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헌부에서 임금의 진강·인재 등용·백성 진휼 등에 대해 아뢰다
사헌부가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우리 성조(聖朝)에서는 조강(朝講)·주강(晝講)·석강(夕講)이 있고 또 야대(夜對)·윤대(輪對)가 있었는데,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진강의 예를 오랫동안 거행하지 않으셔서 진학할 기약이 없으니 뭇 신하의 심정이 답답하게 막혀 있습니다. 성상께서 정신쏟는 것은 오로지 국옥(鞫獄)과 형법일 뿐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날마다 대유(大儒)를 인접하시어 치도(治道)를 강구하소서.
빠뜨린 인재를 거두어 등용해야 합니다. 조종조(祖宗朝)에서는 대대로 초야의 어진 인사를 찾아 발탁하는 거조가 있었습니다. 선왕(先王)께서 정사에 임하셨을 적에도 경에 밝은 자[經明]·행실을 닦은 자[行修]·차서에 구애없이 발탁하여 등용할 자[不次擢用]·재주가 수령을 감당할 만한 자[才堪守令] 등의 조목을 설치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널리 인재를 맞아들이는 길을 열어 은거하고 있는 선비들을 두루 초치하소서.
굶주린 백성들을 진휼해야 합니다. 살펴보건대, 혹독한 가뭄이 든 나머지 민생이 크게 곤궁해져 호남·영남 지역과 바닷가 고을에는 이리저리 떠돌다 쓰러져 굶어 죽은 시체가 널려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두려운 생각을 갖고 특별히 유사에게 명하여 부세와 요역을 덜어주고 곡식을 옮겨주고 창고를 여는 등의 일을 행하되, 그 실질을 다하기를 힘쓰고 허식을 따르지 마소서.
쓸데없는 비용을 줄여야 합니다. 현재 아래에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백성이 있고 위로는 한 해를 마칠 만한 저축이 없는데도, 급하지 않은 일과 법도에 없는 설비(設備)가 끝이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빨리 유사에게 명하시어 이해(利害)를 잘 헤아려서 재용을 허비하는 일들은 일체 줄이도록 하소서.
국옥을 속히 완결지어야 합니다. 나라의 운이 불행하여 역변이 거듭 일어나고 있습니다. 큰 옥사가 끝나가는 즈음에 잇달아 고발을 하여 서로 돌아가며 끌어들이니 옥에 갇혀 있는 자가 아직도 많아 기상이 처참합니다. 원통한 울부짖음이 하늘에 미치니 어찌 치세의 누가 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는 특별히 용단을 내리셔서 죄의 유무에 따라 시원스레 상법을 시행하시고 허위를 꾸며대는 역적들은 정률(正律)로서 다스리소서.
현재 권세가(權勢家)들이 이익을 제멋대로 하여 원근에서 뇌물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어질지 못한 수령과 빚을 진 변방의 원이 군민(軍民)들을 각박하게 침탈하고 관아의 재물을 고갈시키는 상황에 대해서는 대간의 탄핵과 상신(相臣)의 소장에서 대략 그 한두 가지를 진달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한결같이 너그러이 용서해주고 법으로 다스리지 않으시니, 이는 도적을 상주고 승냥이와 이리를 풀어놓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는 귀하고 세도있는 이라 하여 법을 굽히거나 개인적인 정 때문에 공의를 해치지 마시고 나라의 법을 진작시켜 엄숙히 해서 죄가 드러나는 대로 통렬히 다스리소서.
대신(臺臣)은 백관을 규찰하고 감사(監司)는 한 도(道)를 살피는 것입니다. 대신이 논핵한 것을 감사가 도리어 조사하니, 이는 대신이 감사만도 못하게 되어 감사에게 제재를 받아서 백관을 규찰하여 바로잡는 일에는 오히려 손도 대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직은 가벼워지고 외직이 중해지는 폐단을 더욱 고려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대각의 풍모가 추락함에 따라 법도가 날로 무너지고 인심은 날로 더욱 방종하게 되니 장차 나라가 나라답지 못한 데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를 재량하시고 감사에게 조사시키지 마소서.
기축년 정여립의 역변 후에 이발(李潑)·이길(李洁)이 교유를 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끝내 형륙을 당하였고, 백유양(白惟讓)·정개청(鄭介淸)은 모두 편지와 저서의 일로 연좌되었는데, 별로 역모를 한 정적이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선조(先朝)에 있었던 일이라 하여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억울함을 깨끗이 설욕해 주는 은전을 시원스레 베푸소서.
가만히 요즘 상황을 살펴보건대, 대의(大義)가 막히고 천리가 끊어져, 위로 공경으로부터 아래로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각기 개인적인 문호를 세우고 상대를 모함하여 쓰러뜨리기를 일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임금을 무용지물로 보아 더러는 무고(巫蠱)를 허위라고 우기고 심지어 폐비(廢妃)의 설을 꾸며내서 중외에 전파하여 뭇사람들의 마음을 미혹시켜서, 훗날 사류(士類)를 유린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보복할 소지를 마련함으로써 성상으로 하여금 끝내 후세의 악명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쾌히 강경하게 결단하시고 엄히 대의를 밝혀서 《춘추》의 정명(正名)으로 주벌하는 법을 속히 행하여 불령(不逞)한 무리들을 통렬히 징계하소서.
어진 재상을 돌보아 만류하셔야 합니다. 도성에 관사를 마련해주고 만종(萬鍾)의 녹으로 봉양하는 것이 현인을 대우하는 정성이 아니요, 푸줏간에서 고기를 계속 대주고 창고지기가 곡식을 계속 대주게 하는 것이 현인을 대우하는 정성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비단이나 옥같은 예물로 현인에 대한 대우가 구비되었다 여기지 마시고, 모름지기 그의 말을 채택하고 도를 행하는 것으로 현인을 대우하는 실질을 삼으소서."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신 등이 헌부의 전후 차자를 보건대, 모두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에서 나온 것으로 다 시사의 병폐에 적중한 것입니다. 신 등은 의논할 만한 일이 없으니 오직 성상께서 유념하여 행하시는 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계사의 뜻은 잘 알았다. 유념토록 하겠다."
하였다. 【당시 간당(姦黨) 중에 몇몇 사람들이 시사가 날로 점차 위태로워지는 것을 보고 조금씩 스스로 딴 마음을 품어 훗날을 위한 발판을 삼으려고 이런 차자를 올린 것이었다. 】
- 【태백산사고본】 35책 35권 104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465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왕실-경연(經筵) / 구휼(救恤)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사법-행형(行刑) / 사법-재판(裁判) / 역사-전사(前史)
○丙辰四月初九日戊申司憲府箚子:惟我聖朝, 有朝講、晝講、夕講, 又有夜對、輪對, 殿下臨御以來, 進講之禮, 久不修擧, 進學無期群情壅閼。 聖上之勞神疲精者, 鞫獄而已, 刑法而已。 伏願殿下, 日接鴻儒, 講求治道, 收用遺材。 祖宗朝代有搜拔逸民之擧, 先王臨政, 亦設經明行修、不次擢用、才堪守令等條目。 伏願殿下廣開延訪之路, 旁招巖穴之士, 賑恤飢民。 竊觀酷旱之餘, 民生大困, 湖、嶺之間, 濱海之邑, 流離顚仆, 餓莩相望。 伏願殿下哀矜惕慮, 特命有司, 薄賦弛役, 移粟發倉等事, 務盡其實, 勿循虛文, 減省浮費。 方今下有阻飢之民, 上無終歲之蓄, 而不急之務、無藝之備, 罔有紀極。 伏願殿下亟命有司, 商確利病, 凡耗費財用之事, 一切減省, 速完鞫獄。 國運不幸, 逆變荐起, 大獄垂畢, 告訐相繼, 傳轉告引, 囚禁尙多, 氣像愁慘, 冤號徹天, 豈非聖治之累乎? 伏願殿下特施乾斷, 有罪無罪, 快施彝章, 構誣之賊, 置以正律。 方今勢家擅利, 遠近賄賂, 守宰之無良, 邊倅之償債, 其侵剝軍民, 罄竭官財。 臺諫之彈論、相臣之疏箚, 槪陳其一二, 而殿下一向寬貸, 不以法治之, 此不幾於賞盜竊, 而縱豺狼乎? 伏願殿下勿以貴勢而屈法, 勿以私情而害公, 振肅邦憲, 隨現痛繩。 臺臣糾察百職, 監司按驗一道。 臺臣之所論, 監司反爲査覈, 是臺臣反不如監司, 箝制於監司, 而反不着手於糾正也。 內輕外重之患, 尤不可不慮也。 風憲墜落, 法綱日壞, 人心日益縱恣, 將至於國非其國。 伏願殿下裁自聖衷, 勿使査覈於監司。 己丑鄭賊之後, 李潑、李洁以不愼交遊之故, 竟就刑戮, 白惟讓、鄭介淸皆坐於筆札著書之事, 而別無謀逆之情迹。 伏願殿下勿以事在先朝爲難, 快施昭雪之典。 竊觀近日大義晦塞, 天理滅絶, 上自公卿, 下至韋布, 各立私門, 爭事傾陷。 視君父不啻弁髦, 或以巫蠱, 務爲虛僞, 乃至於構出廢妃之說, 傳播中外, 熒惑群聽, 以爲他日魚肉士類, 報復私怨之地, 使聖上終不免後世之惡名。 伏願殿下快斷剛克嚴明大義, 亟行《春秋》誅以正名之法, 痛懲不逞之徒。 眷留賢相, 館於國中, 養以萬鍾, 非所以待賢之誠也, 庖人繼肉, 廩人繼粟, 非所以待賢之誠也。 伏願殿下勿以錙銖筐篚, 爲待賢之具, 須以用言行道, 爲待賢之實。政院啓曰: "臣等伏見憲府前後箚子, 無非出於愛君憂國之血誠, 而皆切中時病者也。 臣等更無可議之事, 惟在聖上體念行之耳。" 答曰: "啓辭, 具悉。 當留念焉。" 【時, 姦黨中有若干人, 見時事日漸憂危, 欲稍自貳, 以爲他日之地, 有此箚。】
- 【태백산사고본】 35책 35권 104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465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왕실-경연(經筵) / 구휼(救恤)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사법-행형(行刑) / 사법-재판(裁判)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