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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102권, 광해 8년 4월 12일 신해 3번째기사 1616년 명 만력(萬曆) 44년

남성신·서국정·김세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남성신(南省身)을 봉교로, 서국정(徐國楨)을 검열로, 김세렴(金世濂)을 예조 좌랑으로, 〈이이첨(李爾瞻)을 내섬시 제조로, 허균(許筠)을 사직 제조(社稷提調)로〉 삼고, 증산 현령 이여검(李汝儉)은 문과 갑과(甲科)에 급제하였으므로 통정의 자급을 더해주고, 황덕부(黃德符)를 겸설서로 삼았다. 【이여검은 문자를 모르는데 〈이진(李進)에게서〉 차술(借述)하여 높은 등급을 절취한 것이었다. 당하관으로서의 자급이 다 차서 당상관의 자급으로 오른 것인데 【시론에 아부하여 삭질(削秩)의 논핵을 면했으므로 공의가 매우 놀라워했다.】 】


  • 【태백산사고본】 35책 35권 110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46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以南省身爲奉敎, 徐國楨爲檢閱, 金世濂爲禮曹佐郞, (李爾瞻爲內贍提調, 許筠爲社稷提調,) 甑山縣令李汝儉以文甲科加通政, 黃德符爲兼說書。 【汝儉不識文字, 借述於(李進,) 竊取高第, 以資窮陞秩, 附時論, 得免論削, 公議大駭。】


  • 【태백산사고본】 35책 35권 110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46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