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중초본] 102권, 광해 8년 4월 1일 경자 6번째기사
1616년 명 만력(萬曆) 44년
사간원이 철거지에서 행패를 부린 흥안군·경평군의 추고를 청하다
간원이 아뢰었다.
"인왕산(仁王山) 아래에 새로 정한 궁궐터에는 별로 당장 공사를 시작할 기약이 없으니, 사민(士民)들이 국가의 처치를 기다린 뒤에 집을 옮겨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흥안군(興安君) 이제(李瑅)와 경평군(慶平君) 이륵(李玏)은 그들의 저택이 금지 표시 안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먼저 스스로 놀라 소란을 떨며 그 집을 철거하고는 종들을 사방으로 풀어 사대부의 집을 빼앗은 것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혹은 늙은 어미를 구타하기도 하고 과부를 능욕하기도 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집에 간직해 두었던 여러 가지 물건을 잃어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서 온 동네가 소란스러웠고 그 피해가 이웃 마을에까지 미쳤습니다. 듣고 본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고 온 나라에 말이 자자합니다. 집안 일은 가장의 책임이니 징계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아울러 추고하도록 명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35책 35권 98장 B면【국편영인본】 32책 465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왕실-궁관(宮官) / 왕실-종친(宗親)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