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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148권, 광해 12년 1월 18일 정유 6번째기사 1620년 명 만력(萬曆) 48년

비변사가 명에 청병하는 일은 군량미 부족으로 재고해야 함을 제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비망기로 운운한 일을 전교하셨습니다.〉 웅 경략(熊經略)이 동사(東事)를 주관하고 있는데 지금 파수하는 형세에 대해 사유를 맞추어 황제에게 청하고 2만의 병력을 발하여 진강(鎭江)·의주(義州)에 나누어 배치해서 성원하려고 계획하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요동을 방수하고 속국(屬國)을 보호하려는 깊고 훌륭한 계책입니다.

신들은 이어 생각하건대, 중국 사람들이 우리가 노적(奴賊)과 연화(連和)한다는 잘못 전해진 말을 듣고 자못 의아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서광계(徐光啓) 같은 이의 감호(監護)해야 한다는 의논과 장지발(張至發) 같은 이의 몰래 순종하고 있다는 말이 번갈아 서로 화답하며 일어나 논의가 치열하니, 경략이 의주에 군사를 머물게 하자는 청을 한 것도 서광계장지발의 소견과 서로 표리가 되지 않는 것임을 어찌 알겠습니까. 만약 이때에 진강(鎭江)을 연합하여 지키자는 것으로 지레 먼저 자주(咨奏)하여 우리 나라가 난처해 하는 기색을 보인다면 그들은 이미 세워놓은 계산을 반드시 중지시킬 리는 없을 것이고 도리어 우리를 의심하는 단서만을 더 할 것이니, 어찌 크게 우려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청이 비록 관진(寬鎭)에 병사를 머물게 하는 데 있으나 명나라가 어찌 우리 나라의 청을 다 따라주어 강을 건너지 못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청병(請兵)을 해놓고서 또 그만둘 것을 청한다면 사체에 있어서 매우 온당치 못합니다. 그리고 경략이 제청한 말을 보니, 매우 자세하여 우리 나라에 있어서도 믿을 만한 형세가 있는 듯한데, 우리 나라는 장차 어떤 말로 한창 벌어지고 있는 이 논의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반복하여 생각하고, 헤아려 보아도 의주에 군사를 머무르게 하는 한 조목에 있어 다시 선처할 일이 없습니다.〉 다만 창고의 저축이 바닥이 난 데다가 흉년까지 너무 심한데 만약 우리 국경에 병사를 보낸다면 양식을 마련할 대책이 없다는 뜻을 급히 먼저 경략에게 이자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풍시행(馮時行)이 주청한 말에 이르러서는 아직까지 황상의 성명(成命)이 없으니, 정준(鄭遵)으로 하여금 더 보고 들은 것을 치계하게 해서 확실한 보고를 얻은 뒤 의논하여 처리하는 것도 마땅하겠습니다. 지금 이 사신의 행차가 〈마침 이러한 때를 만났으니,〉 이러한 사의(事意)를 가지고 가 경략 및 병부 아문에서 사기(事機)를 파악한 뒤 사세를 관찰하여 주선할 일을 자세히 말하여 보내는 것이 〈마땅하겠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52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293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야(野)

    ○備邊司啓曰: "(備忘記云云事, 傳敎矣。) 熊經略主管東事, 今以把守形勢, 具由題請, 發兵二萬, 分置鎭江義州, 以爲聲援之計, 此固防守遼東, 保護屬國之深謀勝算也。 臣等仍念中朝之人, 自聞奴賊連和之訛言, 頗有疑訝之心。 如徐光啓監護之議、張至發陰順之說, 迭相唱和, 論議崢嶸, 經略留兵義州之請, 亦安知與所見, 相爲表裏乎? 若於此時, 以合守鎭江, 徑先咨奏, 以示我國持難之色, 則其於已成之算, 必無中止之理, 而反增疑我之端, 豈非大可慮者乎? (我國之請, 雖在於留兵寬鎭, 而天朝豈能盡從我國之願, 勿令越江乎?) 旣爲請兵, 而又請還止, 其於事體, 亦甚未安。 且觀經略題請之辭, 極爲詳密, 在我國亦有可恃之勢, 我國將何辭說, 以防此方張之議乎? (反覆思量, 留兵義州一款, 更無善處之事。) 只以倉儲匱竭之餘, 年凶太甚, 如或遣兵我境, 則辦糧無策之意, 急先移咨于經略似當。 至於馮時行所奏之辭, 姑無皇上之成命, 使鄭遵更加聞見馳啓, 得其的報, 議處亦當。 今此使臣之行, (適當此時,) 將此事意, 經略及兵部衙門, 聞見事機, 觀勢周旋事, 詳細言送, 亦當, 敢啓。"


    • 【태백산사고본】 52책 52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293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