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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111권, 광해 9년 1월 29일 을미 1번째기사 1617년 명 만력(萬曆) 45년

선수 도감이 새 궁궐 짓기의 곤란함을 아뢰다

선수 도감(繕修都監)이 아뢰기를,

"새 궁궐을 짓는 것은 더할 수 없이 큰 거조로, 예전의 임금들은 이 한 가지 일에 대해서 모두들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비단 술사(術士)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여기저기 두루 물어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귀일된 뒤에도 오히려 주저하면서, 거북점을 쳐서 길흉을 판단하였으니, 그 신중히 한 뜻을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근거할 수도 없는 한두 마디의 말만 믿고서 조종조에서 논한 적이 없던 곳에다 새로 짓고 있는데, 아마도 이와 같이 경솔히 해서는 안될 듯합니다. 신들이 비록 도감에서 직책을 맡고 있으나, 모두가 풍수설(風水說)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여서, 감독이나 하는 일개 유사일 뿐이니, 결단코 마음대로 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조정에 있는 신하들 중에 어찌 풍수설에 대해 잘 알아서 능히 말할 수 있는 자가 없겠습니까. 바라건대 널리 조정의 의논을 모아 일의 체모를 중하게 해서 조그만치도 미진한 점이 없게 하소서.

비단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을묘년은 조성(造城)하기에 아주 길한 해였는데도, 단지 명정전(明政殿)의 좌향(坐向)이 목성(木星)을 범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부득이 대략 수리만 하였습니다. 그 다음해인 병진년 이후로 4, 5년 동안은 조성하기에 길한 해가 아니라고 하는데, 새로 잡은 터에 또 어찌 불길한 해에 역사를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해를 이은 큰 역사에 물력(物力)이 모두 고갈되었고 이미 민결(民結)도 징수해 낼 수 없는데, 도감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쌀과 포목으로는 몇달의 지공도 지탱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비록 전(殿) 하나를 먼저 짓고자 하더라도 반드시 터를 닦고 담장을 쌓은 뒤에야 전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아 있는 이 자본으로는 반드시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백방으로 생각해 보아도 몹시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집을 짓기 전에 먼저 바깥 담장을 쌓는 것은 술가(術家)에서 금하는 것으로, 여염의 일반 사람들도 오히려 꺼리는데, 더구나 제왕이 거처하는 곳이겠습니까. 이상의 몇 가지 조항들이 갖가지로 곤란한바, 구구한 신들의 뜻을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렇다면 장차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의논해 조처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38권 128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560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건설-건축(建築)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재정(財政)

    丁巳正月二十九日乙未繕修都監啓曰: "營建新闕, 莫大之擧也。 古昔帝王, 於此一事, 莫不爲重。 故不但專信於術士之言, 必須廣詢博訪, 雖僉謀協一之後, 猶且持難, 稽於龜筮, 以占吉凶, 其愼重之意可想矣。 今者只憑一二無稽之言, 新創祖宗朝所未論之地, 恐不可若是其輕易也。 臣等雖待罪都監, 俱未曉解風水之術, 不過監之一有司耳, 決不可擅定。 今日在廷之臣, 豈無眼具心知而能言之者乎? 請廣收庭議, 以重事體, 俾無一分未盡之弊。 非但此也, 乙卯年則乃成造吉年, 而只以明政殿坐向犯大歲, 故不得已用偸修矣。 自丙辰以後四五年, 非造成吉年云, 新卜之基, 又豈可起役於不吉之年乎? 至於年連連年大役, 物力蕩竭, 旣不可出徵民結, 都監用餘些少米布, 難支數月之供。 雖欲先造一殿, 必須開基築墻, 然後可以建殿矣。 以此所餘之資, 必不及十分之一, 百爾思之, 極爲悶慮。 且堂宇未作之前, 先築外墻, 術家之所禁, 閭閻之人, 尙且拘忌, 況於帝王之居乎? 凡此數款, 種種難便, 區區臣等之意, 惶恐敢啓。" 傳曰: "然則將何以爲之? 議處。"《光海君日記》卷第一百十一


    • 【태백산사고본】 38책 38권 128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560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건설-건축(建築)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