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 이익이 직숙의 명을 받들고 언론의 임무를 수행치 못한 죄를 청하다
정언 이익이 아뢰었다.
"신은 영남의 외톨이로 외람되이 분수에 넘치는 직분을 받고 보니, 하늘과 땅처럼 높고 두터운 성은이 망극하여, 한 번 미충(微衷)을 바쳐 만에 하나라도 보필하고자 하였으나, 교분은 얕은데 심각한 말을 하는 것을 옛사람이 경계하였으므로 머뭇거리고 말을 못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직숙에 대한 명을 받고 감히 사퇴할 뜻을 말씀드리면서, 어찌 한 마디 아니하여 성상께서 맡겨주신 책임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대관(臺官)은 간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오로지 언론이 그 책임이며, 다른 일로 대관에게 맡겼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사람들이 자신을 아껴서, 한결같이 입을 다물고 앞다투어 장마(仗馬)017) 를 경계합니다. 이에 단지 이름만 있고 실상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영합하여 비위나 맞추는 거리가 되고 있으니, 스스로 그 도리를 잃음이 심합니다. 성상께서 우대할 수 없어서 직숙이나 하는 곳으로 내모는 것도 결국은 신들이 스스로 취한 것입니다.
선수(繕修)의 명이 내린 날을 당하여 양사가 합계하는 거조가 있었으니, 무슨 일인가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성상의 질책이 한번 떨어지자 그만 멈추어 버리고 말아,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물욕에 끌려다니는 뜻을 기르게 하여 간언(諫言)을 물리치는 마음만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양사에 관원이 많으나 어찌 사람이 있다 하겠습니까. 지금 말라 타들어가는 땅이 천리요, 굶어죽은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여,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게 될 참화가 불행히도 가까워 오는데, 흠경각(欽敬閣)의 역사가 끝나기도 전에 양궁(兩宮)의 거둥이 잇따라 있었습니다. 이에 하늘이 위에서 노하는데도 걱정하지 않고 백성이 밑에서 고통받는데 돌볼 줄 모르며, 와르르 무너질 환난이 조석에 닥쳤는데도 느긋하고 데면데면하여 책임만 때우고 있으니, 옛날의 이른바 임금에게 어려운 일로 채근한다는 것이 과연 이런 것입니까.
성상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지금 8년이 되었으나, 한번도 경연을 열어 도를 강론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궁첩과 환관들이 얼마나 성상의 마음을 흔들어댈 것이며, 신하들과의 거리가 어찌 천리만 되겠습니까. 천지의 기운이 서로 만나 화합하여 비가 내리고, 위와 아래가 서로 접하여 성의가 미덥게 되는 법이니, 해마다 닥치는 혹독한 가뭄이 여기에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구중궁궐에 깊이 있으면서 눈 앞에 닥친 재앙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찌 이와 같기만 할 뿐이겠습니까. 궁중이 엄하지 못하여 안팎이 결탁해서 태아(太阿)의 칼자루가 이미 거꾸로 잡히었고018) , 사사로이 바치는 것이 줄을 잇는데 다투어 서로 본받아 민생(民生)의 곤궁함이 날로 더해지고 있습니다. 그 밖의 구제하기 어려운 병폐들이 하나같이 그러해서 이미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수수방관하고 구제하여 바로잡을 생각이 없는 것은, 실로 한 번 엄위(嚴威)에 저촉하고는 목숨이 아까워서 직분을 버리지 않을 수 없음에 연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상을 저버린 죄가 어찌 적다 하겠습니까. 대간이 스스로를 상실함이 이와 같으니, 성상께서 대간으로 보지 않으시고 돌아가며 직숙이나 시키는 것도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천명이 이미 결정되어 인간의 작위를 용납하지 않아서, 화란의 밑둥이 이미 제거되었으니 특별히 의심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필 금방(禁防) 같은 말단에 매달려 세상의 이목을 놀라게 한단 말입니까. 임금이 세상을 임어(臨御)하는 도리는, 마음을 한결같이 바루어 뭇 의혹을 진정해서 나라 기강의 바탕을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실로 그 도리를 잃는다면, 아무리 대간들을 모조리 수직하는 병졸로 삼은들 거기에 무슨 경중의 차이가 있겠습니까. 신이 비록 변변치 못하나 자연 언론의 책임이 있으니, 멋대로 스스로를 가볍게 할 경우 조정을 욕되게 하는 데는 어쩌겠으며 물의를 빚는 데는 어쩌겠습니까. 결단코 명에 따라 달려나가서 성명에 누를 끼칠 수 없습니다. 빨리 신의 죄를 다스리어 교만하고 공손치 않은 버릇을 바로잡으소서."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46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382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군사-중앙군(中央軍) / 사법-탄핵(彈劾) / 왕실(王室)
- [註 017]장마(仗馬) : 임금의 의장(儀仗)으로 세워두는 말. 당나라 때 이임보(李林甫)가 19년 동안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 권력을 휘둘러 간관들이 감히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보궐(補闕) 두진(杜璡)이 자기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의장용으로 세워 둔 말을 보지 못했는가? 하루 종일 소리가 없으면 실컷 잘 얻어먹지만, 한 번만 소리내어 울면 내쫓아 버린다. 그런 뒤에 안 울려고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래서 간쟁하는 길이 막혀버리는 것이다." 했다. 《신당서(新唐書)》 간신전(奸臣傳) 이임보(李林甫). 봉록만 타먹으면서 화가 두려워 간언을 못하는 벼슬아치를 빗대어 하는 말임.
- [註 018]
태아(太阿)의 칼자루가 이미 거꾸로 잡히었고 : 태아는 옛날 중국의 보검(寶劍) 이름인데, 권력의 칼자루에 비유된다. 《한서(漢書)》 매복전(梅福傳)에 "태아의 칼을 거꾸로 잡고 그 칼자루를 초(楚)나라에 주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임금이 신하에게 권력을 맡기고는 도리어 신하에게 해를 입는 것을 비유하여 하는 말임. - [註 018]
○乙卯五月十八日癸亥正言李瀷啓曰: "臣嶺外孤蹤, 猥忝非分, 天高地厚, 聖恩罔極, 思欲一效微衷, 以補萬一, 而交淺言深, 古人所戒, 囁嚅未吐, 以至今日。 玆當直宿之命, 敢效辭退之懇, 則豈無一言以負聖上付畀之責乎? 竊念臺官以諫爲名, 則言責專也, 未聞以他事任之也。 世遠如流, 人愛其身, 滔滔囚舌, 爭戒仗馬。 不但有其名而無其實, 反爲迎合苟容之資, 則自失其道也甚矣。 聖上之不能優待, 而驅之於直宿之所者, 乃臣等之所自取也。 當繕修命下之日, 有兩司合啓之擧, 則庶幾其有爲。 而雷霆一下, 旋卽停止, 使吾君長其役物之志, 導其拒諫之心, 則兩司多官, 其曰有人乎? 當今赤地千里, 餓莩盈野, 靡有孑遺之慘, 不幸近之, 而欽敬之役未畢, 兩宮之擧繼起。 天怒於上, 而莫之恤; 民疾於下, 而莫之顧, 土崩之患, 迫在朝夕, 而悠悠泛泛, 塞責而止, 古之所謂責難於君者, 果若是乎? 自聖上臨御以來, 于今八載, 未聞一開經幄, 講論治道, 則宮妾、宦官、十寒如何, 而堂下之隔, 豈止於千里哉? 天地交泰而雨澤降, 上下相接而誠意孚, 則年年旱熯之酷, 未必不由於此。 而深居九重, 不見面目之禍, 豈特如是而已乎? 宮闈不嚴, 內外締結, 而太阿之柄已倒; 私獻絡繹, 爭相慕效, 而民生之困日極。 其他難救之病, 種種皆然, 已至於無可奈何之地。 而袖手傍觀, 無意救正者, 實由於一觸嚴威, 身首是惜, 而其不得不去, 辜負聖明之罪, 豈曰小哉? 臺諫之自失如此, 則聖上之不以臺諫視之, 使之輪廻直宿者, 亦無怪也。 但天命已定, 不容人爲, 禍本已除, 別無可疑。 何必區區於禁防之末, 而駭其瞻聽哉? 人君御世之道, 貴乎一正其心, 以鎭群疑, 爲國家紀綱之本。 苟失其道, 則雖使臺諫, 盡爲守直之卒, 亦何有所輕重於其間哉? 臣雖無似, 自有言責, 縱欲自輕, 奈辱朝廷何, 來物議何? 決不可聞命奔走, 以累聖明。 請亟治臣罪, 以正驕蹇不恭之習。"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46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382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군사-중앙군(中央軍) / 사법-탄핵(彈劾) /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