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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152권, 광해 12년 5월 18일 을미 1번째기사 1620년 명 만력(萬曆) 48년

정원이 증설한 관청 중 불필요한 것의 해체를 청하다

정원이 아뢰기를,

"나라에서 옥사(獄事)를 다스리기 위한 관청으로, 금부(禁府)와 형조(刑曹)를 설치하고 또 포도청을 설치하여 형정(刑政)을 다스렸는데, 감히 이들 관청을 증감(增減)하지 못하는 것이 2백 년 동안 바꾸지 않은 정해진 규례입니다. 그런데 지난번 역적 허균(許筠)의 변고로 인하여 도성이 시끄러워지자, 드디어 더 설치할 것을 의논하여 심지어 좌·우청(左右廳)을 두어 기찰(譏察)하여 〈체포하도록 하기까지 한 것은〉 대개 한때의 임시로 설치한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역옥(逆獄)이 이미 끝났는데도, 오히려 폐지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신·구·좌·우(新舊左右)가 엄연히 네 개의 청(廳)이 되고, 여기에 소속된 인원 중 종사관(從事官) 이하가 거의 백여 명이 되어 〈국고가 바닥이 난 때에〉 해조의 요포(料布)의 비용은 이미 셀 수 없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마을을 멋대로 침해하고 다니면서 사적인 감정을 품고서 폐단을 일으키는 것이 갈수록 더욱 심합니다. 노비를 추쇄(推刷)하고 재화를 거두어 들이는 자들이 모두 이곳으로 들어가서는 도적을 잡는다고 핑계대는데, 한 번 체포되기만 하면 곧 파산하게 되며, 엄한 형벌 아래에서는 온전한 목숨이 없어 〈갇혀 있는 죄수가 감옥에 가득하고, 백성의 원망은 날로 쌓였습니다. 근래 감옥 안에 송장들이 널려 있는 것은 사청(四廳)이 마구잡이로 가둔 것에 연유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뜻하지 않게 재액에 걸려드는 근심이 먼 지방에까지 미치기까지 하였으니, 〈오늘날 제일 첫 번째의 고질적인 병통입니다.〉 이처럼 백성들이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고통을 받고 있는 때를 당하여, 어찌 불필요한 관청을 잉여로 설치하여 백성의 목숨을 해치는 것을 앉아서 보고만 있고 변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래 정한 좌·우 포도청을 제외하고는 더 설치하지 말도록 하는 일을 〈해조로 하여금〉 대신에게 의논하여 결정한 뒤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것은 역모(逆謀)의 변고 때문에 설치한 것은 아니고, 다만 서북 지방에 근심거리가 많은 것을 인연한 것이다. 만약 사변(事變)이 있게 되면 서울을 수비하고 궁궐을 보호하기 위한 계책일 뿐이다. 그러나 나 또한 자세히 기억할 수 없으니, 우선 그대로 설치해 두고, 다시 변경의 일을 살핀 뒤에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317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庚申五月十八日乙未政院啓曰: "國家治獄之官, 設爲禁府、刑曹, 又設捕盜廳。 刑政修擧, 不敢增損者, 乃二百年不易定規也。 頃緣逆之變, 都城騷然, 遂議加設, 至置左右廳, 使之譏察(戢捕者), 蓋出於一時之權設也。 今則逆獄旣畢, 猶且因仍, 新、舊、左、右儼爲四廳, 而該率從事以下, 幾至百餘, (國計蕩然之時,) 該曹料布之費, 已爲不貲。 且其橫侵閭里, 挾私作孽, 愈往愈甚。 推奴婢、徵貨財者, 率皆歸之, 托稱盜賊, 一經逮捕, 輒至破産, 嚴刑之下, 殆無完命。 (囚繫滿獄, 民怨日積。 近來僵屍相枕於牢中者, 無非由四廳濫囚。 而甚至)橫罹之患, 延及遠方, (爲今日第一弊瘼)。 當此民生倒懸之, 何可剩設冗官, 坐視其(臧)害民命, 而不爲之變通乎? 請元定左右捕盜廳外, 勿爲加設事, (令該曹)議大臣定奪(施行)。" 答曰: "此非爲逆變而設, 只緣西北多虞。 脫有事變, 則以爲守京城、護宮闕之計耳。 然予亦未能詳記, 姑爲仍設, 更觀邊事議處。"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317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