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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116권, 광해 9년 6월 21일 갑인 6번째기사 1617년 명 만력(萬曆) 45년

창의문 밖의 돌을 실어와 쓰라고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30리 바깥에서 돌을 뜰 경우 시급한 역사를 결단코 완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창덕궁과 창경궁을 영조할 때 이미 창의문(彰義門) 밖의 돌을 떠다가 썼으며, 신궐로부터 건방(乾方)이 되니 더욱더 무방하다. 그러니 이제 창의문 밖에서 돌을 떠다가 쓰라. 그리고 우이동(牛耳洞)의 돌을 떠올 것은 전각을 조성할 대석(大石)인데, 봉교(鳳橋)가 석교(石橋)이니 이에서 골라 쓰되, 이러한 돌들은 지금 별도로 감역관(監役官)을 정하고 수레를 나누어 보내어, 적당히 헤아려서 뜬 다음 실어들이라. 그리고 전각을 짓는 데 쓰는 돌이외에도 써야 할 돌이 반드시 많을 것이니, 이것은 창의문 밖의 돌을 그대로 떠다가 실어와서 쓰라."


  • 【태백산사고본】 40책 40권 59장 B면【국편영인본】 32책 598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건설-건축(建築)

○傳曰: "三十里外浮石, 時急之役, 決難完了。 且昌德昌慶宮營造時, 已伐彰義門外之石用之, 自新闕又是乾方, 尤無妨。 今爲浮石於彰義門外以用, 而牛耳洞石浮取, 殿閣所造大石, 鳳橋石橋, 以此擇用, 如此等石, 則今可別定監役官, 車子分送, 量伐輸入。 殿閣外所用之石必多, 此則以彰義門外石, 仍爲浮取輸用。"


  • 【태백산사고본】 40책 40권 59장 B면【국편영인본】 32책 598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건설-건축(建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