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 왕후 책봉 주청사 박홍구·이지완이 길을 떠나다
공성 왕후(恭聖王后) 책봉 주청사(策封奏請使) 박홍구(朴弘耉)·이지완(李志完)이 길을 떠났다. 왕이 이미 공성을 추숭(追崇)하고 태묘(太廟)에 부제(祔祭)하고자 하여 정인홍(鄭仁弘)에게 물으니, 정인홍이 말씀드리기를,
"모름지기 명(明)나라 조정에 보고하여 명나라 조정에서 책명(策命)을 받은 다음에 비로소 태묘에 부제하는 일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왕이 대신들에 의논할 것을 명하자, 대신이 누차 곤란하게 여기니, 왕이 결단하여 시행한 것이었다. 주문(奏文)은 다음과 같다.
"신은 일찍이 민흉(愍凶)066) 을 만나 태어난 지 겨우 두 살에 자모(慈母)가 돌아가시어 끝없는 슬픔 속에 어언간 30여 년이 지났습니다. 신의 모친 김씨(金氏)는 고 영돈녕부사 김희철(金希哲)의 딸로서 선부왕(先父王) 신(臣) 휘(諱)께서 수명(受命)하신 처음에 맞아들여 부실(副室)로 삼고 궁위에서 일을 받들게 했는데 현덕이 대단히 나타났었으나 불행하게 일찍 서거하였습니다. 또한 선부왕 신 휘께서 신의 불초한 것을 알지 못하시고 천조(天朝)에 상주(上奏), 신으로 후사를 삼으시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거듭 황령(皇靈)에 힘입어 선대의 왕업을 계승한 지가 여러 해 되었습니다.
신은 외람되게 황제가 내리신 은총으로 귀하게 나라의 임금이 되었는데도 나를 낳아 길러 준 어머니는 아직까지 명칭(名稱)이 없습니다. 생전에는 제후 임금이 모시는 봉양을 받지 못했고 사후에는 높여 드러내는 존호를 더하지 못했으니, 생육해 준 은혜 갚고자 하나 갚을 길이 없어 복받치는 사모의 심정 한량이 없으며 말이 여기에 다다름에 오장 육부가 찢어지는 듯이 아픕니다. 하지만 신같이 외번 먼 나라에 있는 천한 몸이 감히 구구한 사정(私情)을 갑자기 천자의 위엄 앞에 요구하지 못하고 민망한 마음으로 말못하고 있은 지가 오래입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천조가 저의 소방(小邦)을 한집같이 보고 있으며 소방이 천조를 부모같이 우러르고 있으니, 진실로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부모님께 알리고, 일에는 크고 작은 것 없이 모두 품달하여야 당연합니다. 자기를 낳아 준 이를 추숭하는 일은 천조에서는 본디 상전(常典)으로 되어 있는 것이지만 미약한 신에 있어서는 실로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어머니가 자식으로 하여 귀하게 되는 것은 전기(傳記)에도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어니와 그 어버이를 현달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자식된 자의 지극한 심정인 것입니다. 삼가 보건대, 역대의 제왕과 황조의 열성들에 이르기까지 추숭한 고사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신이 감히 참람되게 인거할 수 없는 일이고, 다만 소방의 선조들이 이미 천조의 준허(准許)를 얻은 자만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의 선조(先祖) 강정왕(康靖王)067) 신 휘(諱)는 성화(成化) 11년068) 에 생부(生父)와 생모(生母)의 추존(追尊)을 주청하자, 헌종 황제께서 즉시 준허의 명을 내려 그 생부 휘(諱)를 추봉(追封)하여 회간왕(懷簡王)으로 삼고, 생모 한씨(韓氏)를 왕비(王妃)로 삼아 아울러 고명(誥命)과 관복(冠服)을 하사하여, 주청사인 배신(陪臣) 김질(金礩) 등이 돌아오는 편에 부쳐 보내는 은혜를 받았고, 또 성화 16년069) 에는 부실(副室) 윤씨(尹氏)를 봉하여 왕비로 삼기를 청하자, 헌종 황제께서 즉시 왕비로 봉할 것을 준허하고 이어 고명과 관복을 하사하여 배신 한명회(韓明澮)가 돌아오는 편에 부쳐 보내시는 은전을 입었습니다. 이는 바로 천조가, 소방에서 부모의 추존과 부실의 승봉(陞封)을 청한 데 대해 허락한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도 계속하여 은전(恩典)을 입어, 그러한 전례가 한 번만이 아니었음을 환히 볼 수가 있습니다.
신이 비록 어리석고 용렬하나 타고난 착한 성품은 똑같이 하늘에서 나온 것인데 어버이를 현양하고자 하는 정성이 어찌 옛날과 지금에 있어 차이가 있기에 끝내 천조에 호소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천지부모이신 성자(聖慈)께서는 미약한 신의 추원(追遠)의 심정을 굽어 살피시어 빨리 해부(該部)에 명하여 선대와 지금의 사례(事例)를 비교해 살피게 해서 특별히 김씨(金氏)를 추봉하여 왕비로 삼도록 허락하시고, 아울러 고명과 관복을 하사하시어 효의 이치를 넓히소서."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76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267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비빈(妃嬪) / 역사-전사(前史)
- [註 066]민흉(愍凶) : 부모를 여읜 불행.
- [註 067]
○恭聖王后 策封奏請使朴弘耉、李志完發行。 王旣追崇恭聖, 欲祔太廟, 問于鄭仁弘, 仁弘言: "須奏天朝, 受天朝 策命, 然後方可議祔廟之事。" 王命議大臣, 大臣屢以爲難, 王斷而行之。 奏文曰: "臣夙遭愍凶, 生纔二歲, 慈母見背, 終天之慟, 奄忽三十餘年。 臣母金氏, 故領敦寧府事金希哲之女, 先父王臣諱, 受命之初, 納爲副室, 承事宮闈, 克著賢德, 不幸早逝。 先父王臣諱, 不知臣不肖, 上奏天朝, 以臣爲嗣, 乃至于今, 荐荷皇靈, 繼承先業, 有年所矣。 臣叨忝恩榮, 貴爲國君, 而育我之母, 尙無名稱。 生未享千乘之養, 死未加隆顯之號, 欲報無路, 孺慕罔極, 興言及此, 五內如割。 而如臣外藩遐賤, 不敢以區區私情, 遽干天威, 悶默者久矣。 然念天朝之視小邦如一家, 小邦之仰天朝如父母, 苟有所欲, 必告父母, 事無大小, 宜無不稟。 追崇所生, 在天朝固是常典, 而在微臣, 實爲榮幸。 況母以子貴, 傳記所稱, 欲顯其親, 人子至情。 竊觀歷代帝王, 以至皇朝列聖, 追崇故事, 非止一二, 而臣不敢僭引, 只以小邦先故之已蒙天朝准許者言之。 臣先祖康靖王臣諱, 於成化十一年奏請, 追尊生父及母, 欽蒙憲宗皇帝卽命准許, 追封其生父諱, 爲懷簡王, 生母韓氏爲王妃, 竝賜誥命、冠服, 順付陪臣金礩等之還。 又於成化十六年, 請封副室尹氏爲妃, 欽蒙憲宗皇帝卽准許王妃之封, 仍賜誥命、冠服, 順付陪臣韓明澮之還。 此卽天朝許小邦追尊所生, 陞封副室之請, 而厥後繼蒙恩典, 舊例非一, 昭可觀也。 臣雖譾劣, 秉彝之性, 同出於天, 顯揚之誠, 何間於古今而終不爲之籲呼乎? 伏惟聖慈天地父母, 俯察微臣追遠之情, 亟命該部, 比照先今事例, 特許追封金氏爲妃, 竝賜誥命、冠服, 以廣孝理。"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76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267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비빈(妃嬪) / 역사-전사(前史)
- [註 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