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중초본] 125권, 광해 10년 3월 3일 임술 4번째기사
1618년 명 만력(萬曆) 46년
유학 지차택이 상소하여 이극신·의창군 이광의 죄를 다스리기를 청하다
유학 지차택(池次擇)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극신(李克信) 등이 무력 시위를 하며 흉역(兇逆)을 꾀한 것이 과연 이국헌(李國獻) 등의 고발 내용과 같다면 이는 실로 천하의 대역(大逆)입니다. 이 일을 안 이상 이 일에 끼어든 셈이니, 말의 출처를 자세히 조사하여 뒷날 대답할 여지를 마련토록 하소서. 그리고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은 왕실의 지친(至親)으로서 존망(存亡)을 함께 해야 할 신하인데, 재신(宰臣)들이 의논을 바칠 때를 당하여 유독 의논을 드리지 않았으니, 그 죄는 정청(庭請)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은 것보다 심한 점이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양사의 관원이 못들은 척하면서 덮어 두고 말하지 않으며, 그저 ‘가난하고 병든 왕족의 먼 후예’라며 책임이나 메우는 식으로 논계하였으니, 일을 엄하지 못하게 논한 양사의 죄를 속히 다스려 인신(人臣)의 대의를 밝히도록 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44책 44권 4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외교-명(明) / 군사-병법(兵法)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