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사 이정귀가 국방의 일로 비밀히 차자를 올리다
진주사 이정귀가 비밀로 올린 차자에서,
"신이 서광계의 상소문 한 부분을 보니, 말이 매우 교묘하고 계략 또한 음흉하고 참혹하여 다 읽기도 전에 심장이 찢어지는 듯하였습니다. 국사가 여러 가지로 불행하여, 항복한 장수가 아직까지 적의 소굴에 있으면서 살아 돌아올 작정으로 적에게 서로 우호 관계를 맺는 방법으로 꾀었고 적 또한 항복한 장수를 미끼로 화친하도록 위협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은 중국이 우리 나라를 봐주는 관계를 끊으려고 오로지 남침을 계획하고 있는데도 우리 조정에서는 어떤 방책도 내지 못하고 왕복하며 견제하는 정도를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요동과 광녕 등지에 유언비어가 가득 퍼져 있는데, 중국인들은 우리측의 실정을 살피지 않고 흔적이 흡사한 것을 잡고서 우리를 의심하는 설을 사실화하고 있으며 이는 서광계 한 사람만이 아닌 듯합니다.
통보(通報)와 여러 상소문 등본을 신이 들을 길이 없었는데, 어제 우연히 어떤 사람을 통하여 운남 어사(雲南御史) 장지발(張至發)의 계본을 보았습니다. 그 속에서 ‘노추(奴酋)가 조선과 화친을 맺자고 위협하자 조선의 군신(君臣)들이 두려움에 떨며 자국의 안보에 급급하니 겉으로는 바른 체하면서 속으로는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순종한다면 적의 선박이 남쪽으로 내려와 계속 전진하여 등주(登州)와 내주(萊州)를 엿보고 더 깊숙이 들어가 서주(徐州)와 연주(兗州)를 엿보게 될 것입니다.’하였는데, 근거없는 것을 날조한 참혹함이 서광계의 경우와 다름이 없어 참으로 통분할 노릇입니다.
서광계가 올린 상소에서 여러 가지 계책을 조목조목 진술하여 그 사실을 상당히 알고 있는 듯하였기 때문에 대각(臺閣)의 여러 신하들이 혹은 ‘그의 의리와 기개를 장하게 여기고 그의 충성과 지략에 감복한다.’하고, 혹은 ‘병사(兵事)를 훤히 꿰뚫고 있고 지략이 누구보다 뛰어나다.’ 하였습니다. 또 성지(聖旨)가 오랫동안 비준을 내리지 않자 육부(六部)가 대궐 앞에 엎드려 계속 상소하면서 비준을 내리기를 재촉하였는데, 병부 상서 황가선(黃嘉善)이 한마디 말로 따르기 어렵다고 하자, 과관(科官)이 나라를 그르치는 처사라고 탄핵하면서 형벌을 적용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서광계가 천하의 신망을 받고 있고 그의 논의가 일시의 존중을 받고 있음을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문(奏文)에서는 서광계가 올린 상소의 내용만을 가지고 거론하여 해명하고 있는데, 마치 진술하여 해명하는 듯하기도 하고 또 오로지 그의 말을 공박하는 듯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서광계가 우리의 적이 되어 서광계를 지원하는 모든 과도관들이 분분하게 일어나서 있는 힘을 다하여 팔을 휘두르며 우리를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주문이 해과(該科)에 내려져서 먼저 과관의 제동을 받는다면 무함을 해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들의 무함을 더 받게 될까 두려우니, 사신이 비록 머리를 깨뜨리고 가슴을 치면서 해명한다 하더라도 어찌 그 많은 사람들의 노여움을 풀 수 있겠습니까.
주문에서는 장지발(張至發)의 상소에서 언급한 내용까지 포함하여 간곡하게 변론하되, 서광계와 장지발에 대하여는 모두 직접 이름을 거론하여 비난하지 않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남이 의심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마땅히 먼저 믿을 만한 일을 해야 되며, 일에 믿을 만한 것이 없으면 나서서 의심을 풀려는 것이 더욱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오늘날의 무함을 변론하려면 원조하고 순종하는 성의를 다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으며 원조하고 순종하는 데에서 실질적인 일은 변방 수비에 진력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곧 강가에 많은 군사를 주둔시켜 한편으로는 중국을 도와 양면 공격의 형세를 취하고 한편으로는 적의 침략을 막는 것이 오늘날의 급선무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돕지 않아 만고에 찾아볼 수 없는 흉년을 만났으며, 중외에 온통 물자가 고갈되어 공사(公私) 모두 도탄에 빠져 허덕이니 수만 명의 군사들에게 무엇으로 물자조달을 하겠습니까. 각 방면의 물자조달을 맡은 신하들이 구렁텅이에 빠진 백성들의 고혈(膏血)을 긁어 모아 군량을 호소하는 군사들을 구제한다 하더라도 바다에 풍랑이 심하여 십분지일도 운송되지 못하여 천리길에 만장(輓章)만 전해지고 쓰러진 시체가 연이어져 몇 달도 되기 전에 군영의 군사들이 굶어 죽지 않으면 저절로 와해되고 말테니, 군량이 없는 군사들이 투구를 벗어 던지고 흩어져버리는 변고만 일어나고 말겠습니까.
민간에는 곡식이 이미 고갈되었으니 황금과 비단이 산처럼 쌓여 있다 하더라도 어느 곳에서 양식을 마련하겠습니까.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는 비록 지혜가 장량(張良)이나 진평(陳平)과 같고 용맹이 관우(關羽)나 장비(張飛)와 같다 하더라도 군사 작전을 쓸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 조정이 혹시라도 내년 봄에 노추의 소굴로 진격하면서 한 장의 글로 군사를 징발한다면, 군사가 없고 양식이 없다는 말만 하고 황상의 명령에 불응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들으니, 요동과 광녕 지역에 해마다 풍년이 들어 여분의 곡식이 밭고랑에 쌓여 있으나 주민들이 뜻을 굳게 갖지 못하여 곡식은 천하게 여기고 보화(寶貨)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만약 양호(兩湖)에서 운송해 올 곡식을 가지고 은이나 여타 교환할 만한 물화(物貨)를 사들이거나 교환해 오고 하사받은 1만 냥의 은에서 전사자 가족에게 지급할 약간의 수량을 제외한 나머지를 가지고 모두 의주로 보내 중강(中江)에서 곡식을 사오게 한다면 몇만 섬은 당장에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무역으로 생기는 이익도 반드시 3, 4배의 잉여가 생기고 운반 선박이 전복되는 걱정도 없으며 굶주린 백성들이 이거나 지고 다니는 고통을 면할 수 있게 될 테니 그 편리함과 이익이 어느 정도라 하겠습니까.
지금 마땅히 웅 경략(熊經略)에게 자문을 보내 금년에 흉년이 든 실상을 자세하게 진술하고 이어서 곡식을 사들여 변경의 군사들에게 먹일 양식으로 쓸 수 있게 하도록 요청한다면 웅 경략도 반드시 물자를 준비하여 중국을 도와 적을 막으려는 실상을 보고 기뻐하여 무역을 하도록 허락할 것입니다. 그가 허락한다면 실로 큰 다행이 될 것이고, 설사 허락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우리 나라가 기근이 들어 피폐한 실상이 이 정도에 이른 것을 알게 되어 앞으로 군사를 징발할 때에 혹시라도 이것을 인하여 너그럽게 형편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염초(焰硝)와 궁각(弓角)은 적을 방어하는 도구에 유리하게 쓰이는 것입니다. 작년에 주청하자 하사받은 은 3천 냥으로 무역할 것을 허락하였고, 병부(兵部)도 우선 7백 냥의 은으로 먼저 무역하도록 하였습니다. 또 웅 경략은 왜 전부를 가지고 무역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신의 행차에서 병부나 경략에게 자문을 보내 남은 은 약간을 가지고 더 많은 수량을 무역하여 온다면, 황상의 은혜에 감사하고 군비의 준비를 중하게 여기는 뜻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는 군수물자를 준비하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이 드러나서 유언비어가 저절로 멎게 되어 무함을 해명하는 데에도 상당한 도움이 있게 됩니다. 묘당이 반복 논의하여 처리하게 하소서.
신이 살아서 도성문을 들어올 수 있게 되어서 큰 은혜에 감격하였고, 이제 중국으로 떠날 때를 당하여 나름대로 지붕을 쳐다보며 우려스러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사신으로 가는 일로 인하여 저의 어리석은 생각을 모두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모두 비국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1책 51권 61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74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 무역(貿易) / 군사-군기(軍器)
○陳奏使李廷龜祕密箚子:臣伏見徐光啓疏揭一款, 語甚機巧, 計亦陰慘, 讀之未了, 心腸震悼。 國事種種不幸, 降將尙在賊窟, 自圖生還, 誘賊以通好之謀, 賊亦餌降將以脅和。 欲絶內顧, 專意南侵, 朝廷策無奈何, 未免往復羈縻。 遼、廣之間, 流言布滿, 天朝之人不察我之實情, 執迹之似, 以實其疑我之說, 似不獨一光啓也。 通報及諸疏謄本, 臣無路與聞, 昨偶因人得見雲南御史張至發一本, 則有曰: "奴酋脅結朝鮮, 朝鮮君臣惴惴自保, 其不陽衡而陰順乎? 陰順則舲舸南指, 進而窺登、萊, 深而窺徐、兗。" 云, 其構捏無形之慘, 無異於光啓, 誠可痛也。 光啓遼疏條陳諸策, 頗似識務, 故臺閣諸臣, 或云: "壯其義膽, 服其忠猷", 或云: "曉暢兵事, 智略出人。" 聖旨久不准下, 則六部伏閤, 聯疏催下, 兵部尙書黃嘉善, 一言持難, 則科官劾以誤國, 請申三尺。 光啓之負天下望, 其議之爲一時重, 據此可見。 今於奏中, 只將光啓疏辭, 單擧陳辨, 有若專攻其說, 則光啓便爲我敵, 科道諸官之右光啓者, 必紛然而起, 攘臂而攻我, 不遺餘力矣。 奏下該科, 先被科參, 則非但誣不得辨, 抑恐益受其誣, 使臣雖碎首搥胸, 何能釋其衆怒乎? 奏文中竝及張至發疏中之語, 委曲陳辨, 而其徐其張, 竝不必擧名指斥, 似爲宜當。 仍竊伏念, 欲人之不疑, 當先爲可信, 事無可信, 則求而釋疑, 益致其疑。 辨今日之誣, 莫如盡助順之誠; 助順之實, 莫如盡防守之備。 置重兵於江上, 一以助天朝掎角之勢, 一以防 老賊豕突之患, 最爲今日急務。 而天不助宋, 又値萬古無前之凶歉, 中外赤立, 公私塗炭, 數萬之軍, 何以接濟? 諸路調度之臣, 括盡溝壑之血, 以救庚癸之呼, 而重溟風浪, 十不致一, 千里飛輓, 僵仆相望, 不出數月, 陣前之卒, 非枯死則自潰耳, 奚但脫巾之變而止哉? 民間粒米已竭, 假使金帛山堆, 何處備辦? 到此地頭, 雖智如良、平, 勇如關、張, 無用武之地矣。 雖曰如此, 而天朝儻於明春, 進兵奴穴, 一紙徵兵, 則其敢曰無軍無食, 而不應詔命乎? 竊聞遼、廣之間, 比歲豐登, 餘糧棲畝, 而民無固志, 賤穀貴貨云。 今若以兩湖應運之穀, 貿換銀子及他可換物貨, 且將欽賜萬兩之銀除出, 頒給陣亡, 若干之數, 盡送義州, 貿穀於中江, 則累萬之穀, 可以卽辦。 貿遷之利, 必得三四倍之剩, 而無舡運覆敗之憂, 免飢民負戴之苦, 其爲便益, 爲如何哉? 今宜移咨於熊經畧, 極陳今歲飢荒之狀, 仍請貿穀, 以爲邊軍之餉, 則經略必喜其拮据措置, 助順禦敵之實, 而許令開貿矣。 許之則誠爲大幸, 設令不許, 猶知我國飢饉殘弊之至於此極, 而日後徵發之時, 亦或因此而恕也。 且焰焇王弓角, 禦賊之利用。 上年奏請, 至於欽賜銀三千兩, 使之許貿, 而兵部姑令先貿七百兩。 熊經畧亦問何不盡貿云。 今於臣行, 移咨兵部或經略, 請以餘銀若干兩, 加貿以來, 則感皇賜重征繕之意, 自然呈露。 非惟軍需有備, 實情可暴, 流言自息, 其於辨誣, 亦不爲無助。 請令廟堂覆議以處。 臣生入脩門, 感激鴻私, 今當去國, 竊不勝區區仰屋之憂。 適因使事, 竝陳瞽說。 取進止。答曰: "令備局議處。"
- 【태백산사고본】 51책 51권 61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74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 무역(貿易) / 군사-군기(軍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