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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59권, 광해 4년 11월 15일 을사 3번째기사 1612년 명 만력(萬曆) 40년

예조 판서 이정귀가 새 도성 건설을 청하는 술관 이의신의 상소에 대해 반박하다

술관 이의신(李懿信)이 상소하여, 도성의 왕기(旺氣)가 이미 쇠하였으므로 도성을 교하현(交河縣)에 세워 순행(巡幸)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니, 왕이 예조에 내려 의논토록 하였다. 예조 판서 이정귀(李廷龜)가 회계하기를,

"삼가 이의신의 상소를 보건대,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들이 사람을 현혹시킬 뿐 무슨 뜻인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풍수(風水)의 설은 경전(經傳)에 나타나지 않은 말로 괴상하고 아득하여 본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참위(讖緯)와 여러 방술(方術)의 근거없는 말들을 주워모아 까닭도 없이 나라의 도성을 옮기자 하니 역시 괴이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한양의 도읍은 화악(華岳)을 의거하여 한강에 임하였으며 지세는 평탄하고 도로의 거리는 균일하여 주거(舟車)가 모두 모이는 중심지로서 천연적인 비옥한 토지와 굳건한 성곽 등 형세상의 우수함은 나라에서 제일이니 이야말로 전후의 중국 사신들도 모두 칭찬한 바였습니다. 우리 성조(聖祖)께서 나라를 세우려고 터를 마련하면서 여러 곳을 살펴보고 여러 해를 경영하였으나 끝내는 이곳에 정하였으니, 깊고 먼 계략을 어찌 미미한 일개 술관과 비교해 논의할 수 있겠습니까. 2백 년이 되도록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였으며 다스림은 융성하고 풍속은 아름다웠으니 실로 만세토록 흔들리지 않을 터입니다. 복지(福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의신은 임진년의 병란과 역변이 계속하여 일어나는 것과 조정의 관리들이 분당하는 것과 사방의 산들이 벌거벗은 것이 국도의 탓이라고 합니다. 아, 수길(秀吉)의 하늘까지 닿은 재앙은 실로 천하에 관계된 것이며 역적의 변괴가 일어난 것은 국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국법을 두려워하여 도끼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으면 산의 나무는 저절로 무성할 것이며 편협되고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왕도를 바로 세우면 조정의 의논은 저절로 화협할 것입니다. 이는 모두 인군과 신하, 위와 아래 모두가 힘써야 할 바입니다. 고금 천하에 어찌 이를 이유로 국도를 옮기는 일이 있었습니까. 설사 풍수의 설을 받들어 믿을 만하고 가능치도 않은 일들이 낱낱이 맞는다 하더라도 도성을 옮기는 일은 막중 막대한 일이니, 비록 곽박(郭璞)125) 이 건의하고 이순풍(李淳風)126) 이 계책을 세웠다 하더라도 오히려 경솔히 의논하지 못할 것인데 더구나 의신의 방술에 대한 수준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듣건대, 그 사람은 상당히 구변(口辯)이 있고 문자도 제법 알기 때문에 방서(方書)에 의거하여 큰소리 치고 있으나 실상은 그들의 동류들도 비웃는 자가 많다 하며 여염과 사대부의 사이에 묘자리와 집터를 지정해준 것도 대부분 효험이 없다고 하니, 그가 곽박, 순풍과 같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그가 이른바 교하는 복지이고 한양은 흉하다는 말에 대해 세상에 알 만한 자가 없으니 누가 능히 가리겠습니까만, 당당한 국가가 어찌 일개 필부의 허망한 말을 선뜻 믿어 2백 년의 굳건한 터전과 살고 있는 수많은 우리 백성으로 하여금 갑자기 일거에 떠돌이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 소장이 들어오면서부터 사람들이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고 서로 뜬소문에 동요되어 더러는 ‘성상께서 이 말을 믿는다.’ 하고, 더러는 ‘새 궁궐에 나가지 않는 것은 이 말 때문이다.’ 하여, 원근이 모두 놀래고 현혹되어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이단(異端)이 국가에 해독을 끼치는 일이 예로부터 그러했으니, 고려 말엽에는 요승(妖僧) 묘청(妙淸)이 음양의 설로 임금을 현혹하기를 ‘송경(松京)은 왕업이 이미 쇠퇴하였고 서경(西京)에 왕기가 있으므로 도읍을 옮겨야 한다.’고 하여 드디어 새 궁궐을 서경 임원역(林原驛)에 지었으나 끝내는 유참(柳旵) 등의 변란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예전의 고사도 이와 같은데, 어찌 경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저 나라의 터전을 장대하게 하고 영원한 명을 비는 도리는 다만 형정(刑政)을 밝히고 취사(取舍)를 살피는 것, 백성을 사랑하고 풍속을 도탑게 하는 것, 내정을 잘 닦고 외적을 물리치는 일뿐입니다. 참으로 이 도리를 반대로 하면 비록 해마다 도읍을 옮긴다 하더라도 다만 위란만 불러들일 것입니다. 이제 그는 말하기를 ‘인사가 가지런히 되지 않는 것은 그 원인이 기수(氣數)에 있다.’ 하였는데, 이는 임금으로 하여금 인사를 닦지 않고 다만 기수에만 의지하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망국(亡國)의 말인 것입니다. 신들이 예관이 되어 예에 벗어난 말들을 감히 다시 의논하지 못하겠으니, 성명께서는 요망한 말들을 물리치고 멀리하여 성상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속히 법궁(法宮)에 나아가 뭇사람들의 의심이 풀리도록 하소서.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예로부터 새로 도성을 세운 제왕이 많았으니 본디 세웠던 도성을 아주 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의신의 방술이 정미하다고 내가 지나치게 믿는 지의 여부를 예관이 어떻게 아는가. 새 궁궐로 곧 옮기려고 했으나 내전이 상(喪)을 당하였고 역옥(逆獄)이 계속 일어나므로 나라에 일이 많아 여기까지 미칠 틈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터무니없고 근거도 없는 말로서 이 말을 믿는다고 임금을 지척하고, 또 ‘법궁에 나가지 않는 것이 이 말 때문이다.’ 하니, 너무 놀랍다. 앞으로는 이러한 등의 말을 경솔하게 내지 말도록 하라. 소장의 끝에 있는 회계의 일은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상의하여 의계(議啓)토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13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왕실-행행(行幸) / 역사-전사(前史)

  • [註 125]
    곽박(郭璞) : 동진 사람 복서가.
  • [註 126]
    이순풍(李淳風) : 당 나라 사람. 지리에 밝음.

○術官李懿信上疏言: "都城旺氣已衰, 宜建都於交河縣, 以備巡幸。" 王下禮曹議。 禮曹判書李廷龜回啓曰: "伏見李懿信上疏, 滿紙張皇, 使人眩惑, 莫測端倪。 風水之說, 不見經傳, 怪誕茫昧, 本難憑信。 今乃綴拾讖緯及諸方不根之說, 無故而欲移國都, 亦異矣。 竊念漢都, 據華岳漢水, 土地平衍, 道里均正, 舟車畢達, 天府金城, 形勢之勝, 甲於一國, 此實前後使之所共稱賞。 惟我聖祖, 創業開基, 相度諸處, 經營數年, 終乃定鼎于此, 其深謀遠略, 夫豈幺麽一術官所能擬議哉? 二百年來, 國泰民安, 治隆俗美, 實萬世不拔之基, 非福地而何哉? 今者懿信, 乃以壬辰之兵亂、逆變之繼起、朝紳之分黨、四山之童赤, 歸咎於國都。 噫! 秀吉滔天之禍, 實關於天下, 潢池竊發之變, 不係於國都。 人畏國法, 斧斤不入, 則山木自茂矣, 絶去偏私, 王道蕩蕩, 則廷議自協矣。 此皆君臣上下之所當共勉, 古今天下, 寧有以此而遷國都者乎? 設使風水之說, 爲可崇信, 未之事, 一一符合, 遷都之擧, 莫大莫重, 雖郭璞建議, 淳風劃策, 猶難輕議, 況懿信之技術, 精粗淺深, 誰得而知之? 似聞其人頗有口才, 且解文字, 故能考据方書, 高談自誇, 而其實則渠之者流中, 多有非笑者, 閭閻士大夫間, 卜墓相宅者, 亦多不效云, 其非郭璞淳風則明矣。 其所謂交河之福利、漢都之凶咎, 世無知者, 孰能究辨? 堂堂國家, 豈可以一匹夫荒誕之說, 遽以爲信, 使二百年鞏固之基業、百萬億奠居之生靈, 忽焉漂蕩於一擲哉? 自此疏之入, 人無固志, 胥動浮言, 或謂: ‘聖明亦信此說。’ 或謂: ‘新闕之不御, 此說爲之祟。’ 遠近驚惑, 景象不佳。 左道之害人國家, 自古而然高麗之末, 妖僧妙淸, 以陰陽之說, 眩惑其君, 謂: ‘松京基業已衰, 西京有王氣, 宜移都。’ 遂作新宮于西京 林原驛, 終有柳旵等之亂。 前事如此, 豈非可戒? 夫壯國基、祈永命之道, 只在於明政刑、審取舍、愛民厚俗、修內攘外而已。 苟反是道, 雖逐年遷移, 只速其危亂。 今其言乃曰: ‘人事之不齊, 在於氣數。’ 是欲使人君, 不修人事, 而但付之於氣數也, 此實亡國之言也。 臣等待罪禮官, 非禮之說, 不敢議覆。 伏願聖上, 斥遠妖言, 以正聖心, 亟御法宮, 以定群疑。 (敢啓。)" 答曰: "自古帝王, 建京者多矣, 非欲永棄本都之意。 且懿信之技術精粗, 自上傾信與否, 禮官何以知之? 新闕卽當還移, 而緣內殿遭喪, 逆獄繼起, 國家多事, 未暇及此。 今乃以無稽不根之說, 斥君上信此說。 又曰: ‘不御法宮, 此說爲之祟。’ 可駭之甚也。 後勿輕發此等語。 疏尾有回啓事, 平心商量議啓。"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13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왕실-행행(行幸)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