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하여 정청에 불참한 대관·종실들을 삭출할 것과 군병 징발의 일 등을 아뢰다
합계로 연계하기를,
"천하의 죄에 대해서는 살았을 때 중하게 벌을 내리고 죽었다고 해서 가볍게 해 주는 이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항복의 경우, 살았을 때는 의논드린 것이 도리에 어긋나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렸다 하여 유배보내기까지 하였는데, 죽고나자 갑자기 관작을 회복시켜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한 항복에 대해서 살았을 때는 죄를 주고 죽고나자 관작을 회복시켜 주다니 이것이 무슨 거조입니까. 신들은 정말 성상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론이 모두 분개하면서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으니 속히 성명을 환수하라 명하소서.
지난번 정청한 것이야말로 충성심에 북받쳐 역적을 토죄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서 대소 신민들이 꾀하지 않고도 같은 말을 하며 피를 뿌려 가면서 진달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백관 중에 괴이한 무리들은, 감히 다른 마음을 품고서 시종일관 불참한 자도 있고 의논드리면서 저쪽 편을 든 자도 있습니다. 이런 일도 차마 할 수 있을진대 무슨 일을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정창연(鄭昌衍) 등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는 단연코 용서할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사람들이 모두 아는 늙고 병들어 폐인이 된 자들의 경우는, 대열에 따르도록 요구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라에 대론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물러가 태연히 있으면서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경우는, 좀 덜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일체 정부의 거안(擧案)대로 모두 삭출을 명하소서.
지난번 정청할 때 종실은 행불행을 같이해야 할 의리가 있는 만큼 더욱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성 도정(西城都正) 이희성(李希聖) 등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청하는 대열에 불참하였고, 심지어 의창군 이광은 소원한 종실과는 입장이 크게 다른 데도 끝내 의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그리고 한음군 이현 등은 종친부에 늙고 병들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다고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만, 아무리 늙고 병들었다 하더라도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은 것은 그 죄가 없지 않으니 모두 삭출을 명하소서. 그리고 의창군 광과 당원위(唐原尉) 홍우경(洪友敬)에 대해서 합계로 한창 죄를 청하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녹봉을 제급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대론이 이로부터 해이해지고 왕법이 이로 말미암아 폐기되고 말 것이니 어찌 크게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속히 성명을 환수하소서.
신들이 삼가 듣건대, 재자관(齎咨官)의 비밀 장계 중에 ‘하남 어사(河南御史)가 조선의 병마 및 광령(廣寧)·요동(遼東)의 군졸과 함께하기를 청하였다.’ 운운하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상세한 내용은 신들이 알 수 없습니다마는, 예전부터 중국 조정에서는 우리 나라를 내복(內服)112) 처럼 여겨 크고 작은 근심거리가 생길 때마다 보살펴주지 않은 일이 없었으니, 의리상으로는 군신이지만 정리로 보면 부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지난 임진년 때 우리 청구(靑丘)가 하마터면 왜놈들에게 먹힐 뻔하였는데, 다행히 성스런 천자(天子)께서 천하의 군대를 움직이고 천하의 양식을 운반하여 깨끗이 소제해주신 덕분으로 오늘날이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후히 베풀어 준 그 깊은 은혜야말로 아홉 겹의 못보다도 깊고 구정(九鼎)보다도 무겁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오랑캐가 화를 일으켜 군사 행동을 벌이는 바람에 원근이 시끄러워지면서 우서(羽書)가 잇달으고 있으니, 우리 나라의 도리로서는 이를 듣는 즉시 군대를 징발한 뒤 밤을 낮삼아 이틀 길을 하루에 달려가서 선봉 역할을 수행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인데, 어떻게 황제의 조칙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린단 말입니까. 오늘날의 계책으로는 체찰사와 원수 등을 즉시 내보내 급히 요리하게 함으로써 뒤늦은 데 따른 주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니, 그러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궁궐 공사가 부득이해서 나온 일이긴 합니다만, 경영한 지 이미 오래 되어 백성의 힘이 탈진되었으니 변방의 급보가 없다 할지라도 우선 쉬게 하면서 뒷날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중국의 어려움을 급히 구해야 할 이때에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두 궁궐의 공사를 속히 정지시키소서.
요즘 성상의 건강이 좋지 못하신 탓으로 경연을 오래도록 폐지하다 보니 대소 신료가 생각이 있어도 뵙고 진달드릴 길이 없습니다. 지금 사태가 날로 악화되어 가기만 하니 신료를 인접하시는 일이야말로 오늘날의 급무라 할 것입니다. 불시에 소대(召對)를 명하시어 바람직한 대책을 자문하소서.
전 지평 이중계(李重繼)는 입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렇듯 대론이 한창 전개되는 날을 당하여 역적을 토죄하는 일에 성의가 없어 같이 일하려 하지 않은 나머지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교묘히 피하려 한 자취가 현저하게 드러났는데, 끝내는 누차 정사하여 기필코 체차됨으로써 그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신자의 의리가 과연 이러한 것입니까. 대론을 회피하려 꾀한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으니 유배보내라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 처치를 기다리고 번잡스럽게 소란떨지 말라. 의창군 등에게 녹봉을 제급토록 한 일과 이항복에 관한 일은 이미 유시하였다. 징병에 대한 일은 묘당에서 알아서 할 것이니 번거롭게 아뢸 필요가 없다. 궁궐 공사에 관한 일은 나의 뜻을 이미 유시하였는데 지금 공사를 섣불리 중단시킬 수는 없다. 소대하는 일은, 나의 병 증세가 마찬가지이니 형세를 보아가며 하겠다. 이중계의 일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모조리 다스릴 수 있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대개 대간도 신하이다. 전후로 하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전교를 무시한 채 매번 급하지도 않은 계사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귀찮게 하다니 부당하기 짝이 없다. 병이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우선 정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방수(防守)와 관련된 기발하고 훌륭한 계책이 있거든 그런 것은 논계해도 좋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96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재정-상공(上供) /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왕실-경연(經筵)
- [註 112]내복(內服) : 중국 안의 제후.
○合啓連啓曰: "天下之罪, 無生重死輕之理。而恒福, 其生也, 獻議悖慢, 忘君負國, 至於竄黜, 其死也, 遽命復爵。 一恒福也, 生則罪之, 死則官之, 此何等擧措耶? 臣等實未知聖意之所在也。 輿情共憤, 日以益激, 請亟命還收成命。 頃日庭請, 實出於奮忠討逆之意, 大小臣民, 不謀同辭, 瀝血陳疏, 而百官中怪鬼之輩, 敢懷他心, 或終始不參者有之, 或獻議右袒者有之。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鄭昌衍等忘君負國之罪, 斷不可原, 請竝命遠竄。 至於衆所共知老病廢疾者, 則雖不可責之以逐隊, 而國有大論, 終始退安不參者, 簿乎云爾, 亦不可謂之無, 罪一依政府擧案, 請竝命削黜。 頃日庭請時, 宗室則義同休戚, 尤不可不參。 而西城都正 希聖等, 終始不參庭請之列, 至於義昌君 珖, 大異於疎遠宗室, 而終不獻議。 其忘君護逆之罪, 不可不治, 請竝命遠竄。 且漢陰君 俔等, 宗親府以老病, 不參書送, 雖曰老病, 終始不參, 不無其罪, 請竝命削黜。 且義昌君珖、唐原尉 洪友敬, 方在合啓, 請罪之中, 而還遽下給祿之命, 大論從此而解弛, 王法由是而廢墜, 豈不可大畏也? 請亟還收成命。 臣等伏聞, 齎咨官祕密狀啓中, 有河南御史, 請與朝鮮兵馬及廣寧、遼東之卒云云之說。 其詳則臣等之所不得知, 而自前中朝, 視我國, 如內服, 大小禍患, 無不相恤, 義雖君臣, 情猶父子。 昔在壬辰, 惟我靑丘, 幾爲倭奴所呑, 幸賴聖天子, 動天下兵, 運天下糧, 掃除廓淸, 得有今日, 深恩厚施, 殆將淺九淵而輕九鼎矣。 目今賊胡, 禍結兵連, 遠近繹騷, 羽書交馳, 爲我國之道, 聞卽調兵, 晝夜兼程, 先登之不暇, 豈待皇勅之降哉? 爲今日計, 卽出體察、元帥等, 使急速料理, 無犯後至之誅, 豈不休哉? 且營建之事, 雖出於不得已, 而經始旣久, 民力殫竭, 雖無邊報之急, 竝亦可姑休, 以待他日。 況此君父急難之時乎? 請兩宮之役, 急速停止。 近緣聖候不寧, 經筵久廢, 大小臣僚, 雖有所懷, 末由面達。 目見時事之日非, 引接臣僚, 今日之急務。 請命不時召對, 咨訪長策。 前持平李重繼, 以立脚不定之人, 當此大論方張之日, 討逆無誠, 不欲同事, 乍出乍沒, 顯有巧避之跡, 終乃累次呈辭, 至於必遞, 得遂其願。 臣子之義, 果如是乎? 其謀避大論之罪不可不懲, 請命竄黜。" 答曰: "姑待處置, 勿爲煩擾。 義昌君等給祿事、李恒福事已諭。 徵兵事, 自有廟堂, 不必煩啓。 營建事, 予意已諭, 今不可輕易停役。 召對事, 予證一樣當觀勢爲之。 李重繼事, 如此之人, 何可盡治乎? 不允。 大槪臺諫, 亦人臣也。 前後下敎, 非止一再, 而不有傳敎, 每以不急之啓, 瀆擾至此, 極爲不當。 限平復間, 姑停爲宜。 若係干防守, 奇謀長策, 則論啓可矣。"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96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재정-상공(上供) /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