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가 전세의 창고 관리의 폐단을 들어 빼 돌리지 못하도록 방책을 건의하다
〈호조가 아뢰기를,
"근래에 전세를 창고에 넣을 때 각창(各倉)의 사주인들이 인정미(人情米)022) 와 작지(作紙)023) 를 독책하는 폐단이 의례적으로 지나치고 있는데, 이는 대개 창고의 하급 관리들이 구종(丘從)과 청지기를 너무 많이 거느리고 그들에게 멋대로 몰래 빼내게 하였고 게다가 또 사주인에게 횃불과 주식(酒食)의 비용을 만들어 내도록 한 것에 연유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사주인들이 조졸(漕卒)들에게 뜯어내는 것이 전일의 배가 되고 있으니 그 폐습을 엄하게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법성창(法聖倉)의 전세를 군자감에 납입할 때 축이 난 수량이 무려 4백여 석에 이르렀고, 아산창(牙山倉)에서 다시 운송한 전세를 광흥창에 납입할 때 축이 난 수량이 마찬가지로 많았으니 매우 한심합니다. 군자감과 광흥창의 장무관(掌務官)을 추고하고, 앞으로는 전세를 창고에 납입할 때에 축나는 일이 있을 경우 각창의 사주인에게 나누어 추징하고, 조졸이 전세를 창고의 뜰에 실어들일 때에 부족한 수량이 있을 경우 창고의 관원이 즉시 호조로 보고하게 하여 단호하게 추징하여, 사주인과 조졸이 몰래 빼내는 폐단을 막으소서.
대개 각사에 상납하는 물품을, 장부를 대조한 뒤에 곧바로 납부하지 않으면 의례적으로 미납분을 추징하는 일이 있는데, 이는 농간의 폐단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전세에 있어서 육지에 내려 창고에 들인 뒤에 속히 봉입(捧入)하느냐의 여부는 실상 창고의 관리에게 달려 있고 애당초 조졸이 당기거나 늦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평시에 조졸들에게는 본래 미납분을 추징하는 일이 없었는데, 병란 이후로는 조졸도 추징 당하는 걱정거리가 생겼기 때문에 조졸들이 그 괴로움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원전세(元田稅)의 미두(米豆)를 으레 분할, 지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앞으로는 한결같이 평시의 구례(舊例)에 의거하여 조졸들에게 미납분을 추징하는 일을일체 혁파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전세를 육지에 내려서 창고의 뜰에 실어다 놓고 청대(請臺)하여 봉입할 때에 포도 군관(捕盜軍官)을 시켜 몰래 빼내는 자들을 엄금하게 하소서.
위에 말씀드린 일을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여 항식(恒式)으로 삼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320면
- 【분류】재정(財政)
○(戶曹啓曰: "近來田稅納倉之時, 各倉私主人等責納人情、作紙之弊, 例爲濫觴, 蓋由倉官等濫率丘從、廳直, 使之恣意偸竊, 兼又責令辦出炬燭、酒食之費於私主人。 故私主人等侵責漕卒, 倍於前日, 不可不痛革其習。 法聖倉田稅, 納于軍資監時, 無麪之數, 多至四百餘石, 牙山倉再運田稅, 納于廣興倉時, 無麪之數亦多, 極爲寒心。 請軍資掌務官、廣興倉掌務官推考, 今後田稅納倉之時, 如有欠縮之數, 則分徵於各倉私主人, 漕卒輸入田稅于倉庭之時, 如有未準之數, 則令倉官卽報臣曹, 使之劃卽徵納, 以杜私主人及漕卒偸食之弊。 凡各司上納之物, 陳省詔訖之後, 趁未畢納, 則例有納未納徵贖之事者, 所以防奸弊也。 至於田稅, 則下陸入倉之後, 速捧與否, 實在於官吏, 初非漕卒所能進退也。 以此自平時漕卒等, 本無納未納徵贖之事, 亂後漕卒, 亦被徵贖之患, 故漕卒等不勝其苦, 元田稅米豆, 例爲割給。 自今以後, 一依平時舊例, 漕卒等納未納徵贖之事, 一切革罷爲當。 田稅下陸, 輸入倉庭, 請臺捧上之時, 竝令捕盜軍官, 嚴禁偸竊之人。 右件事, 請捧承傳施行, 以爲恒式。" 從之。)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320면
- 【분류】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