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간 정도가 과거의 대리 시험, 향리의 응시 허가 등 시정을 건의하다
사간 정도(鄭道)가 아뢰기를,
"〈근래 과거의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이번 광취(廣取)의 거조는 실로 성상께서 서쪽 변방을 우려하신 데에서 나온 것이니, 마땅히 용감한 군사들을 뽑아서 방수(防戍)의 사용에 대비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정(私情)을 행하여 대신 쏘게 하여 장사와 약질을 분간하지 않았고, 사정을 써서 함부로 등록시켜 천민과 서얼이 많이 차지하였습니다. 기강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더욱 훼손되었고 명분이 이 때문에 더욱 문란해졌으니, 신은 삼가 민망하고 통탄스럽습니다.
삼가 〈지난 12월 25일〉 병조에 내린 비망기를 보니, ‘삼의사(三醫司)·별파진(別破陣)·충찬위(忠贊衛) 등이 등과(登科)를 핑계로 본임(本任)을 살피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잡류(雜類)들에게 어찌 모두 시험에 응시하도록 허락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허통되지 못한 자들을 일일이 깎아 버리고, 대신 쏘아준 사람을 각별히 핵실해 내어 중률(重律)로 다스리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또 하교하시기를 ‘〈지난달 30일에 있었던〉 광취 무과(廣取武科) 〈별시(別試)〉 초시(初試) 때에 대신 쏘아주고 사정을 행하는 등 해괴하고 경악할 만한 일이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았다고 하니, 작지 않은 국시(國試)에 어찌 이와 같을 수 있는가. 비변사로 하여금 각별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그리고 호남 각읍(各邑)의 향리(鄕吏)로서 입격한 자가 매우 많다고 하니, 또한 해괴하다. 이 도의 경시관(京試官)을 올라온 뒤에 각별히 먼저 중하게 다스리라. 다른 도도 반드시 다 그럴 것이니, 일일이 상세히 살피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성상의 우려가 미치셨으니,〉 지금은 바로 명분을 바로잡고 기강을 진작시킬 때입니다. 마땅히 성상이 하교하신 대로 하나하나 조사해 내서 치죄하여 깎아버리기에 겨를이 없이 해야 합니다. 다만 신이 〈지난 12월 25일에〉 감시관으로 명을 받고 시험장으로 달려갔으나 기사(騎射)를 이미 마치고 출방(出榜)의 초안을 만들어놓은 지 이미 10여 일이 지났으며 입계할 단자도 거의 다 써 가던 차였습니다. 그리고 당초 녹명(錄名)한 〈장초자(長草字)를〉 상고해 보니, 지우고 다시 쓴 것이 40인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즉시 깎아버리고 빨리 입문관(入門官) 등을 잡아다가 거짓을 행하고 사정을 쓴 죄를 청했어야 하는데, 조사하다 보니 자연 지연시키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삼의사·별파진·충찬위 등의 본직에 있었던 자 외에 혹은 보인(保人)이라고 쓰고 혹은 자급(資級)을 쓰기도 하여 아무리 생각하고 계획을 해봐도 형적를 감추고 있으므로 누가 삼의사 사람이고 누가 별파진 사람인지 알 수 없으니, 허통 여부를 시석(試席)에 있던 자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부득이 각각 그 관청의 행수 유사(行首有司)를 불러 〈전교에 따라〉 명백하게 핵실하라고 개유한 〈뜻을 반복하여 개유하고 재삼 엄히 명하였으나〉 삼의사는 겨우 한두 명의 속신(贖身)되지 못한 자로서 책임막이로 〈써 올렸고〉 별파진과 충찬위는 끝내 현고(現告)하지 않고 있으니, 만약 엄히 가두고 중히 다스리지 않는다면 형세로 보아 명백하게 핵실해내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는 삼의사의 생도로 외지에 거하는 자가 서울에 사는 자보다 몇 배나 많은데도 모두 모른다고 말하고 있으니, 진실로 팔도에 통지하여 하나하나 조사해 내지 않는다면 다 찾아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리고 향리(鄕吏)에게 과거 응시를 허락하는 것은 국전(國典)에 밝게 실려 있는데, 난리를 겪은 뒤로는 사망하여 거의 없어졌고 나머지 조금 넉넉한 자는 또한 다 속신(贖身)하여 본주(本州)에 소속되어 있는 자들은 가난하고 쇠잔한 약간의 사람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등제(登第)한다면 앞으로 누구를 부역 시킨단 말입니까. 공생(貢生)이라고 하는 자들은 바로 향리(鄕吏)입니다. 그들 중에 경방(京榜)에 참여된 자가 많으니 호남과 똑같이 처치해야 하는데, 장차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지금 입격한 〈자들은 다 자기가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 실지로는 뇌물을 주고 대신 쏘게 한 무리들이 많으니, 해괴하고도 경악스럽습니다. 부정하고 공평하지 않은 폐단이 이보다 심할 수 없는데, 지금 만일 우물쭈물하고 분명하게 바루지 못한다면 기강의 훼손과 명분의 문란이 아마 여기서부터 더욱 심하여 〈장차 나라꼴이 형편없게 될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계책으로는 지금 겨울 수자리는 이미 지났고 봄 방수가 박두하고 있으니, 시취(試取)한 자들에 대해 속히 전시(殿試) 날짜를 정하여 경사(京師)에다 모아놓고 명백하게 핵실해서 재능을 시험하는 것만한 것이 없겠습니다.〉 신은 언지(言地)에 있으면서 이미 그 처음을 바루지 못하였고 또 그 끝마무리를 잘하지도 못했으니, 신의 관직을 체척하라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그러자 간원이 출사하게 하라고 계청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5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90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신분(身分)
○司諫鄭道啓曰: "近來科擧之弊, 有不可勝言。 今此廣取之擧, 實出於聖上西顧之憂, 當選熊羆之士, 以備防戍之用, 而行私代射, 壯弱不分, 用情冒錄, 賤孽居多。 紀綱由是而益毁, 名分職此而愈紊, 臣竊悶痛。 伏見去十二月二十五日下兵曹備忘記, ‘三醫司及別破陣、忠贊衛等, 托稱登科, 不察本任云, 如此雜類, 豈可竝許赴試乎? 未許通者, 一一削去, 代射人, 各別覈出, 繩以重律’爲敎。 又下敎曰: ‘於本月三十日, 今此廣取武科別試初試時, 代射、行私, 可駭、可愕之事, 非止一二云, 不小國試, 豈可如是乎? 令備邊司各別議處。 湖南各邑鄕吏入格者甚多云, 亦爲可駭。 此道京試官上來後, 各別爲先重治。 他道亦是 必皆然, 一一詳察’爲敎。 聖慮所及, 此正正名分、振紀綱之日也。 當依聖敎, 一一査出, 治罪削去之不暇。 而第臣於去十二月二十五日, 以監試官受命, 馳詣試場, 騎射已畢, 出榜構草, 已抵十餘日, 入啓(單字)〔單子〕 , 幾至畢書矣。 取考當初錄名長草字, 則改書塗擦, 將至四十人。 卽當削去, 亟請拿致入門官等行詐用私之罪, 而考出之際, 自致遲延。 況三醫司、別破陣、忠贊衛等有本職之外, 或書保人, 或書資級, 千思百計, 匿跡潛形, 莫知其何者爲三醫司, 何者爲別破陣, 則許通與否, 凡在試席者, 何從而得知乎? 不得已卽招各其司行首有司, 因傳敎 開諭明覈之意, 反覆開諭, 再三嚴令, 而三醫司則僅以一二未贖身者塞責書呈, 別破陣、忠贊衛則終不現告, 若不嚴囚重治, 勢難明覈。 至於三醫生徒, 居外之多, 累倍於京, 而皆以不知爲辭, 苟非行會八道, 一一査出, 則恐有所未盡之患也。 且鄕吏許科, 昭載國典, 經亂之後, 死亡殆盡, 餘存稍實, 亦皆贖身本州所屬, 不過貧殘若干人。 今又登第, 將何使喚而爲郡役? 名貢生, 乃是鄕吏也。 來參京榜者, 不爲不多, 所當與湖南一樣處置, 未知將何以爲之。 今玆入格者, 皆非自己有才之人, 實多行賂代射之類, 可駭可愕。 不正、不公之弊, 未有甚於此, 今者因循, 未能明正, 則紀綱之毁、名分之紊, 恐自此而益甚, (將無以爲國也。 臣愚之計, 今之試取者, 冬戌已過, 春防將迫, 莫若速定殿試, 咸聚京師, 明覈試才。) 待罪言地, 旣不能正其始, 又不能善其後, 請命遞斥臣職。" 答曰: "勿辭, 退待物論。" 諫院啓請出仕。
- 【태백산사고본】 52책 5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9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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