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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129권, 광해 10년 6월 19일 병자 8번째기사 1618년 명 만력(萬曆) 46년

양 경략이 군대를 일으켜 토역하는 일로 보낸 자문의 내용

흠차 경략 요동 등처 군무(欽差經略遼東等處軍務) 병부 좌시랑 겸 도찰원 우첨도어사(兵部左侍郞兼都察院右僉都御史) 양호(楊鎬)가 군대를 일으켜 토역(討逆)하는 일로 자문을 보내었다.

"살피건대, 저 보잘것없는 노이(奴夷)가 하늘을 거역하고 위를 범하였으므로 군대를 일으켜 단호히 정벌해야 한다는 생각을 온 천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본부원(本部院)이 특별히 파견해 군무(軍務)를 경략케 하는 임무를 삼가 받들었는데, 황상의 칙서 안에 ‘조선을 고무시키도록 하라.’는 분부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어찌 귀국이 급작스럽게 왜놈들의 침략을 받자 상국에서 힘껏 응원하며 수군과 육군을 무려 수십만 명이나 동원하고 수백만 석이 넘게 중국의 양식을 귀국에 옮겨 수송하면서 두 번에 걸쳐 수 년 동안 주선해 준 끝에 겨우 안정이 되었던 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에 본부원이 외람되게도 경리(經理)의 임무를 맡아 몸소 전장에 나갔는데 거둔 성과는 없었어도 나름대로 걱정은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역(戰役)에서 진정 귀국에 자문으로 청하여 공동으로 원수를 갚음으로써 황상의 분부에 부응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국왕께서 독무(督撫)에 회답하는 자문을 갖고 도착한 홍문관 교리 이잠을 만났는데, 그 자문의 내용이 관망하는 듯하는 것이었고 뜻도 굳고 바르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잠 또한 스스로 간절한 심정을 개진하는 정문(呈文) 하나를 바쳤는데, ‘앞뒤로 겨우 적을 막고 있다.’는 내용이 아니면 ‘서울이고 지방이고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으며 ‘국력이 넉넉치 못하다.’는 내용이 아니면 ‘교련이 거의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디 훈련되고 양식을 지급받는 군사들은 가만히 놔두고 단지 호미메고 쟁기잡은 농부들만 동원한 것이 교활한 왜적이 빈틈을 타 일어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데다 노적(奴賊)이 짓쳐 들어오지 않을까 염려한 탓이기도 하지만, 호랑이 이야기만 해도 안색이 변하니 호랑이 굴 밖에서 어떻게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왕의 신하들의 불충한 점을 세세히 수죄(數罪)할 것이 분명하기에 총독(總督)에게 보내는 자문을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싸들고 돌아가서 각별히 상의토록 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노적을 정벌하는 일은 본조를 위한 것일 뿐만이 아니라 왕의 나라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국왕께서 과거에 몇 차례나 노추(奴酋)가 깔보며 업신여긴다고 보고를 해 왔고 변방의 관원이 누차에 걸쳐 역시 꾸짖었는 데도 고치지 않다가 이제 와서는 우리를 거역하고 있으니 국왕의 북쪽 변경이야 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를 도와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룬다면 그야말로 국왕의 봉토에서 편안한 복을 누리게 될 뿐만이 아니라 충의의 이름까지도 얻게 되는 셈인데 또 무엇을 꺼려 하시지 않습니까. 더구나 북관(北關)의 금(金)·백(白) 2추(酋)마저도 마병(馬兵) 1만을 마련하여 노적의 목을 누르고 있는데, 귀국에서는 어찌하여 그 등을 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입니까.

어쩌면 수만 병력을 갑자기 채우기가 어렵고 또 한편으로는 독자적으로 감당해내기가 난처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내가 왕에게 약속하겠습니다. 그저 1만 정병만 미리 뽑아 한 달 가량의 양식을 아울러 마련한 뒤 왕의 국경에 있게 하십시오. 그리고 작전이 벌어졌을 때 노추가 동쪽으로 충돌해 오는 것을 막아 도망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겨울철에 진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잇달아 요진(遼鎭)의 정예병과 함께 합동으로 공격해 들어가십시다. 2, 3백 리도 채 되지 않는 지역 안에서 몇 갈래 길로 공격하며 일제히 쳐들어 가면 10일 정도에 일을 끝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귀국에 알려드리는 것이 합당하겠기에 자문을 보내니 번거롭지만 앞뒤 자문의 사리를 잘 살피시어 속히 계책을 의논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어디에서 뽑은 병정(兵丁)이 정확하게 몇 명인지, 총령(摠領)하는 대장은 어떤 사람인지, 지휘를 분담하는 편비(褊裨)는 어떤 사람인지, 수륙의 어떤 요충지를 제압하고 있는지를 명시하고 아울러 노추와 가까운 지역의 지리 및 형세를 지도로 그려서 수고스럽지만 이잠으로 하여금 가져오게 하여 들어가 주문(奏聞)하는데 편리하도록 해 주십시오. 모쪼록 노를 두드리면서 맹세하고 책상을 쪼갠 것129) 처럼 도모하시고,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며 진퇴양난에 빠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병기(兵機)는 비밀 유지가 중요하고 더욱이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니, 조정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되 내심 단안을 내리고 하루 아침에 결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자문이 잘 도착되기를 빕니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10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註 129]
    노를 두드리면서 맹세하고 책상을 쪼갠 것 : 《진서(晉書)》 권62 조적전(祖逖傳)에 진(晉)나라 조적(祖逖)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도중에 노를 두드리며 중원을 평정하겠다고 강물에 맹세한 일과, 오(吳)나라 손권(孫權)이 조조(曹操)를 상대로 적벽(赤壁)에서 전투를 벌이려 하면서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이처럼 될 것이라고 단안을 내리며 칼로 책상을 쪼갠 것을 말함.

○欽差經略遼東等處軍務兵部左侍郞兼都察院右簽僉都御史楊鎬, 爲興師討逆事: "照得蠢爾奴夷, 逆天犯上, 六師九伐, 四海一心。 本部院, 恭承特遣經略軍事, 所奉勅書內開, 有鼓舞朝鮮之旨。 豈非以貴國遄罹倭奴之患, 曾勞上國之援, 徵水陸之兵, 至拾數萬, 轉本折之餉, 過數百萬, 兩番數年, 纔得底定? 於是, 本部院, 叨任經理, 身在戎行, 雖靡成勞, 頗竭愚慮。 今玆之役, 政欲咨請貴國, 共效同讎, 以副欽旨。 適逢弘文館校理李埁, 齎到主王之咨復督撫者, 辭若觀望, 意不堅貞。 而李埁, 又自爲仰陳, 危悃一呈, 不曰腹背支撐, 則曰中外不遑, 不曰生聚不敷, 則曰敎演無幾。 明捨原操支糧之軍士, 但調荷鋤秉耒之農夫, 旣恐狡之乘虛, 又虞奴賊之奔突, 譚虎, 便已變色, 穴外, 何能得子? 此等情形, 聞知朝內, 必有縷數王之臣之不忠者, 故將總督咨文, 暫煩齎回, 另勞商議。 竊謂勦之擧, 非止爲本朝, 亦爲王國也。 王, 曩者, 數以奴酋侵凌, 入告, 邊官屢亦責讓, 不悛, 今且逆我顔行, 又何有於王之北境乎? 倘助順成掎角之勢, 卽王封享安枕之福, 而又有忠義之名, 亦何憚而不爲之? 況北關二酋, 尙且備馬兵一萬, 扼之喉, 而貴國, 豈難於拊其背耶? 或者, 以數萬難遽盈, 一面難獨當, 當今與王約。 止預選精兵一萬, 兼備旬月糧糗, 在王之境上。 臨時拒奴酋東衝, 以防逃逸。 俟冬月進兵之日, 仍以遼鎭精銳, 一同前攻。 不過二三百里之遙, 數路齊搗, 旬日畢事耳。 爲此合照, 貴國煩爲査照先後咨文事理, 作速計議, 停當。 先以選過何處, 兵丁名數, 的確若干, 摠領大將某人, 分領偏裨某人, 扼何水陸要衝, 竝圖畵近酋地理形勢, 仍煩李埁齎來, 以便入奏。 須有擊楫斫案之圖, 而勿爲鼠首狼跋之慮。 兵機貴密, 尤貴速, 廷咨於衆, 內斷於心, 一朝可決矣。 (須至咨者。)"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10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