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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56권, 광해 4년 8월 9일 경오 3번째기사 1612년 명 만력(萬曆) 40년

지중추부사 허성의 졸기

【지중추부사 허성(許筬)이 졸하였다.】 전교하기를,

"허성은 훈명(勳名)도 받지 못하고 갑자기 죽었다. 관에서 갖추어 줄 장사 물품을 법전에 의거해서 시행하라."

하였다. 【허성은 허엽(許曄)의 아들이다. 그의 배다른 동생인 허봉(許篈)·허균(許筠)과 더불어 모두 이름이 났었는데, 허성은 이학(理學)으로 자칭하였다. 그러나 성질이 고집스럽고 꽉 막혔으며, 당론을 좋아하여 자기와 의견이 다른 자를 공격하였는데, 늙어서는 더욱 심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임해군을 고발하여 원훈이 되어 다시 임금의 은총을 받다가 얼마 뒤에 죽었다. 반정 후 관작을 삭탈당하였다. 】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108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91면
  • 【분류】
    인물(人物)

知中樞府事許筬卒。傳曰: "許筬未受勳名, 遽至溘然, 其喪葬官之事, 依法典施行。" , 之子也。 與異母弟 俱有名。 以理學自名, 而性多執滯, 好黨論, 攻斥異己, 至老益甚。 至是, 爲告臨海元勳, 復承恩遇, 尋卒。 反正後, 追奪官爵。】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108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91면
  •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