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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137권, 광해 11년 2월 3일 정사 2번째기사 1619년 명 만력(萬曆) 47년

도료군 중 포수를 차출하여 경략에게 보낸 것은 잘못이라고 도원수 강홍립에게 하유하다

도원수 강홍립에게 하유하였다.

"당초 도료군(渡療軍) 1만 명은 오로지 양서(兩西)의 정예병만을 선발하여 단속하고 훈련시켰으므로 장수와 졸개들이 서로 익숙하니, 지금에 와서 경솔히 바꾸기는 곤란하다. 중국 장수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만 말고 오직 패하지 않을 방도를 강구하는 데에 힘을 쓰라. 경략이 징발하는 포수는 비록 보내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정문(呈文)으로 회답할 때에 만약 ‘우리 나라의 군사 1만 명이라고 말은 하지만 숙달된 포수는 매우 적은데 지금 그 중에서 4백 명을 차출하게 되면 동쪽 방면의 헝세가 매우 위태롭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면, 경략이 다른 진영에 배치하지 않고 우리 나라로 돌려보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털끝만큼도 곤란해 하는 기색없이 들여보낼 것을 흔쾌히 허락하였으니, 경의 이 조치는 잘못 생각한 일인 듯하다. 만약 우승은(于承恩)의 왕래하는 인편을 만나게 되면 사정을 갖추어 말하여 그로 하여금 경략의 아문에 주선하게 함으로써 진영을 나누는 일이 없도록 하라."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0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軍事)

○下諭于都元帥姜弘立曰: "當初渡遼軍一萬, 專以兩西精銳抄發, 團束敎練, 將 相熟, 今難輕易換易也。 毋徒一從天將之言, 而唯以自立於不敗之地爲務。 經略所調炮手, 雖不得不送, 而呈文回答之際, 若曰: ‘我國軍兵, 雖曰滿萬, 成才炮手絶少, 今就其中, 抽出四百, 則東路之勢, 甚孤。’ 云, 則經略或有不配他營, 還送我國之理矣。 今無一毫持難之色, 而快許入送, 卿之此擧, 恐誤思量。 如遇于承恩往來之便, 使備陳事情, 使之周旋於經略衙門, 俾無分營之患。"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0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