊規, 願大人明日行宴禮後, 趁後日從容謁聖, 似爲便當。" 監軍曰: "勤敎至此, 明日謁聖後, 還到此處, 設行宴禮。 日晷方永, 雖往還後行禮, 亦有裕矣。" 王曰: "日晷雖永, 長程跋涉之餘, 一日疊行, 恐勞尊體。 明日行宴禮, 後日從當(渴聖)〔謁聖〕 , 亦未晩矣。" 監軍曰: "明日謁聖後歸路, 過王門不入, 實深未安。 當依命, 明日行宴禮, 明明謁聖後, 當歷謝。 第以回謝太遲爲未安耳。" 行十爵罷。)


    • 【태백산사고본】 60책 60권 62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438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軍事)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