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중초본]118권, 광해 9년 8월 19일 신해 1번째기사
1617년 명 만력(萬曆) 45년
모화관에 거둥하여 공성 왕후의 관복을 맞이하는 예를 거행하다
왕이 진시에 모화관 막차에 거둥하여 공성 왕후(恭聖王后)의 관복(官服)을 맞이하였다. 왕이 대궐로 돌아올 때 돈화문(敦化門) 밖에서 잠시 수레를 쉬면서 예조 판서 이이첨에게 묻기를,
"관복은 정문(正門)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니, 나는 협문(夾門)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대답하여 아뢰기를,
"상의 분부가 옳습니다. 동협문으로 들어가도록 하소서."
하였다. 왕이 인정전(仁政殿) 뜰에서 관복을 맞이하는 예를 거행하였다. 예를 마치고 대궐로 돌아오기 앞서 이이첨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관복을 인정전에다 봉안하였으니, 내가 교자(轎子)를 타는 것은 거북스럽다. 걸어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교외에 거둥하셨으니 옥체가 수고로울 뿐만 아니라 일의 체모상 걸어서 들어가는 것은 부당합니다. 불가불 교자를 타셔야 합니다."
하였다. 그래서 그대로 교자를 타고 들어갔다. 왕이 나와서 황은(皇恩)에 감사하니, 백관들이 하례를 올렸다.
- 【태백산사고본】 41책 41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613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행행(行幸)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