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중 현방이 오다
일본에서 중 현방(玄方)이 내빙하였다. 【처음에 수길(秀吉)이 죽자 그의 아들 수뢰(秀賴)가 대신 들어섰는데, 그의 신하 가강(家康)이 찬위하고는 수뢰와 싸워 크게 이겨 드디어 관백(關白)이 되었다. 관백이란 바로 대장군이고 국왕은 아니다. 기유년에 현소(玄蘇)가 나와서 화의를 청하였으므로 조정에서 허락하고 〈그 후에〉 여우길(呂祐吉) 등을 보내어 답례를 표시하였다. 당시에 가강은 무장주(武莊州) 겸창(鎌倉)으로 거처를 옮기고 그의 아들인 수충(秀忠)에게 전위하였다. 수충은 적간관(赤間關) 대판성(大坂城)에 그대로 살고 있었으므로 부자가 국내를 나누어 다스렸다. 정사년에 조정에서 통신사 오윤겸(吳允謙) 등을 보내었다. 이때에 이르러 가강은 죽고 수충은 또 동쪽 무장주로 옮겼으며 관백의 자리는 그의 아들 죽송(竹松)에게 물려주었는데 그가 바로 가충(家忠)이다. 그가 보낸 현방이 부산에 와서는 서계를 전하고 먼저 역관에게 묻기를 ‘선위사(宣慰使)와 지난번의 이덕형(李德馨)은 어떠한가?’라고 하였으니, 먼 나라 사람들이 그를 존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 【태백산사고본】 59책 59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423면
- 【분류】외교-왜(倭)
○日本遣僧人玄方來聘。 【初秀吉旣死, 其子秀賴代立, 其臣家康簒位, 與秀賴大戰克之, 遂爲關白。 關白乃大將軍, 非國王也。 己酉歲, 玄蘇出來請和, 朝廷許之, (其後) 遣呂被祐吉等報聘。 時 家康移居武莊州 鎌倉, 傳位于其子(守忠)[秀忠] 。 忠仍居赤間關 大板城, 父子分治國內。 丁巳, 朝廷遣通信使吳允謙等聘之。 至是, 家康死, (守忠)[秀忠] 又移東武, 傳位于其子竹松, 卽家忠也。 遣玄方, 至釜山傳書契, 先問于舌官曰: "宣慰使與向時李德馨何如?" 可知遠[人之尊慕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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