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광해군일기[중초본] 138권, 광해 11년 3월 5일 무자 2번째기사 1619년 명 만력(萬曆) 47년

이충의 졸기

이충(李沖)이 죽었다. 이충은 이양(李樑)의 손자로 사론(士論)에 버림받은 자인데, 외척과 혼인을 맺어 궁궐과 결탁하였으며 흉악한 무리에게 붙어서 현직에 통망(通望)되어 높은 품계로 뛰어올랐다. 위인이 흉험하고 탐욕스러운데다 포학하여 사람의 목숨을 한 포기 풀이나 다름없이 여겼는데, 【일찍이 배에서 갓난아기가 우는 소리를 듣고는 그 아기를 강에다 던져버리기도 했었다.】 그는 진기한 음식을 만들어 사사로이 궁중에다 바치곤 했는데, 【왕은 식사 때마다 반드시 이충의 집에서 만들어 오는 음식을 기다렸다가 수저를 들곤 했다.】 당시에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조롱하기를,

사삼 각로 권세가 처음에 중하더니

잡채 상서 세력은 당할 자 없구나

하였는데, 각로는 한효순(韓孝純)을, 상서는 이충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효순의 집에서는 사삼(沙蔘)으로 밀병을 만들었고, 이충은 채소에다 다른 맛을 가미하였는데, 그 맛이 희한하였다.〉 【또 영건 도감의 제조로 있던 때에는 역사의 감독을 매우 혹독하게 하고, 환관들을 곡진하게 섬기며 온갖 방법으로 아첨해서 토목공사를 극도로 장엄하고 화려하게 하는 데에 일조하였다.】 그런데도 왕은 그가 임금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여 날로 더 총애하였으며, 발탁하여 찬성에 제수하였었다. 이 때에 이르러 죽자 이틀 동안 조시(朝市)를 중지하고, 관곽(棺槨)을 지급하고 별도로 부의를 전하게 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우의정에게 제수하였는데 죽고 난 후에 추증하지 않고 곧장 재상직에 임명하는 것은 이충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왕은 매우 슬퍼하고 애석해 하면서 ‘국가를 위해 자신이 원망을 받으면서도 맡은 일에 마음을 다했다.’고 전교하기까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67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14면
  • 【분류】
    인물(人物) / 어문학-문학(文學) / 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李冲卒。 , 之孫也, 爲士論所棄, 連婚戚屬, 交結宮禁, 附托凶黨, 得通顯路, 超陛崇秩。 爲人險貪暴, 視人命如草芥, 嘗於舟次, 聞乳兒啼聲, 投之江中。 作珍羞異味, 私獻宮中, 王每於食時, 必待家供具, 始乃下箸。 當時, 有人作詩以嘲曰:"沙參閣老權初重, 雜菜尙書勢莫當。" 閣老, 指韓孝純, 尙書, 指也。 且爲營建提調, 督役甚酷, 曲事宦寺, 百方媚悅, 助成土木, 備極壯麗。 (孝純家, 以沙參作蜜餠, 以菜雜他味, 其味異常。) 王以爲愛君, 寵遇日隆, 擢授贊成。 至是死, 停朝市二日, 命給棺槨別致賻。 特授右議政, 身死後, 不爲追贈, 而直拜相職, 自始。 王嗟悼甚惜, 至有"爲國任怨, 盡心職事"之敎。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67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14면
  • 【분류】
    인물(人物) / 어문학-문학(文學) / 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