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의정 한효순이 무원의 징병을 요청하는 자문에 대한 일로 의논드리다
좌의정 한효순(韓孝純)이 의논드리기를,
"무원(撫院)이 징병을 요청하는 자문을 보낸 뒤로 신이 비국의 신하들과 다방면으로 계책을 강구해 보았습니다만 재주가 얕고 식견이 짧아 좋은 방책을 얻지 못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나라는 갑사(甲士)와 정병(正兵) 등 각종 군사가 모두 농사짓는 백성들이라서 한 사람도 쓸 만한 자가 없습니다. 단지 이른바 포수(砲手)나 살수(殺手)라고 하는 자들의 경우는 대오(隊伍)를 서로 맞추게 하는 제식(制式)이 있고 봄과 가을에 교련시키는 법이 있어 농사짓는 백성과 비교할 때 조금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장령(將領)은 군사를 모르고 사졸은 싸울 줄을 모르니 오늘날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군졸을 가지고 노추(奴酋) 오랑캐의 철기(鐵騎)와 접전하게 할 경우 무너져 흩어져서 패망하리라는 것은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병력을 조발하여 다그쳐 보낼 즈음에 혹 뜻밖의 근심이 있게 될까 우려된다고 하신 성상의 생각이야말로 정말 보통 사람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만, 우리 나라는 중국 조정에 대해서 부자(父子)의 의리가 있고 또 나라를 되찾게 해 준 은혜를 생각해야 하는 만큼, 이번에 징병하는 일에 관하여 어떻게 감히 병력이 단약(單弱)하다는 이유로 난처한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일 수 있겠습니까. 오직 양서(兩西)의 군대를 뽑되 많은 병력보다는 정예 위주로 해서 서둘러 조련시키고 미리 정리하여 칙유가 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인데, 이 밖의 일은 모두 원수(元帥)가 얼마나 잘 처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수어(守禦)하는 방략에 대해서는 체찰사(體察使)와 원수가 차출되기를 기다렸다가 비국의 신하들과 여러모로 충분히 상의해서 정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렵고 근심스러운 날을 당하여 근본(根本)을 호위하는 데 더더욱 십분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별도로 호위 대장(扈衛大將)을 두고 근도(近道)의 병력을 뽑아 그에게 예속시킨 뒤 서쪽과 북쪽 변방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교대로 입번(入番)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안으로는 훈련 도감의 군병과 좌·우를 나누어 맡고 밖으로는 수원(水原)·강화(江華)의 군병과 서로 표리(表裏)가 되게 한 뒤, 뜻밖에 일어나는 비상 사태에 대비하는 한편으로 노적(奴賊)이 무너져 쫓기면서 우리 나라로 충돌해 올 환란을 방비하게 하는 것이 사의(事宜)에 맞을 듯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급히 해야 할 일로 민력(民力)을 아껴 기르고 인심을 수습하는 것보다 더 절박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근래 양궐(兩闕)을 동시에 건립하는 탓으로 요역(徭役)이 매우 번다하여 민력이 이미 고갈되고 말았으니, 이렇듯 병력을 조발하는 날을 당하여 변통해 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신의 의견으로는, 우선 하나의 궁궐에만 힘을 쏟아서 그 비용을 줄이고 나머지 역량으로 군수(軍需)를 보충하게 한다면, 군수도 마련되고 인심도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니, 이렇게 하는 것이 또한 급한 상황을 극복하는 데에 하나의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신의 어리석은 견해는 이러하니 삼가 상께서 재결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71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左議政韓孝純議: "撫院移咨徵兵之後, 臣與備局諸臣, 多般規劃, 而才識淺短, 未得善策。 竊念我國甲士正兵各樣之兵, 皆是農畝之氓, 無一人可用。 只有所謂砲殺手者, 隊伍有相維之制, 春秋有敎鍊之法, 比之於農畝之氓, 則稍有間焉, 而將領不知兵, 士卒不知戰, 無益於今日之用則一也。 以如此之卒, 交鋒於奴虜鍼鐵騎之間, 其潰散覆沒, 不待智者而知。 調發驅送之際, 或慮意外之患, 聖算所及, 逈出尋常萬萬。 第我國於天朝, 有父子之義, 有再造之恩, 今此徵兵之擧, 何敢以兵單力弱, 而少有持難之色? 惟當抄發兩西之軍, 務精不務多, 汲汲操鍊, 預爲整理, 以俟勅諭之至。 此外都在元帥之處置得失如何耳。 至於守禦方略, 則待體察元帥差出, 與備局諸臣, 反覆熟議講定爲當。 目今艱虞之日, 根本扈衛, 尤宜十分愼重。 別設扈衛大將, 抄隷近道兵, 限西北事定, 輪廻入番, 內與訓鍊都監軍兵, 分左右, 外與水原、江華軍兵, 相爲表裏, 一以備非常於意外, 一以防奴寇奔潰衝突之患, 恐合事宜。 且今日之急務, 莫切於愛養民力、收合人心, 而近以西兩闕竝建, 繇役甚煩, 民力已竭。 當此調兵之日, 不可不變而通之。 臣之妄意, 當先合力一闕, 以省其費, 推其餘力, 以補軍需, 則軍需庶有可措, 人心庶可慰悅, 此亦救急之一助也。 臣愚昧之見如此, 伏惟上裁。"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71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