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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122권, 광해 9년 12월 24일 을묘 2번째기사 1617년 명 만력(萬曆) 45년

청기와를 싼 값에 구워 준 한사성 등을 가자하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청기와는 을묘년부터 널리 굽기 시작하는 한편 그 굽는 방법을 익힐 일로 누차 전교하였습니다. 해사에서 1눌(訥)을 구워 바치는데 드는 여러 가지 비용이 무명으로 쳐서 7, 8동 이나 되며 두 해 동안에 구은 것이 3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렇듯 경비만 많이 들고 성사될 기약은 없으므로 지난해 창경궁 공사를 끝낸 후에 이어 전교를 내려 별도로 낭청과 감역을 설치하고 선수도감에서 쓰고 남은 쌀과 무명을 마련해서 기와 1눌을 굽는데 드는 비용을 무명 4동씩 계산해서 주면서 기와 30눌을 굽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낭청 한사성(韓師聖), 감역관 윤간(尹侃)이 처음부터 끝까지 날마다 출입하면서 감독한 결과로 금년에 구워낸 숫자가 35눌이나 됩니다. 거기에 든 비용을 따져보면 1눌에 무명 3동 가량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전의 공사에 비교하면 거의 절반이나 절약되었습니다. 이것을 놓고 따져보면 남아있는 여러 가지 잡물을 가지고도 15, 16눌 정도는 충분히 구을 수 있을 듯합니다. 남아있는 염초·무명·잡물 등은 별단(別單)으로 서계(書啓)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한사성은 직급을 올려주라. 윤간은 응당 6품으로 나갔어야 하나 전교에 따라 출품시키지 않았으니 지금은 5품직을 초수(超授)하여 본 도감낭청에 제수함으로써 한사성과 함께 계속 감독하여 내년에 쓸 청기와도 이 수량에 의하여 정성을 다해 굽게 하라."

하였다. 【당시에 도감 제조 이충(李沖)·윤중삼(尹重三) 등은 임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부추겨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키더니 단청(丹靑)과 조각을 극도로 화려하고 교묘하게 하였으며, 윤간과 한사성은 기와 굽는 일을 전담하면서 무명과 포목을 낭비하였으며, 흙을 다루기 위한 여러 가지 도구가 궁중에 가득하였기 때문에 이런 명이 있었다. 왕이 또 장인(匠人)으로 하여금 많은 돈을 가지고 중국에 가서 황기와 굽는 방법을 배워오게 하였다. 황기와는 천자가 정전(正殿)의 지붕을 덮을 때 쓰는 기와로, 왕(王)·후(侯) 이하는 참람스럽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675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건설-건축(建築) / 인사-관리(管理) / 공업-관청수공(官廳手工) / 역사-사학(史學)

○營建都監啓曰: "靑瓦, 自乙卯年爲始, 廣加燔造, 傳習事, 累次傳敎矣。 該司進排一訥所入雜物, 幾至七八同, 兩年所燔, 不過三訥, 經費甚多, 成就無期。 上年昌慶宮畢役後, 仍傳敎, 別設郞廳、監役, 以繕修都監用餘米布, 商量磨鍊, 一訥所入, 每以四同計給, 三十訥使之燔造, 則郞廳韓師聖、監役官尹侃, 終始句管, 逐日出入, 今年燔出之數, 多至三十五訥。 而計其所入, 一訥不過三同許, 比諸前役, 省費幾半。 以此計之, 則其餘雜物, 亦可燔十五六訥。 故餘在焰硝、木同、雜物等, 別單書啓。" 傳曰: "知道。 韓師聖陞秩, 尹侃則應出六品, 而仍傳敎未出, 今可超授五品職, 差除本都監郞廳, 使與韓師聖, 仍爲監董, 明年靑瓦, 依此數, 着令盡心燔造。" 【時, 都監提調李冲尹重三等, 逢迎縱臾, 大興土木之役, 丹靑彫鏤, 極其華巧, 尹侃韓師聖專掌燔瓦, 靡費木布。 埏埴雜器用, 充牣宮中, 故有是命。 王又令匠人齎千金, 學燔黃瓦于京師。 黃瓦者, 天子覆正殿之瓦也。 王侯以下, 不敢僭用云。】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675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건설-건축(建築) / 인사-관리(管理) / 공업-관청수공(官廳手工)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