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광해군일기[중초본]155권, 광해 12년 8월 21일 병인 1번째기사 1620년 명 만력(萬曆) 48년

관학 유생 우방 등의 조식의 문묘 종사에 대한 상소

관학 유생 우방(禹舫) 등이 상소하여 조식을 문묘에 종사하도록 청하니, 답하기를,

"어진이를 높이는 정성을 가상히 여긴다. 마땅히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겠으니 〈너희들은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조식은 영남 사람이다. 곧고 고상한 것으로 스스로를 지켰고, 기상이 굳건하여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항상 갖고 있는 의견은 악을 물리치고 선을 권장하는 것을 주로 하였다. 명종 때에 징사(徵士)로서 누차 부름을 받았으나, 단 한 번 임금을 만나 뵙고 곧장 고향에 돌아와서 상소를 올렸다. 그 내용에 ‘전하는 선왕의 한 아비 없는 자식이고 자전(慈殿)은 궁중의 한 과부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서(吏胥)는 나라를 반드시 망하게 할 우환이다.’고까지 하였다. 학문은 왕양명(王陽明)을 조금 섭렵하였으나 구차스럽게 답습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학자들이 ‘남명(南冥)선생’이라고 일컬었다. 퇴계 선생이 일찍이 ‘세상 밖에 정정(亭亭)하고 노을 밖에 교교(晈晈)하다.’고 평하였다. 정인홍은 바로 선생의 문인이다. 때를 타서 사욕을 부려, 심지어 오현(五賢)을 밀어내고 오직 자기 스승만을 높이고자 하여, 누차 시도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이첨이 또한 스스로 정인홍의 문인이라고 일컬으며 도통(道統)을 넘보려고까지 하여 성균관의 유생들을 타일러서 이렇게 진달하여 청함이 있게 된 것이다. 우방은 공주(公州) 사람으로서 이이첨에게 빌붙어 생원시에 장원을 하였다. 】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136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339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물(人物)

    庚申八月二十一日丙寅館學儒生 禹舫 等上疏, 請 (從祀) 曺植從祀文廟。 答曰: "用嘉尊賢之誠, 當議而處之。 (爾等勿煩。)" 【, 嶺南人也。 亢高自守, 壁立不撓, 持論常主激揚。 明廟朝, 以徵士屢召, 一至登對, 輒還上疏, 有曰: "殿下, 先王之一孤子; 慈殿, 宮中之一寡婦。" 云。 至以"胥吏爲國家必亡之患。" 學問稍涉陽明, 不肯苟循塗轍。 學者稱爲"南冥先生。" 退溪先生嘗曰: "亭亭物表, 皎晈霞外。" 鄭仁弘, 其門人也。 乘時售私, 至欲擠排五賢, 獨尊其師而屢試不得焉。 爾瞻又自稱 仁弘門人, 至於希覬道統, 諷諭館學, 有此陳請。 禹舫, 公州人, 附會爾瞻, 得爲生員狀元。】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136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339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