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홍인의 노비 덕남을 형추하니 승복하다
왕이 친국하였다. 판의금 박승종이 아뢰기를,
"어느 시대인들 난신 적자(亂臣賊子)가 없었겠습니까마는 이 역적들보다 흉악하고 원통스러운 경우는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격서(檄書)에 나오는 어귀들을 신자(臣子)의 입장에서 듣노라니 간담이 모두 찢어질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지엄한 자리 앞에서까지 꾹 참고 견디며 승복하지 않다니 신이 직접 칼을 잡고 달려 가 베어 죽이고 싶은 심정입니다. 대개 이 적들은 역모를 꾀했던 다른 경우와 비할 수가 없는 자들이니, 각별히 엄하게 국문하여 기필코 사실을 알아내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영의정 이덕형이 아뢰기를,
"이 적의 같은 패거리들 모두가 흉악하고 사특하여 꾹 참고 견디며 죽을 때까지 승복하지 않고 있는데, 먼저 그들의 처자와 노복을 국문하여 단서를 얻은 다음에 다시 그들을 신문한다면 자복을 얻어낼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하고, 박승종이 아뢰기를,
"천순(天順)013) 연간에 일어난 석향(石享)의 난 때 조씨(曹氏) 성을 가진 모역자(謀逆者)가 숨기고 바른 대로 공초하지 않자 그의 처인 하씨(賀氏)를 먼저 엄히 국문하여 옥사의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중국 조정에서도 별도로 조치한 일이 있었으니 서양갑과 심우영 등의 어미·처·자녀·노복들 모두를 먼저 국문하여 사실을 알아내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적들이 만약 사실대로 털어놓으면 그들의 어미와 처와 자녀들이 죽음에 이르지는 않게 될 것이라는 뜻을 적들의 어미와 처자와 누이들에게 잘 타이르고 나서 한편으로는 형신(刑訊)하고 한편으로는 구문(鉤問)한다면 형세로 볼 때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듯합니다."
하였다. 【조길상(曹吉祥)이 군사를 일으켜 대궐을 범했다가 전투에 패하여 죽었는데, 풍씨(馮氏) 성을 가진 그의 문객(門客)이 사실을 숨기고 승복하지 않자 조길상의 처 하씨가 증거해 주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 일은 본래 이 옥사와 비유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는데도 승종이 그릇되게 그 일을 끌어들여 임금의 뜻을 맞추었으니 〈망령되다고 하겠다.〉 . 】
덕남(德男)을 형추(刑推)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그에게 이르기를,
"너의 상전이 역모를 꾸민 일을 상세하게 바른 대로 공초하면 형을 완화해주고 묻지 않겠다. 너의 상전과 어떠어떠한 사람이 어디에서 모여 역모를 꾀했느냐?"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문사 낭청이 캐묻지는 않고 형신만 가하고 있는데, 지금부터는 문사 낭청으로 하여금 다방면으로 힐문한 다음 형신을 가하도록 하라."
하였다. 덕남이 형신하는 과정에서 4, 5번 장(杖)을 맞자, 공초하기를,
"흉악한 모의와 비밀스러운 계책을 창동(倉洞) 김비(金秘)의 집에 모여서 의논하였습니다."
하니 【이것은 되는 대로 한 공초이다. 사리도 제대로 모르는 연소한 여자와 노복들을 국문하여 단서를 만들려고 하다니 이것이 될 일인가. 】 , 이덕형이 아뢰기를,
"김비의 이름이 거듭 적의 입에서 나왔으니 먼저 그를 국문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박승종 등이 아뢰기를,
"죄인 덕남이 이미 승복하였으니 율대로 처단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무신년에 역적을 국문할 때 죄인이 바른 대로 공초하면 형을 시행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논해 처리하라."
하였다. 좌우가 모두 아뢰기를,
"사안이 중대한 만큼 아래에서 마음대로 처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상께서 재결하소서."
하니, 왕이 알았다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167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변란-정변(政變) / 역사-고사(故事) / 가족-가족(家族) / 신분(身分)
- [註 013]천순(天順) : 명 영종(明英宗)의 연호.
○癸丑五月初二日己未王親鞫。 判義禁朴承宗啓曰: "亂臣賊子, 何代無之? 窮兇極惡, 未有甚於此賊。 至於檄書諸語, 臣子聞之, 肝膽俱裂。 嚴威之下, 堅忍不服, 臣欲親自刀割而刲之矣。 大槪此賊非他謀逆之比, 各別嚴鞫, 期於得情何如?" 領議政李德馨啓曰: "此賊同黨皆兇詐, 堅忍至死不服, 先鞫妻子奴僕, 得其端緖, 然後更訊渠輩, 則似有取服之理。" 朴承宗啓曰: "天順間, 石享之亂, 有曺姓謀逆者, 諱不直招, 其妻賀氏, 先爲嚴鞫, 以成獄體。 天朝亦有別樣處置之擧, 羊甲、友英等母、妻、子女、奴僕等竝先爲鞫問, 得情爲當。 賊輩若或輸情, 則母、妻、子女不至於死, 此意開諭于賊輩之母、妻、子妹, 一以刑訊, 一以鉤問, 似有得情之勢矣。" 【曺吉祥擧兵犯闕, 兵敗而誅其門客馮姓人, 諱不承服, 曺妻賀氏證之而已。 本非此獄之比, 而承宗謬引, 以承主意(,妄矣)。】刑推德男。 王使謂曰: "渠上典謀逆之事, 詳細直招, 則當緩刑不問。 渠上典及某某人, 聚會何處而謀逆乎?" 王曰: "問事郞不爲鉤問, 只加刑訊, 自今使問事郞多般詰問, 然後施刑。" 德男受刑訊四五杖, 供云: "兇謀、祕計, 會議於倉洞 金祕家云。" 【此亂招也。 鞫迷暗年少女子、奴人, 以開端緖可乎?】李德馨曰: "金祕重出賊口, 宜先鞫。" 承宗等啓曰: "罪人德男, 已爲承服, 請依律處斷。" 王曰: "戊申年鞫逆時, 罪人直招, 則有不爲行刑之人。 今則何以爲之? 議處。" 左右皆曰: "事係重大, 自下擅便爲難, 惟上裁。" 王曰: "知道。"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167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변란-정변(政變) / 역사-고사(故事) / 가족-가족(家族) / 신분(身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