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군 김권이 유배지에서 죽다
청풍군(淸風君) 김권(金權)이 배소(配所)에서 죽었다. 김권은 기묘 명현(己卯名賢) 김식(金湜)의 손자이다.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미더우며〉 온화하고 부드러워〈한때에 장자(長者)라고 불리웠다.〉 그런데 내면은 실로 강하고 곧아 조정에 서서 언론함에 있어서는 일찍이 시류(時流)에 영합하지 않았다. 선묘 또한 강직하다고 칭찬하였다. 이로 인해 비로소 현로(顯路)를 역임하였으나, 〈중년에 여러 차례〉 실패하여 〈관직이〉 현달하지 못하였다. 〈선묘(宣廟) 또한 강직하다고 칭찬하였다.〉 임진년에 샛길로 행재소(行在所)에 달려갔는데, 광해가 〈세자로서〉 분조(分朝)하여 성천(成川)에 머무르고 있다가 〈대조(大朝)에 알리니〉 궁관(宮官)에 제수하여 〈따라다니게 하였다.〉 즉위함에 미쳐 위성훈(衛聖勳)에 기록하고 정경의 직질에 등급을 뛰어넘어 제수하였다. 대론(大論)을 헌의할 때 정도를 지켜 이견을 내세우되 말이 매우 곧고도 절실하여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모두 탄복하였다. 대각(臺閣)이 번갈아 소장을 올리며 죄를 청하여 강계(江界)로 유배되었다. 얼마 있다가 변방이 시끄러워 〈전라도〉 무안(務安)으로 옮겨 보냈는데, 백발의 노인이 멀리 유배지로 감에 지나는 길의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고 불쌍하게 여겼으나 스스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하면서 〈마치 즐거운 곳에라도 가는 듯이 하였다.〉 서울에서 온 자가 대론이 이미 결말이 났다고 잘못 전하니, 이내 문을 닫고서 통곡하였다. 〈이로부터 세상일에 다시는 뜻을 두지 않고 오직 멋대로 술만 마시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죽었는데, 감사가 알리니, 왕이 관작을 회복하고 관에서 관곽(棺槨)을 지급해주도록 명하고 삼도에 하유하여 호상(護喪)하고 귀장(歸葬)하도록 하였다. 반정(反正) 후에 추증하고 사제(賜祭)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9책 59권 96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428면
- 【분류】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淸風君 金權卒于配所。 權, 己卯名賢湜之孫也。 爲人(忠信)和柔, (一時稱爲長者。) 而內實剛方, 立朝言論, 未嘗與世俯(仰)。 以此始歷 (歷揚)顯路, (而中年累) 中躓(官)不達。 (宣廟亦以剛直稱之。) 壬辰從間道, 追赴行在, 光海 (以世子)分朝, 住(駕) 成川, (聞于大朝,) 除宮官(使從行)。 及卽位, 錄衛聖勳, 超授(正)卿秩。 大論獻議時, 守正立異, 辭甚直切, 聞者莫不歎服。 臺閣交章請罪, (流)竄于江界。 俄而以邊聳, 移配于(全羅道) 務安 (地), 白首遠謫, 行路皆悲憐, 而自處怡然, (如就樂地客。) 有自京來者, 誤傳大論已結局, 乃閉門慟哭。 (自此無復有人世意, 唯緃飮無何。) 至是卒, 監司以聞, 王命復官爵, 官給棺槨, 下諭三道, 護喪歸葬。 反正後, 追贈賜祭。
- 【태백산사고본】 59책 59권 96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428면
- 【분류】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