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서를 죽여야 한다고 아뢰었으나 따르지 않다
전교하기를,
"박응서(朴應犀)를 처리하는 일에 대해 국청으로 하여금 의논해 아뢰게 하라."
하니, 국청이 아뢰기를,
"신들이 이 역적의 일을 성상께 진달하고자 한 것이 오래되었습니다만, 역적에 대한 옥사가 아직 결말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연된 것인데, 성상의 하교를 받들고 보니 감히 침묵할 수가 없습니다.
이 역적은 자신이 큰 죄에 빠져 포도청에 갇혀 있었는데, 매를 많이 맞고도 단지 은을 훔치려고 살인한 죄만을 자복하고는 전혀 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병조와 형조의 당상이 회동하여 더욱 엄한 국문을 하라는 상의 명령이 있었다는 것을 듣고난 뒤에야, 감히 죽음 속에서 살아날 계책을 내서 곧 비밀 소를 올려 역모의 실마리를 발설하여 만에 하나라도 살아나려는 요행을 도모하였습니다. 법전의 죄를 범하고 자수한 자에 관한 조목과 비교해 보면 현격히 다르니, 어찌 반역을 먼저 고발하였다고 하여 용서해줄 수 있겠습니까. 몇 해 전에 제주(濟州)의 역적 길운절(吉雲節)이 처음에는 역모에 참여했다가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는 밀고를 했으나 그래도 오히려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고, 지난 해에 김제세(金濟世)는 처음 어보(御寶)를 몰래 만든 일로 옥에 갇혔다가 끝내는 가장 먼저 고발하는 사람처럼 그 역모를 폭로하였으나 그 사이의 실정과 자취가 실로 먼저 고발한 것과 비길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죄상을 따져 형법을 밝게 시행했으므로 신과 사람이 모두 시원하게 여겼습니다.
지금 박응서가 흉악한 역적질을 앞장서서 도모한 실상은 역적들의 초사에 낭자하며, 그가 공술한 것으로 볼지라도 역시 흉악한 역적의 괴수임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간사하고 교활한 술수는 역적들 가운데서도 특히 심하니, 이 자는 실로 천지 사이의 온갖 나쁜 기운이 뭉쳐 있는 자입니다. 그때에 만약 병조와 형조가 회동하여 엄하게 국문하라는 하교가 없었다면, 그가 역모한 일을 꼭 토로했을 것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자로서 옥중에 편안히 누워 흉악한 목숨을 이미 7, 8개월이나 보존하고 있으니, 어찌 국가가 형벌을 크게 그르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간계에 오랫동안 빠져 있는 것입니다.
지금 듣건대 병이 들어 보석하라는 명을 받기까지 하였다 하니, 보고 듣는 사람들치고 놀랍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지금 이처럼 날씨가 추운 때 만의 하나라도 그대로 죽어버린다면, 죄악을 뚜렷이 밝히지 못하고 왕법(王法)을 시행하지 못할 것이니, 어찌 매우 원통하고 애석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서둘러 정형(正刑)을 가해야지 조금도 늦추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였다. 답하기를,
"아뢴 뜻도 옳다. 다만 옛날부터 고변(告變)이란 으레 그 계획에 끼었던 자에게서 나오는 법이니, 죽음을 면해주고 상을 주어 자수하는 길을 열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의논하여 아뢰라."
하니, 회계하기를,
"예로부터 고변은 대부분 악을 함께 범한 무리에서 나오는 것이니, 진실로 함께 악을 범한 무리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 역모를 알아서 고변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자에 대해서 옛날의 잘못을 씻어주고 상을 주어 새로운 공효를 권장함은 왕정(王政)에 있어서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다. 신들이 어찌 역대의 일과 우리 조종조의 전례를 듣지 못했겠습니까.
그러나 박응서의 일은 이와는 크게 다릅니다. 당초에 무리들을 결성하여 조령(鳥嶺) 밖에서 강도짓을 하면서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뺏은 죄상이 뚜렷하고, 포도청에 갇힌 지 8, 9일이 지날 때까지 매를 맞으면서 은을 강탈한 과정을 낱낱이 털어놓으면서도 전혀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3조(三曹)가 회동하여 국문하는 큰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뒤에야 반드시 자취를 감출 수 없겠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죽음에서 살아나고자 만일의 요행을 바라 비로소 비밀 상소 가운데 역모를 도모한 일을 폭로한 것입니다.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조정하는 신출귀몰한 정상이 매우 간교했으며, 나아가 공초하고 대질(對質)할 때도 재주와 기백이 영리하고 말재주가 민첩하여, 모든 역적들의 속마음까지 설파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하나 승복하게 했으니, 국가에 있어서는 큰 다행이라 하겠지만 그 올빼미와 독사 같은 독함은 여러 역적들에게 비길 바가 아닙니다. 그들의 밀모(密謀)와 생각은 모두 이 역적의 지휘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를 들어 흉악한 격문 같은 것은 비록 이경준(李耕俊)이 지은 것이라 하지만, 사실은 반드시 이 역적이 먼저 그 내용을 엮은 것입니다. 그 실상을 따져보면 이 역적은 반역의 괴수에 해당하니, 어찌 단지 그 역모에 참여하여 들은 것에 그치겠습니까. 온 나라 신민들의 원통한 마음이 뼈에 사무쳐 그와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 지 이제 8개월이 되었으니, 그가 죽음을 늦추려는 간사한 술책을 부린 것이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만약 이 역적이 조령(鳥嶺)에서 곧바로 한강을 건너와 대궐에 이르러 고변을 하였다면, 그 공로가 매우 커서 《대명률》의 죄를 범하고 가장 먼저 고발한 자는 죄를 면해 준다는 조목을 쓸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은을 강탈한 별도의 죄는 여전히 그에게 남아서 죄를 아울러 면제해 주기는 어려운 것인데, 하물며 먼저 은을 강탈한 죄로 잡혀서는 한 마디도 흉악한 역모를 언급하지 않다가 최후에서야 죽음을 모면하기에 급해 부득이 숨긴 실정을 토로한 것이니, 과연 이것을 진실한 마음으로 고변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고변을 한 까닭에 그 흉악한 목숨을 살려준다 하더라도 그 은을 강탈할 것을 먼저 제의한 죄는 끝내 모면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이 역적의 죄를 밝혀 바로잡는다면, 후일 흉악한 역모에 낀 자들이 오히려 고변이 조금이라도 늦을까 두려워하여, 자수할까 숨길까를 쥐새끼처럼 관망하지 않고 서둘러 대궐에 이르러 은혜와 상을 바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자수하는 길을 막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길운절(吉雲節)처럼 그 한 몸을 죽이는 것에만 그쳐서 훗날을 경계하는 터전으로 삼고자 한다면 혹 어떨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죽음을 용서해 준다면 결단코 그럴 수는 없으니, 그 왕법(王法)의 실의(失宜)를 어찌하겠습니까.
신들의 의견은 단연코 이와 같으나 일이 중대하니, 다른 대신들과 시임 상신(時任相臣)들에게 널리 의논하는 것이 또한 합당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였다. 대신들의 의논도 모두 죽여서 용서해서는 안된다고 하였으나, 왕이 따르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261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司法) / 변란-정변(政變) / 왕실-종친(宗親)
○傳曰: "朴應犀處置事, 令鞫廳議啓。" 鞫廳啓曰: "臣等曾以此賊之事, 欲有所陳達於聖聽者久矣。 而但以逆獄尙未結局, 故遲延至今, 卽承聖敎, 不敢容默。 此賊身陷大戮, 被繫捕盜廳, 多受亂杖, 只服銀賊殺人之罪, 而絶無他言。 至聞上敎兵刑曹堂上會同, 更加嚴鞫之命, 然後敢出死中求生之計, 卽爲祕密陳疏, 以發逆謀之端, 以爲僥倖萬一之圖。 視諸律文犯罪自首之條, 亦爲懸殊, 豈可謂首告叛逆而有所容貸哉? 昔年濟州逆賊吉雲節, 首參逆謀, 知事不成, 先爲密告, 而猶未免死。 上年金濟世, 初以盜造御寶之事就獄, 終乃露其逆謀, 似若首告之人, 而其間情跡, 實非首告之比, 故原其罪狀, 明正刑章, 神人稱快。 今此應犀首謀兇逆之狀, 縱橫狼藉於諸賊之招, 以渠之所供觀之, 亦知其兇賊之魁首, 明白無疑。 其爲奸猾巧詐, 特甚於諸賊, 此實天地間戾氣所鍾也。 當其時, 若無兵刑曹堂上會同嚴鞫之敎, 則未必吐露逆謀之事。 而安臥獄中, 得保兇喘, 已過七八箇月, 豈非國家失刑之甚者? 而墜其姦計, 亦已久矣。 今聞有病患, 至蒙保放之命, 瞻聆所及, 莫不驚怪。 當此天寒, 萬一仍致物故, 則罪惡未彰, 王法不行, 豈非可痛可惜之甚哉? 群議皆以爲急急正刑, 不容少緩。 敢啓。" 答曰: "啓意亦然。 但自古告變, 例出於與聞其謀者, 不可不貸死施賞, 以開自首之路。 更爲議啓。" 回啓曰: "自古告變者, 多出於同惡之類, 苟非同惡之類, 則其何以與其謀而上其變哉? 蕩滌舊染, 獎賞新效, 王政之所不容已者也。 臣等亦豈不聞歷代之事及我祖宗朝前例哉? 但應犀之事, 大異於此。 當初結其徒黨, 作賊嶺外, 殺越人于貨, 情犯昭著, 就囚于捕盜廳, 已過八九日, 受其刑杖, 輸情銀賊節次, 而絶無他語。 聞有三曹會鞫大段擧措, 然後自知必不能掩跡, 死中求生, 僥倖萬一, 始露其自謀逆之事於密疏中。 其捭闔操縱, 神出鬼沒之狀, 極爲奸巧。 及至供招置對之際, 才魄伶俐, 言語捷給, 說破諸賊心肝, 使之一一承服, 可謂國家之大幸矣, 而其梟獍蝮蛇之毒, 遠出諸賊之上。 其密謀陰計, 設心造意, 皆由於此賊之主張指揮。 如兇檄之文, 雖曰李耕俊所製, 而其實必此賊先爲之締構矣。 原其事狀, 此賊當爲射天之魁首, 豈可只爲與聞其謀而止哉? 一國臣民痛心切骨, 羞與之共生於一天之下者, 八箇月于玆, 則渠之得售緩死之奸術, 亦已久矣。 若使此賊, 自鳥嶺直渡漢江, 詣闕告變, 則其功甚大, 《大明律》犯罪首告得免之條, 可以用之。 然銀賊別樣之罪, 猶在於其身, 亦難竝免。 況先以銀賊被繫, 無一言及於兇謀而最晩急於救死, 不得已吐出隱情, 果可謂誠心告變乎? 雖或以告變之故, 貸其兇喘, 而其於銀賊先發之罪, 終難逭矣。 今若明正此賊之罪, 則後有與聞兇謀者, 猶恐告變之稍遲, 不爲首鼠兩端, 急急詣闕, 希恩賞矣。 豈有閉塞自首之路之理乎? 若欲如吉雲節之誅止其身, 以爲責後之地, 則或未知如何? 而至於全然貸死, 則決無是理。 其爲王法之失宜, 當如何哉? 臣等之見, 斷斷如此, 而事係重大, 廣議于他大臣及時任相臣, 亦爲允當。 敢啓。" 大臣議, 皆以爲當誅無赦。 王不從。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261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司法) / 변란-정변(政變)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