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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68권, 광해 5년 7월 24일 경진 4번째기사 1613년 명 만력(萬曆) 41년

사헌부가 사서 원탁·사과 오장을 천거에서 삭제시키기를 아뢰니 따르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전랑(銓郞)의 직책은 아주 엄밀하게 선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사람마다 함부로 있을 자리가 아닙니다. 그전 규례를 보면 한때 문망이 있는 사람을 엄밀히 뽑았는데, 반드시 정사하는 날 당상 낭청이 모였을 때 의논하여 주의(注擬)했던 것은 바로 선임하는 것을 중하게 여긴 것이니 하루아침에 무너뜨려서는 안 됩니다.

사서(司書) 원탁(元鐸)은 사람이 용렬하고, 사과(司果) 오장(吳長)은 인망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본조 낭사에서 회의도 하지 않고 갑자기 의망하니 물정이 놀라고 있습니다. 천거에서 삭제시키소서."

하니, 왕이 따랐다. 두 사람은 모두 사망(士望)이 있었으나 이렇다할 관직을 지내지 못했고 사람들도 전랑에 천거되리라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당시에 이이첨유희분박승종이 둔 전랑을 모두 쫓아내려고 하니, 박자흥은 동료들로 하여금 공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두 사람을 채용하여 시험한 것이다. 이이첨이 과연 대관을 사주하여 논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112장 B면【국편영인본】 32책 230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탄핵(彈劾) / 역사-사학(史學)

○司憲府啓曰: "銓郞之職, 其選最重。 決非人人所可冒居。 自前規例, 極擇一時聞望之人, 必於政日, 堂上郞廳齊會時, 議勘注擬, 乃所以重其選也, 固不可一朝壞了。 而司書元鐸爲人凡庸, 司果吳長人望不足。 本曹郞舍, 且未齊會, 卒然備望, 物情駭異。 請命削薦。" 兩人皆有士望, 而未甚歷揚, 人亦不期爲銓薦。 時, 李爾瞻欲盡逐所置銓郞, 朴自興不欲使儕輩當其鋒, 故用兩人以試之。 爾瞻果嗾臺論之, 王從之。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112장 B면【국편영인본】 32책 230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탄핵(彈劾)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