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기자헌이 차자를 올려 이익의 국문에 위관으로서의 명을 받지 못함을 아뢰다
영의정 기자헌이 차자를 올리기를,
"신이 더위 증세를 앓고 있어서 접때 차자를 올려 직임을 풀어달라고 했을 때, 상께서 ‘사직하지 말고 마음 편히 조리하라.’ 하시고, 내국(內局)의 귀중한 약제를 10복(服)이나 하사하셔서, 신은 너무도 감격하여 그저 혼자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저께는 또 다시 하유하시기를 ‘대례(大禮)는 박두하고 나랏일이 매우 어려운데, 대신들이 서로 이어 사퇴하니, 마음이 무척 허전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빨리 출사해서 나의 바람을 이루어 달라.’ 하셨기에 신은 또 너무나 감격하여 마냥 혼자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신이 병을 무릅쓰고 직임에 임하고자 하나 몸이 무거워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고, 두 눈이 흐릿하여 운무가 가린 듯하며, 갑자기 식사가 줄어 베개에 누워 끙끙거리는 형편이니, 성상께서 부디 신의 직임을 갈아주소서. 그러면 나랏일이 매우 다행스럽겠습니다.
듣건대, 전 정언 이익을 삼성 추국하라 하시고 신을 위관으로 나아가라 하셨다 합니다. 신은 이익과 본래 모르는 사이입니다. 다만 연전에 한림(翰林)을 취재(取才)할 때 보았는데, 글자의 음을 잘못 읽기에 신이 좌중에서 말하고 웃은 일이 있습니다. 근래 조보(朝報)에 실린 것으로 말한다면, 필시 한갓 격렬한 말이 소득이 있는 줄만 알고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외방의 광망(狂妄)한 자의 소위인 것이며, 또한 앞에 국문하는 일이 있으리란 것도 모르고 경솔히 말한 자입니다. 그러니 내버려 두어도 될 것이요, 다스리지 않음으로써 다스려도 될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취실(取實)할 만한 것이겠습니까.
그 자가 비록 형편없기는 하나 간관으로 있으니, 지금 만약 삼성 추국한다면, 한때의 사람들이 듣기에 부당할 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반드시 부당하다 할 것입니다. 신이 병으로 혼암하여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일찍이 본 바로는 《강목(綱目)》에 ‘언관의 말이 비록 망령되더라도 임금이 그를 죄준다면 이미 부당한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왕(先王) 때, 대간이 유홍(兪泓)을 논핵했을 때 ‘화제가 쟁반에 쌓인다.[火齊堆盤]019) ’ 한 말이 있었는데, 선왕께서 비답하기를 ‘말이란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우리 나라에 어디 화제란 옥돌이 있는가?’ 하자, 그 비답을 보는 이들이 모두 그렇다고 했습니다. ‘화제가 쟁반에 쌓인다.’는 것은 한유(韓愈)의 시구절인데, 그때 대간이 잘못 인용했던 것입니다. ‘태아의 칼자루를 거꾸로 잡았다.’는 것은 옛날의 말인데, 착각하여 인용한 것이 〈매우 분명합니다.〉 이것은 필시 젊은 신진이 과장용(科場用)으로 익힌 문자를 마음 놓고 붓가는 대로 써버린 것입니다. 그 한 말을 보면 지극히 놀라우나 ‘화제가 쟁반에 쌓인다.’는 것과 같은 데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니 국문한들 무슨 지적해낼 만한 말이 나오겠습니까. 틀림없이 성명(聖明)의 조정에서 간관을 죄주었다는 말만 괜히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면, 상께서 혹 신들이 진달하여서 천둥 같은 노여움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지 못하였다는 것으로 신들의 죄를 삼는 일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성명께서 다시 한 번 자세히 생각하시고 다른 대신에게 물어서 조처하소서.
신이 지금 병으로 신음 중이라 조보(朝報)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어 간혹 남에게 읽혀서 알게 되는 형편입니다. 이에 위관의 명이 내렸는데도 달려나가지 못하고 무엄하게도 너절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으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신은 너무도 황공하여 마구 떨립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는 잘 보았다. 다만 이익의 이른바 ‘태아의 칼자루를 거꾸로 잡았다.’는 것은 반역을 뜻하는 말로 종사(宗社)의 더할 수 없는 변괴인데 어떻게 언관으로 대접하여 끝까지 국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말을 꺼내놓고는 도로 감추니 기망한 죄는 응당 일정한 형벌이 있는 것이다. 과연 유홍을 논핵한 ‘화제’ 같은 것에 비할 바이겠는가. 경은 너무 관대하다. 사양하지 말고 속히 나와서 상세하게 핵문(覈問)하여, 죄인을 바로 찾아내서 전형(典刑)를 바룰 수 있도록 하여 특별히 기대하는 나의 뜻을 저버림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385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司法)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019]화제가 쟁반에 쌓인다.[火齊堆盤] : 화제는 운모(雲母) 비슷한 옥돌인데, 자줏빛 금색으로 번쩍거리고 쪼개면 매미 날개처럼 얇지만 포개어 쌓으면 마치 비단을 쌓아놓은 것 같다고 한다. 한유(韓愈)의 시에 "뻔뻔스럽게도 대낮에 뇌물을 받아들이는데, 화제가 수북이 금쟁반에 쌓인다.[公然白日受賄賂 火齊磊落堆金盤]"고 한 것이 있다. 《속당시화(續唐詩話)》 한유조(韓愈條).
○乙卯五月二十四日己巳領議政奇自獻上箚曰:伏以臣方患暑證, 頃日上箚乞解職任, 自上以勿辭安心調理爲敎, 賜以內局珍劑十服。 臣無任感激之至, 只自涕泣。 又於再昨下諭曰: "大禮將迫, 國事孔艱, 而大臣相繼辭退, 予甚缺然, 罔知攸濟。 速爲出仕, 以副予望"爲敎。 臣無任感激之至, 只自涕泣。 臣欲力疾供職, 而一身沈重, 不能任意運動, 兩目昏昏, 如隔雲霧, 食飮頓減, 伏枕呻吟。 伏乞聖慈許遞臣職, 國事幸甚。 伏聞前正言李瀷三省推鞫, 而命臣以委官進去。 臣與李瀷, 素昧平生, 但於年前翰林取才時見之, 誤讀字音, 臣言於坐中而笑之。 近以朝報言之, 則必是外方狂妄之人徒知激言之爲得, 而不復細思其事實者也。 又不復知有前頭鞫問之事, 而率爾爲言者也, 置之可矣, 治之以不治可矣, 其言何足取實? 渠雖無狀, 官以諫爲名, 今若省鞫, 則非但於一時聽聞不當, 後世亦必以爲不當。 臣於病昏中, 雖不能記, 曾見《綱目》, 則言官之言雖妄, 而人主罪之, 旣以爲不當。 且先王朝, 臺諫論兪泓時, 有火齊堆盤之語, 先王批曰: "言貴着實。 我國其有火齊乎?" 見其批者, 皆以爲然。 火齊堆盤, 乃韓愈之詩, 而其時臺諫, 錯爲引用。 太阿倒持, 乃是古語, 而錯而爲引(用明甚), 此必年少新進之人, 以科場間所習文字, 放心信筆而書之者也。 見其所言, 則雖極可駭, 不過如火齊堆盤之類也。 雖鞫問, 豈有可指之言哉? 必將徒致聖明朝, 罪諫官之言。 且數日之後, 則自上或不無以臣等不爲陳達, 使雷霆少霽, 爲臣等之罪。 伏願聖明更加商量, 問于他大臣而處之。 臣方病吟, 朝報亦不能歷歷解見, 或使人讀之而知之。 委官命下, 而不能趨詣, 昧死瀆陳, 死罪死罪。 臣不勝惶恐戰慄之至。答曰: "省箚具悉。 但瀷所謂太阿倒持者, 簒逆之言也。 是乃宗社莫大之變, 豈可待以言官而不爲窮問乎? 況發端還諱, 欺罔之罪, 自有常刑。 其果比於論兪泓火齊之事乎? 卿太寬假矣。 勿辭速出, 詳細覈問, 使罪人斯得, 明正典刑, 毋負予眷倚至 之意。"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385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司法)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