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감사가 대마도에서 통지한 내용을 올리다
경상 감사가 동래 부사의 첩보를 인하여 치계하였다.
"대마 도주(對馬島主) 평의지(平義智)가 1월 3일에 죽었다 하여 왜인 귤지만(橘知滿)에게 묻기를 ‘어찌하여 이제서야 고부(告訃)하는가?’ 하니, 답하기를 ‘우리 도주가 죽기는 하였지만 일본에 큰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발설하지 못하고 국사가 안정되기를 기다려 이제야 통지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변란에 대하여 물으니, 답하기를 ‘편동시정(片桐市正)이라고 하는 왜인은 평수길(平秀吉)이 생시부터 총애하여 부린 장수인데, 풍신수길이 죽은 뒤에는 수뢰(秀賴)의 총애하는 장수가 되어 대판성(大板城)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 덕천가강(德川家康)이 시정을 매수해서 자기의 염탐꾼으로 삼고서 수뢰를 제거하도록 하였다. 어느날 시정이 잔치를 벌이고 술에다 독약을 넣었는데 수뢰가 알아채고는 시정을 폐하여 먼 섬에다 유배를 보냈다. 가강은 일이 발각된 것을 알고서 5월에 그의 아들 수충(秀忠)을 시켜 대군을 거느리고 곧바로 수뢰의 성으로 쳐들어가게 하여 공격하여 죽였다. 수뢰와 같이 죽은 왜장이 수없이 많았으며, 지금은 수뢰편은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다. 그 당시 도주의 아들 언삼정광(彦三貞光)은 강좌성(江左城) 가강의 진중에 있었기 때문에 길이 막혀 통지하기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아직 승습(承襲)의 명도 없었다. 지금은 수뢰가 죽고 수충이 정사를 전담하고 있으며, 정광이 승습하여 이번 7월에 비로소 본도에 돌아와 정사를 하게 되었으므로 나를 보내 귀국에 고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65장 B면【국편영인본】 32책 417면
- 【분류】외교-왜(倭)
○慶尙監司因東萊府使所報馳啓曰: "對馬島主平義智, 死於正月初三日, 問于倭人 橘知滿曰: ‘何以今始告訃乎?’ 答曰: ‘俺主雖死, 緣日本有大戰爭, 莫敢漏言, 以待事定後始通’云。 問其變則答曰: ‘片桐市正稱名倭, 自平秀吉生時寵使之, 將也 秀吉死後, 爲 秀賴 爲寵將, 居大坂城中。 家康行簡 間於市正, 引爲耳目, 令圖秀賴。 一日市正設宴, 酒中置毒, 秀賴覺之, 廢市正, 流於遠島。 家康知事覺, 五月間, 令其子秀忠將大軍, 直擣秀賴城中, 擊而殺之。 倭將之與秀賴同死將倭 者, 不知其數, 今則秀賴一邊, 無一人存者。 其時島主子彦三貞光, 住江左城家康陣中, 非但路塞難通, 未有承襲之命。 今則秀賴旣亡, 秀忠專政, 貞光承襲, 今七月, 始還本島爲政, 送俺來告貴國’ 云。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65장 B면【국편영인본】 32책 417면
- 【분류】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