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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124권, 광해 10년 2월 28일 무오 1번째기사 1618년 명 만력(萬曆) 46년

우부승지 박정길이 역로의 폐단에 대해 진달하다

우부승지 박정길(朴鼎吉)이 아뢰기를,

"지난번 연위사(延慰使) 정규(鄭逵)의 장계를 보건대, 역로(驛路)가 형편 없어 쉽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번에 황연 감사(黃延監司) 유순익(柳舜翼)의 장계를 보니 여러 역참(驛站)의 피폐된 상황을 극력 말하면서 7참(站)이 쓸쓸하게 된 정상을 진달하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명령은 오직 우전(郵傳)을 통해서만 행해지는데, 해서(海西)가 이런 정도라면 관서(關西)는 더욱 심할 것입니다.

신이 매번 서로(西路) 왕래자를 통해 듣건대, 대동(大同)어천(魚川)에는 근년 이래로 누차에 걸쳐 적임자 아닌 사람들이 그곳을 맡으면서 아무 거리낌없이 역졸(驛卒)을 침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호(馬戶)에 잘 달리는 상등마(上等馬)가 있으면 찰방(察訪)이 사람들의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주어 그 말을 퇴마(退馬)라 지목하여 강제로 정해 개립(改立)033) 케 하면서 사사로이 부탁한 사람의 관단마(款段馬)034) 로 공공연히 대신케 하는 한편, 마호의 주인으로 하여금 3동(同)의 목면(木綿)을 갖추어 납부케 하는 동시에, 본래의 말마저 빼앗아서 그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미 말을 빼앗은 데다가, 또 목면을 징수하고 있으므로 본래 말을 분양하여 복호(復戶)를 받아 겨우 살아가고 있는 마호의 처지에는 말을 잃고 생활이 기울어 뿔뿔이 흩어져 사라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관군(館軍)과 여정(餘丁)이 1년에 납부하는 가포(價布)의 양이 매우 많은데, 이는 말을 무역할 때 값으로 치를 것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찰방이 사사로이 차지하고 있는 까닭에 겨우 살아가는 관군들이 형세상 그 가포를 마련해 낼 길이 없어 서로 이끌어 도망하고 있습니다. 중화(中和)생양관(生陽關) 한 역을 예로 들어 말하건대, 좌부승지 김질간(金質幹)이 기유년에 대동 찰방(大同察訪)으로 있을 당시, 생양의 관군(關軍) 장정이 8백 명이나 입역(立役)하고 있었는데, 현존하는 숫자가 고작 5호(戶)밖에 되지 않는다 하니, 다른 역의 상황도 이를 의거하여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왕래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를 직접 확인하여 마음속으로 탄식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목(耳目) 구실을 하는 관원들 역시 이에 대하여 모두 익히 듣고 있을텐데 한 번도 처치하도록 청하는 계사를 올리지 않았으니, 탐관오리를 어떻게 징계하여 다스리겠으며, 뿔뿔이 흩어지는 역졸들을 어떻게 무마하여 안정시키겠습니까.

대동어천의 찰방만은 예전부터 꼭 일찍이 시종(侍從)을 거친 명망이 있는 자를 차송(差送)했으니, 그렇게 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리석고 둔한 미관(微官)으로 구차하게 충원하여 차송하고 있으니 역로가 이 지경이 된 것도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지금 만약 본도 감사에게 하유하여 찰방의 탐학 여부 및 역로의 폐단을 조사한 뒤 일일이 계문케 해서 그 실상을 파악하고, 그런 뒤에 명망이 있는 대시(臺侍)를 뽑아 보내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을 바꾸어 고질적인 폐단을 통렬히 개혁케 한다면, 도망쳤던 관군을 도로 모아들이고 역로를 다시 소생시키는 일이 뭐 어렵겠습니까.

이렇듯 관리가 타락하고 백성이 곤궁한 때를 당한 것은 서로(西路)만 그럴 뿐이 아니라 팔로(八路)의 폐단도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병조로 하여금 마적(馬籍) 및 관군(館軍)의 명부를 조사하게 한 뒤, 만약 도망친 말이 생겼는 데도 아직 충원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찰방을 해유(解由)할 때 이에 따라 처치토록 하고, 본역 찰방으로 하여금 도망친 관군을 추쇄(推刷)하여 매년 연말에 일일이 병조에 보고케 하며, 추쇄하지 못하면 경중에 따라 입계(入啓)해서 죄를 과(科)하는 일 따위에 대하여 승전(承傳)을 받들어 시행케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해조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케 하라."

하였다. 【각 역(各驛)에서 말을 바치도록 하여 이익을 탐한 것이야말로 모두 박정길 등이 한 짓으로서 그 집안의 부유한 정도가 왕궁과 동등하였다. 그 딸을 이원엽(李元燁)의 아들에게 시집보낼 때 시아비를 뵐 때의 예물이 모두 3백여 기(器)나 되었으므로, 도성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굉장한 구경거리라고 하였으며, 세력 있는 집안에서는 서로 다투어 그 본을 따르려 하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역로의 폐단을 극력 진달하여 나라를 걱정하는 뜻을 보이다니 정말 간교한 인간이라 하겠다. 】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138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5면
  • 【분류】
    교통-육운(陸運) / 교통-마정(馬政) / 재정-역(役) / 물가-임금(賃金)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註 033]
    개립(改立) : 대마(代馬)로 채우는 것.
  • [註 034]
    관단마(款段馬) : 굼뜬 말.

戊午二月二十八日戊午, 右副承旨朴鼎吉啓曰: "頃見延慰使鄭逵狀啓, 則驛路無形, 未易得達云, 今此黃延監司柳舜翼狀啓, 極言諸驛之弊, 且陳七站蕭然之狀。 國家命令之行, 只恃郵傳, 海西若此, 而關西爲尤甚焉。 臣每因西路往來人, 聞大同魚川, 近年以來, 累經匪人, 侵虐驛卒, 無所忌憚。 馬戶之有能步上等馬者, 則察訪聽人私囑, 稱以退馬, 勒定改立, 以私囑人款段, 公然之。 因令馬戶主, 備納三同木, 竝與本馬, 奪而與之。 旣奪其馬, 又其木, 馬戶則本以立馬復戶資生, 而失馬傾財, 流離散亡。 館軍、餘丁價布, 一年所納, 厥數甚夥, 此是貿馬時充價之物。 而今則察訪私占, 孑遺館軍, 辦出其價, 勢末由, 相率而逃。 以中和 生陽館一驛言之, 則左副承旨臣金質幹, 己酉年爲大同察訪時, 生陽關軍丁壯八百名立役, 而今則見存者, 只五戶云, 他驛之事, 據此可知。 西路往來人, 無不目覩而心嗟。 耳目之官, 亦皆熟聞慣聽, 而未嘗有處置之啓, 貪虐之吏, 使以懲治, 離散之卒, 何以撫集哉? 大同魚川察訪, 自前必以曾經侍從有名望者差送, 其意有在。 而今則闒茸官, 苟充差送, 宜乎, 驛路之至此也。 今若下諭本道監司, 査覈察訪貪否及驛路弊端, 一一啓聞, 得其實狀。 然後以有名望臺侍差遣, 使之易轍改絃, 痛革痼弊, 逃軍之還集, 驛路之蘇復, 有何難哉? 當此吏汚民窮之時, 非但西路若此, 八路之弊, 莫不同然。 令兵曹考其馬籍及館軍之案, 如有未充立逃亡之頉, 則察訪解由時, 憑準處置, 且令本驛察訪, 推刷逃軍, 逐年歲末, 一一報于兵曹。 未能推刷者, 則從輕重入啓科罪事, 捧承傳施行。" 傳曰: "知道。 令該曹議處。" 【納馬各驛, 以饕利, 皆朴鼎吉等所爲, 其家富埒王宮。 女嫁李元燁子, 其見舅禮物, 凡三百餘器, 滿城傳看, 以爲奇觀, 豪勢之家, 爭相慕效。 今乃力陳驛路之弊, 以示憂國之意, 眞奸巧人也。】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138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5면
  • 【분류】
    교통-육운(陸運) / 교통-마정(馬政) / 재정-역(役) / 물가-임금(賃金)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