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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106권, 광해 8년 8월 20일 무오 4번째기사 1616년 명 만력(萬曆) 44년

선수 도감이 남은 목재와 기와를 저장하는 계획을 아뢰다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비망기에, ‘수리를 하는 데에 사용하고 남은 재목과 기와를 보관해 둘 곳을 속히 마련하되, 인왕산 아래와 경복궁 모처 중에서 선택하여 임시 가옥을 잘 지어 두껍게 지붕을 이어서 저장해 두었다가 뒷날의 용도에 사용하게 할 일을 속히 잘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처음부터 기와를 굽는 일은 신 이충(李沖)이 담당하였습니다. 사전(四殿) 및 각 아문은 이미 모두 덮었고 지금 비록 덮지 못한 곳이 약간 있기는 하나 20여 눌(訥)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까지 계산해서 제하고 나면, 남은 것들의 숫자는 대아련(大牙鍊)이 거의 70여 눌이고 중아련(中牙鍊)도 그 정도이며 상와(常瓦)도 60여 눌이나 됩니다. 모두 합해서 계산하면 2백여 눌이 넘습니다. 방전(方磚)이 20여 눌이며 반전(半磚)이 15, 16눌이며 방초(防草)가 4눌입니다. 혈전(穴磚)이 1백여 장(張)이며 용두(龍頭), 토수(土首), 연가(烟家), 잡상(雜像) 등의 물품이 또한 많이 남았습니다. 이것들은 다 아주 긴요하게 쓰이는 물품이니 모두 함께 모아 저장해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와 올해에 성안의 방민(坊民)과 경강(京江)의 마부(馬夫)들이 운송을 하느라 지쳐 곳곳에서 원망을 하고 있으니 지금 또 이들에게 책임을 맡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위의 각종 기와 및 잡상 등의 물품들은, 마태(馬駄)로 맞추어 계산해 보면 9천 5백여 바리가 되고 수레로 맞추어 계산해 보면 1천 9백여 부(部)가 되는데 그 운송비도 쌀로 계산하면 4백여 석이고 목면으로 계산하면 25동쯤 됩니다. 도감에 쓰고 남은 쌀과 포목이 넉넉하게 있으니 쌀과 목면으로 이렇게 계산하여 운송비용을 지급하고 실어다 수성동(壽城洞) 공가(空家)로 들여다가 수직(守直)하게 하면 허술하게 될 걱정도 없을 듯하고 내외의 도성 백성들도 작으나마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일은 도감이 파국(罷局)한 뒤에는 때맞춰 수송해 들이지 못할 것이니 이달 안으로 서둘러 거행하고, 수직 내관으로 하여금 적당한 숫자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엄하게 지키게 하라. 금군(禁軍) 두세 명을 아울러 차정해 보내서 십분 착실하게 지키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37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32책 508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건설-토목(土木) / 물가-운임(運賃) / 군사-중앙군(中央軍)

○繕修都監啓曰: "備忘記: ‘繕修用餘材瓦積置處, 急急料理, 仁王山景福宮某處中, 善造假家, 厚蓋藏置, 以爲後日之用事, 速爲詳議處之’事, 傳敎矣。 自初燔瓦, 臣冲次知, 四殿及各衙門, 已盡蓋覆, 今雖有若干未覆之處, 不過二十許訥。 此亦計除, 用餘之數, 大牙鍊幾至七十餘訥, 中牙鍊亦如之, 常瓦亦至六十餘訥, 合而計之, 不下二百餘訥。 方磚二十餘訥、半磚十五六訥、防草四訥、穴磚百餘張、龍頭・土首・煙家・雜像等物, 亦有餘數。 此皆切用之物, 不可不一齊收藏。 而去今年間, 城內民、京江馬夫, 困於輸運, 在在怨號, 今不可又責於此輩。 上項各樣瓦及雜像等物, 以馬馱支計, 九千五百餘馱; 以車子支計, 一千九百餘部, 所償之價, 以米計之, 四百餘石; 以木計之, 二十五同許。 而都監用餘米布, 似爲優數, 或米或木中, 以此計給, 載入 壽城洞空家, 使之守直, 則似無虛疏之患, 而內外都民, 亦蒙一分之惠。 惶恐敢啓。" 傳曰: "依啓。 此事若都監罷局後, 則未及輸入, 今月內急急擧行, 使守直內官, 量率軍士嚴守。 禁軍二三名竝定送, 使之十分着實以守。"


  • 【태백산사고본】 37책 37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32책 508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건설-토목(土木) / 물가-운임(運賃) / 군사-중앙군(中央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