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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46권, 광해 3년 10월 14일 경진 3번째기사 1611년 명 만력(萬曆) 39년

경연에서 신하들과 덕치·형옥 공정·상벌 신중·호패법 등의 일을 논하다

〈진시(辰時) 초에〉 왕이 경연에 나아갔다. 시독관 목대흠(睦大欽)《상서》 다방(多方)편을 진강했다. 상이 이르기를,

"이것은 이 여러 나라를 거느리고 크게 하(夏)나라를 대신해서 백성들의 임금이 된 것을 말한 것이다. 백성들이 임금을 선택함이 이와 같다. 걸(桀)이 비록 임금답지 못하기는 했지만 백성들의 배반이 어찌 여기까지 이르렀는가?"

하니 대흠이 아뢰기를,

"이 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배반했고 은 착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따랐습니다. 인심의 향배가 매우 두렵습니다."

하였고, 영사 이원익은 아뢰기를,

"천하 백성들의 마음으로 말한다면 진실로 경연관이 아뢴 바와 같지만, 군신간의 의리로 말하면 성인도 은미한 뜻이 있어서, 문왕은 지덕(至德)이라 일컫고 탕무(湯武)는 참덕(慙德)하다 일컬었습니다. 백이·숙제가 말고삐를 잡고 간한 것은 역시 만고에 추앙받는 강상입니다. 대저 신하된 자는 실로 백성된 자와 다릅니다. 백성들은 각자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위에서 그 도리를 잃으면 자연 반란하게 됩니다. 민심이 이합 집산하는 데 따라 천명의 거취가 결정됩니다. 그러나 신하된 자는 비록 걸주의 신하라 하더라도, 그 임금을 위하여 죽지 않으면 실절(失節)한 신하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진실로 백이·숙제에 대한 죄인인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어느 한 가지도 버릴 수 없습니다."

하였고, 동지사 이정귀는 아뢰기를,

"상나라는 현성한 임금이 잇따라 나와서 대대로 가법(家法)을 전하여 인심을 굳건히 모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 유덕(遺德)을 잊지 못하여 곧바로 주나라에 복종할 수 없었으니, 이것이 바로 다방(多方)이 지어진 까닭입니다. 주(紂)가 학정을 할 때는 백성들이 기름불 속에 빠져서 ‘저 자가 언제나 망할꼬.’ 하는 탄식을 했지만, 정작 평정된 뒤에는 주나라의 덕으로도 갑자기 교화시킬 수 없었으니, 임금이 덕을 잘 닦은 효험을 여기서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하였고, 검토관 권흔(權昕)은 아뢰기를,

"삼대 때는 형벌이 올바랐기 때문에 천하가 복종했는데, 그 뒤의 말세는 형벌이 올바름을 잃어서, 더러 죄지은 자가 뒷길을 통해서 요행으로 면탈하기도 하는바, 이것이 어진 행위 같이 보이기도 하겠지만 인(仁)이란 온정만 베푸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하면서도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인의 참된 모습입니다. 형정(刑政)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요즘 형정이 해이해져서 왕법(王法)이 시행되지 않으니 지극히 한심하다. 어째서 이런가?"

하니 이원익이 아뢰기를,

"소신이 보기에는 지금은 상벌의 정사가 거의 없어져버렸다 하겠습니다. 비록 어떤 것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상께서 벼릿줄을 잡아당기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대저 상벌이 분명해야 기강이 섭니다. 상께서 마땅히 사사로운 생각을 끊어버리고, 형옥(刑獄) 같은 일은 옥사를 담당하는 관원에게 맡겨서 실정에 맞게 죄를 준다면, 비록 가깝고 친하고 귀한 자라도 빠져나갈 길이 없을 것이니, 아랫사람이 누가 감히 성상의 뜻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신이 가끔 수의하는 일을 통해서 살펴보건대, 상의 뜻이 꼭 봐주려고 하는 자이면, 아무리 어사를 보내어 사정을 자세히 알게 된 일이라도, 옥관이 의계할 때 완곡하게 감싸주는 말로 꾸며서, 신 같은 자는 그 죄상을 분명하게 알 수 없으므로 남들이 결정하여 놓은 밑에다 그냥 이름만 갖다 붙이고 맙니다. 공정하게 결정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상께서 마땅히 상벌이 나 때문에 밝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엄숙히 마음을 다잡아 고치려 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만약 상께서 이미 이런 생각을 갖지 않는다면, 아랫사람들도 저마다 사사로운 마음을 가질 터인데, 상벌이 어떻게 공정해지겠습니까.

작상(爵賞)이란 원래 사람을 부리는 수단입니다. 한번 그 용도를 상실하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임금은 이를 아끼고 신중히 하여, 어질고 유능한 자를 가리어 맡겨서, 반드시 공이 있어야 상을 내리고 벼슬을 주되, 소원하다고 인색하게 하지 말고 친밀하다 해서 함부로 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모두 격려받아서 노력할 것입니다. 상벌이 분명해지면 기강이 저절로 잡히어 안으로 백관과 밖으로 사방이 모두 명령을 따를 것입니다. 대저 요순 같은 분이 임금이 된다 해도 상벌이 아니고는 손발조차 꼼짝할 수 없습니다. 아랫사람이 항상 윗사람을 공박하는 것이 일방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모든 일의 조리와 본말이 윗사람에 달리지 않은 것이 없으니, 상께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아래에서 하는 노력은 한갓 허사일 뿐입니다. 상께서는 마땅히 필연적으로 윗사람에게 책임이 돌아온다는 생각을 가지소서. 벌을 신중히 하는 데 대하여 말한다면, 풀어서 놓아주는 것만이 벌을 신중히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해당하는 자를 베는 것도 벌을 신중히 하는 것입니다. 벌이 죄에 합당하게 되면 한 사람을 벌주고 놓아주는 것이 천만 사람을 격려하고 징벌하는 것이 되어 형정이 저절로 시행될 것입니다. 형정이 저절로 시행되면 백사가 모두 잘될 터인데, 다른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하였고, 이정귀는 아뢰기를,

"사람들이 법을 두려워 않는 것은 진실로 상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조정이 겨우 법령을 세우고는 돌아서서 무너뜨립니다. 작은 예를 든다면 승전을 받든 일조차 그 날로 곧장 범해서 봉행하지 않는데, 이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상벌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임금은 단지 상벌로 아랫사람을 부릴 뿐, 이 밖에 달리 부릴 방법이 없는데, 요즘 상은 넘치고 벌은 풀어져서 공이 없는 사람이 상을 타고 죄를 지은 자가 벌이 없으니, 사람들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고, 이원익은 아뢰기를,

"임금은 늘 인심이 불선(不善)하다고 말합니다. 아래 있는 자로 말하더라도 감사나 수령 또한 반드시 이곳 인심이 불선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윗자리에 있는 이가 항상 하는 말입니다. 인심이 참으로 옛날 같지 않기는 합니다. 그러나 전해오는 말에 ‘이 백성들은 삼대 때부터 바른 도리로 다스려온 백성들이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진실로 그 상벌을 분명히 한다면, 바람이 불면 풀이 눕듯 인심이 저절로 복종할 것입니다. 요점은 근본을 다잡는 데 있을 뿐입니다. 상께서 마땅히 살펴서 행하여야 할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형정이 해이해졌다는 것은 사실 그렇다. 비록 죄를 주어도 법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다 내가 제대로 못한 소치이다. 실로 자신이 부끄럽다. 상에 대해서는 근래에 자주 전례를 상고하여 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하였다. 이원익이 아뢰기를,

"대례(大禮)를 치르고 나면 상께서 논상을 하는 것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것들도 모두 신하들이 맡은 직분에 속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성급하게 관작을 상주는 일을 마치 물쓰듯 하기 때문에, 그 관작이 무게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더구나 누구는 어떤 일을 잘하고 누구는 어떤 일을 못하는지를 따지지도 않고, 그들에게 상벌을 줄 때에는 단지 근무 기간의 길고 짧음에 따라 무겁거나 가볍게 상주기 때문에, 무리 속에 휩쓸리어 출퇴근만 할 뿐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자가, 차정(差定)된 날짜만 오래되면 문득 벼슬을 상받는 자들 속에 끼입니다. 혹 무능한 자가 있어도 대간은 내버려두고 규탄하지도 않으므로, 전례가 끝난 뒤에 보면 역시 이런 자들이 벼슬을 상받은 자들 속에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직임이 제수되지 않더라도 이미 승전을 받들었으면 실제로 벼슬은 상받은 것입니다. 승전을 받아 문부에 기록한 것이 쌓여 권축(卷軸)이 되니, 전조가 아무리 일일이 봉행하려 해도 문부를 들치면 하도 많아서 손을 댈 수 없습니다. 형편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만약 재상이 부탁하면 들어 시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승전한 것은 내버려둡니다. 어떻게 재상의 부탁이 임금의 승전보다 중하겠습니까. 하도 승전한 것이 많아서 취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정말 사체에 미안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상이 넘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노력할 필요가 없어서, 명령해도 행해지지 않고, 아래 있는 자들은 사사로운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스스로가 정당하지 못하다 하여 임금에게 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최선의 도리로써 위에 계신 분에게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께서 사사로운 잘못을 저지른다면, 조정이 다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상께서 사사로운 허물이 기필코 없어야만 아래에서 모두 보고 느끼어 스스로 사사로운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신과 같이 변변찮은 자라 하더라도 어찌 감히 사사로이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조정이 저절로 바루어져서 다스리는 체통이 설 것입니다.

소관(小官)이 상의 궐실(闕失)을 말하면, 상께서는 그가 강직하다는 이름을 사려 한다고 의심하거나, 임금의 과오를 드러내어 퍼뜨리려 한다고 의심하거나, 그자 또한 정당하지 않다고 하시겠습니까. 반드시 이런 생각을 끊어버리고 평탄한 마음으로 살펴서 받아들인다면, 사람의 옳고 그름을 넉넉히 이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간사한 사람은 반드시 임금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따라 맞추어주고, 착한 사람은 반드시 사리의 옳고 그름을 따라 겨루어 다툽니다. 맞추어주면서 어떻게 순종하지 않을 수 있으며, 겨루어 다투면서 어떻게 거스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비위를 맞추는 행위를 잘 살펴보고 마음을 거스르는 내용을 잘 검토해보면, 그 사람의 옳고 그름이 자연 드러날 것입니다. 《서경》에 ‘사람을 안다는 것은 곧 명철함이다. 순임금도 이것만은 어려워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알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관찰한다면 대개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옛사람이 ‘임금이 어질면 신하가 올바르다.’고 했습니다. 임금이 반드시 간언을 받아들여야 신하가 말을 다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임금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역사에서 살펴보면, 간언을 받아들일 때는 항상 말하는 자가 많고, 말을 죄주던 시절에는 반드시 간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사세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임금이 어질지 못하다면 그 누가 간하다가 죽으려고 하겠습니까. 간하다가 죽은 자는 용방(龍逄)·비간(比干) 이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신하가 만약 궐실(闕失)에 대해서 말할 때, 반가이 받아들여 선뜻 고친다면 당초에 허물이 없을 때보다도 더욱 빛이 날 것입니다. 대저 처음부터 허물이 없으면 사람들이 심상하게 여기겠지만, 잘못이 있다는 말을 듣다가 고치는 것을 보게 되면 사람들이 놀라서 기꺼이 감복하여 모두 와서 간하려 할 것입니다. 어찌 허물이 없을 때보다도 더욱 빛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선(善)을 실천함에 있어서 위에 있는 분이 어떻게 혼자 할 수 있겠습니까. 아래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또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면 효험이 없어져 버립니다. 아래에서 말하는 것이 다스림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칭찬하고 격려해서 고무시킨다면, 모든 선한 자들이 반드시 모여들 것입니다. 대저 사람들에게서 선을 취하여서 행할 때, 그 선이 무궁무진한 것은 요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가 이로써 위에서는 모자라고 아래서는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용인(用人)이란 것은 임금의 덕의 둘째로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용인의 도리를 잃는다면 착하지 못한 자들만 조정에 가득할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오랫동안 경연을 폐하였으니, 뭇 신하의 현부(賢否)를 무슨 방법으로 알겠습니까. 그 현부는 모르고 다만 사사로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 따라서 쓰고 있으니 전하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겠습니까. 대저 임금이 사람을 쓸 때는 반드시 그 말하는 것을 들어보고 그 마음씀을 살펴서 먼저 옳은 자인지 그른 자인지를 결정한 뒤에 쓰는 법입니다. 그렇게 되면 쓰인 자는 노력하여 분발하려 할 것이고, 쓰이지 않은 자는 두려워서 자기 과오를 반성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나 미련한 자나 모두 자기의 모든 능력을 바칠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는 서로 접하여 그 현부를 판단할 기회가 없으니, 무엇에 근거하여 가리어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에 잠저에 계실 때 더러 시강원의 관료들과 상접할 기회가 있었겠지만, 의논한 것들이 치도(治道)에 관한 것이 아니고 단지 글에 대한 강의뿐이었으니, 그것만으로 어떻게 그 사람됨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조종조에서는 자주 신하들을 접해서 대내에까지 불러들이기도 하고, 일을 아뢸 때에는 무간하게 드나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현부를 환히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신하를 접할 기회가 경연뿐인데, 그 경연마저 비워두고 있으니 사람의 현부를 알 방법이 없습니다. 만약 좋아하고 싫어함을 따라서 가려 쓴다면 용인이 어떻게 공정하겠습니까. 상께서는 자주 신하를 인접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인접하려 한다면 이처럼 추운 계절에 꼭 조강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불시의 소대(召對)이든 무엇이든 불가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잠저에 계실 때 성학(聖學)이 고명(高明)했는데, 무엇 때문에 헛된 글공부만 일삼겠습니까. 책을 펴놓고 다스리는 도리를 강론하고, 또 각자 소회를 말하게 하면, 정말 절실하게 아름다운 일일 것입니다. 이같은 몇 번의 음독과 뜻새김이 그 고명하심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하고는 눈물이 흘러 흐느끼어 제대로 말을 못하면서,

"옛사람이 ‘요순을 본받으려면 조상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소신이 젊어서부터 선왕의 은총을 입어 경연에서 모시면서 보았는데, 즉위하신 초년에는 부지런히 경연에 납시어 하루에도 두세 번씩 안 나오는 날이 없었습니다. 전하께서도 어찌 들어서 아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년에는 병환으로 중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부지런히 납실 때에야 유신이 어떻게 잠시인들 비울 수 있으며 일각인들 강론을 태만히 버려둘 수 있었겠습니까. 선조(先朝)에서 경연에 납시는 일이 드물어지고부터 궐직(闕直)하는 폐단이 생기었는데, 신은 한 번씩 들을 때마다 무척 놀라웠습니다. 선조의 말년에는 미령하시어 경연을 폐하였던 것인데, 지금 실로 성후(聖候)가 본래 약하신 줄은 압니다만, 그러나 어떻게 선왕께서 병환으로 계실 때와 같기야 하겠습니까. 경연을 부지런히 납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들 입직하는 관원이 비록 연소한 후진이라 하더라도 어찌 고사를 모르겠습니까. 위에서 경연에 납시지 않기 때문에 소홀하게 여겨 그렇게 하는 것인데, 단지 파직이나 추고로 그 폐단을 제거하려 한다면 기필코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열심히 경연에 납시는데도 여전히 지난 버릇을 답습한다면 그때는 파직이나 추고뿐 아니라 엄중하게 다스려도 좋을 것입니다.

선조에서는 경연뿐만 아니라 공사(公事)에 대해서도 부지런히 재결하였는데, 비록 밤이 깊은 때라도 출납을 중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재상의 집이라 한들 어떻게 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취침한 뒤에는 낭청이 비록 공사를 가지고 문간에 이르렀다가도 말을 못하고 마는 일이 많았는데, 선왕은 이렇게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시급한 일은 의당 그럴 것이겠지만 급하지 않은 일도 입계하면 곧 계하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공사가 지체되고 있으니, 이것은 비록 상께서 건강이 약해서 그렇기는 하지만, 근심하고 걱정하는 도리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쌓이고 또 쌓이면 재결할 때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왕이 즉위한 이래로 강연(講筵)을 오랫동안 폐하고 일반 공사의 재결도 태만해서 대간의 계사마저 매양 날을 넘기고서야 계하하였다. 더러 밤에 들이려 하면 왕이 항상 침내에 있기 때문에 환시들까지도 뵈올 수가 없었다. 왕이 일찍이 환시 이봉정(李鳳禎)에게 묻기를 "너는 어떻게 그렇게 뚱뚱하냐?" 하니 봉정이 대답하기를 "소신이 선조(先朝) 때에는 선왕이 장시간 공사청에 납시어 온갖 일을 열심히 재결하시기 때문에, 항상 옆에서 모시느라 낮에는 밥먹을 겨를이 없고 밤에도 편히 잠을 못 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하께서 공사청에 납시는 때가 없으므로, 소신은 종일 태평하게 쉬고 밤에도 편안하게 잠을 자기 때문에 고달픈 일이 없으니, 어찌 살이 찌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한다. 대저 이렇게 풍자한 것이다. 】 왕이 이르기를,

"궐직하는 일은 옥당뿐만 아니고 강원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경연을 열지 않은 소치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기강이 무너진 때문이다."

하니 원익이 아뢰기를,

"상께서 만약 열심히 경연에 납시어 궐직하는 일을 엄중히 다스린다면 기강이 저절로 설 것입니다."

하자 왕이 이르기를,

"공사가 지체되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사세가 그렇지 않을 수 없어서이다. 조종조에서는 긴급한 일만 입계했는데 지금은 미세한 일도 모두 입계하고 있다. 선조 때로 보면 명나라 사신이 와 있을 때와 같은 때는 사실 사무가 많았지만, 평상시에야 어찌 오늘처럼 많았겠는가. 급한 일 같으면 지금도 비록 밤이라도 입계하고 있다. 급한 것을 먼저 하느라 완만한 것은 뒤로 미루다 보니 긴하지 않은 것은 자연 지체된다. 그리고 또 빨리 재결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빨리 하면 잘못 재결한다.’는 옛사람의 경계도 있으므로, 자세하고 신중하게 하려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지금 아뢴 말은 마땅히 깊이 생각하겠다."

하였는데, 원익이 말하기를,

"조종조의 일이야 소신인들 어찌 듣지 않았겠습니까. 지금은 해사의 낭관 한 사람도 오히려 일을 처리하지 않고 반드시 임금께 아뢰니 공사가 어찌 번거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조종조에는 자주 승지를 불러 가부를 묻고, 상신이라 하더라도 또한 입대하게 해서 공사를 의논했기 때문에, 위 아래의 마음이 서로 통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은 승지가 손님처럼 바깥에 앉아서 문서나 출납할 뿐이니 사무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만약 위 아래의 마음이 서로 통한다면, 위에서는 다만 큰 줄기만 잡아 다스리면 나라가 저절로 다스려질 것입니다. 다스리는 체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임금은 마땅히 세세한 일에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세한 일까지 입계하라 하시니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일을 줄이려 하신다면, 그것은 전하께서 처치하시기에 달린 일이며, 아래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즉위하신 처음에는 사람들이 모두 말을 하고자 하여, 심지어 벼슬이 없는 포의(布衣)까지도 역시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어찌 모두 쓸 만하거나 모두 쓸모 없기야 하겠습니까. 근래에 와서 조정에서 궐실에 대하여 계문하는 자가 없는데, 전하는 이것을 태평해서 무사한 것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말이 없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특히 접때 언사에 관계된 신하들이 잇따라 쫓겨났기 때문에 사기가 꺾이어 그런 것입니다. 당시에 언론한 자들이, 어찌 강직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였겠으며, 임금의 과오를 드러내어 퍼뜨리기 위해서였겠습니까. 전하께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모두 국가에 이로운 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말을 버리고 그 사람을 내쫓고, 스스로 자신만만해 하면서 듣기 싫다는 하교만 하였으니, 그 누가 말을 다하려 하겠습니까. 하물며 임금은 그 위엄이 천둥 같기 때문에, 안색을 화평하게 하여 말을 다하라고 해도 오히려 두려워서 감히 다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예로부터 임금이 간혹 진노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진노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에, 간관으로 쓸 만한 사람은 간관으로 쓰고 경연에 둘 만한 자는 경연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인심이 열복(悅服)했던 것입니다. 지금 견책을 받은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다시 거두어 써서 사람들을 분발시킨다면, 감히 간하려는 자들이 울연히 배출될 것입니다. 오직 전하께서 이끌어 주시기만 하면 되는 일입니다.

사사로운 정의 폐해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천하의 치란(治亂)과 국가의 존망이 오로지 공과 사의 구별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안으로 조정과 밖으로 고을이 모두 공도(公道)는 없고 사욕만 가득합니다. 이미 사욕이 가득하면 지탱할 방법이 없으므로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전하께서 마음가짐을 공정하게 하여 인물을 가려 써서, 형옥을 판결하고 사무를 처리하되 무엇이든 공정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되면, 폐단을 혁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임금의 마음은 모든 교화의 근원입니다. 오로지 책망만 하는 것이 일방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방책이 없습니다. 반드시 마음을 맑게 해서 밝고 공변되게 응접해야겠습니다. 신이 경연에 납시도록 권하는 이유는 임금이 항상 유신, 사대부와 함께 치도를 강론하면, 마음이 저절로 맑아져서 응접하는 것이 자연 공명하게 되어 임금의 덕이 성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항상 대내에서 거처하면서 궁인들하고만 지낸다면, 궁인들이 어찌 치도에 관한 말을 하겠습니까. 그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 상께서 기뻐하는 것일 것이고,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상께서 하고 싶어하는 일일 터인데, 상께서 아무리 고명하시다 한들 어찌 흔들리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고려사》를 보았습니다. 고려 태조는 잡술로 개국하였으니, 어찌 예로 나라를 다스리는 아조(我朝)만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임금이 신민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간언을 따르고 참언을 멀리하는 길 뿐이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5백 년 간 고려를 지켜온 정신의 기맥입니다. 대저 간하는 자는 다시 정사의 득실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모두 당연한 사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만약 들어주기만 한다면 인심이 열복해서 다스리는 효험이 저절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참소하는 말은 뒷길로 살그머니 들어오는, 자기 몸만 생각하는 사사로운 말에 불과합니다. 혹시라도 믿어서 쓴다면, 인심이 크게 실망해서 다시 해 볼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간언을 따르고 참언을 멀리하라는 말은 정말 지극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전하께서 항상 대내에만 계시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인데, 또한 신이 들은 말을 모두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궁중에서 많이 좌도(左道)가 행해진다고들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옛사람도 시초점이나 거북점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좌도라는 것이 어찌 옛날의 이른바 거북점, 시초점과 방불한 것이겠습니까. 반드시 철저히 끊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런 것에 얽매이면 사리가 흐려져서 끝내 치도를 해치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이때 상이 좌도에 심히 미혹했기 때문에 명과학(命科學)을 한 정사륜(鄭思倫), 환속한 중 이응두(李應斗) 등이 모두 추수(推數)075) 로 진출해서 궁중에서 모시면서 임금의 총애와 대접이 두터웠다. 어떤 움직일 일이 있으면, 한결같이 길흉이나 금기만 따지는 그들의 말만 들어서, 곧바로 정전(正殿)으로 옮기지 않는 것도 역시 이들의 말 때문이었다. 심지어 귀신을 섬기고 복을 비는 일까지 안 하는 것이 없었다. 이때 거처를 옮기는 거둥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새 대궐에서 매일 음사(淫祠)를 행하느라 북소리 장구소리가 대궐 밖에 들렸으므로, 도성 백성들이 말하기를 "죽어서 귀신이 되면 어주(御廚)의 음식을 실컷 먹겠다."고 했다. 】 다시 아뢰기를,

"소신은 장차 직임을 맡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오늘 이렇게 천안을 뵈었으니 죽은들 무슨 한이 있겠습니까. 소회를 모두 아뢰고 싶으나 숨이 가빠서 힘이 듭니다. 감히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근래 조정에서는 다만 회계 보고에 대해서만 힘쓰고, 백성을 보전하는 일은 버려두고 잊어버렸습니다. 수령에 대한 상벌도 실무 능력만 보고 백성을 보전하는 일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상께서 마땅히 유념해야 할 일입니다. 진실로 백성을 보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일 하나 호령 하나가 모두 그 백성을 보전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면, 이 백성들이 실제적인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는 높은 자리에 계시니, 바치는 모든 것이 가난한 백성을 닥달해서 거둔 것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근래의 허다한 대례 비용이 털끝 하나라도 백성의 고혈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 실정을 알아서 항상 이를 마음에 새긴다면, 백성을 보전할 마음이 저절로 일어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은택이 아래 백성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하여, 백성들은 살길이 막연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용사(龍蛇) 같은 백성들은 금방 이반하게 될 것입니다. 신하된 자와는 전연 형편이 다릅니다.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서경》에 ‘백성들의 어려움을 돌아보고 두려워한다.’고 한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조종조에서 마련한 제도가 지극하지 않은 것이 아니나, 난리를 겪은 뒤로 법도가 무너지고 폐단이 발생하여 유지할 길이 없습니다. 이른바 수성(守成)이 창업보다 어렵다는 말은 바로 지금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상께서는 항상 옛 제도를 고치는 것을 어려워하는데, 옛것은 의당 지킬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만약 폐단이 발생해도 고치지 않는다면 벽창호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마땅히 문제가 생기면 그에 따라 맞추어 개혁하고 사람을 가려서 맡긴 뒤에야 드디어 폐단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주 신하들을 접해서 일의 가부를 물어서 시행하는 일입니다.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아껴쓰지 않으면 재물이 손상되고, 재물을 손상하면 백성들을 해치게 됩니다. 백성을 해치고서야 어떻게 백성을 보전하겠습니까. 요즘 황신(黃愼)이 심력을 바쳐 하고 있으나 역시 감내하기 어려울 것 같고, 아무런 다른 방도가 없으니, 어찌 염려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일찍이 듣기로는, 전조(前朝)에서 용도가 하도 번거로워서 호조에만 몽땅 책임을 지웠는데, 호조의 관원이 도망가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지금 호조는 텅텅 비었고, 각 관청이 모두 바닥이 났는데, 위에서 검약하지 않는다면 부득불 해사에서 백성들을 들볶을 수 밖에 없으니, 어떻게 백성들이 고달프지 않겠습니까. 한나라 문제(文帝) 시절 곡식이 창고에서 썩어날 때도 정작 검약했는데, 요즈음은 겉치레가 지나치게 사치해서 지난번에도 역시 낭비를 줄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아마도 낭비를 줄이지 않으면 호조는 결단코 그 용도를 이어대지 못할 것입니다. 반드시 충분히 줄인 뒤에야 황신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전조처럼 도망하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황신인들 장차 어찌 하겠습니까.

소신의 기력이 장차 공무를 수행할 수 없는 형편임은 앞에서도 대략 말씀드렸습니다만, 지금 이 수상이란 직책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마음에 걸리어 병이 새로 더쳤는데도, 상께서는 집에 누워서 치도를 의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하를 채근함은 그 능력을 따라서 하는 것인데, 신이 무엇을 했다고 이처럼 전후해서 발탁하여 써주시니, 신도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감격하여 분발하고 싶은 생각이 없겠습니까만, 형편이 도저히 직책을 감당할 수 없어서 곧 사장을 올리려 했으나, 이렇게 지연된 것은 진실로 한번 천안을 뵙고자 하여 경연이 열리기만 기다렸던 때문입니다. 이제 이렇게 모시었으니 물러가서 죽은들 무슨 한이 있겠습니까. 보잘것 없는 소신이 이렇게 노쇠했는데 상께서 어찌 사사로운 정으로 일신을 영광스럽게 하려고 이러겠습니까. 반드시 선조의 구신이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옛사람이 ‘보통의 자질을 가진 자는 은우(恩遇)함을 위해서 충성을 바친다.’고 했는데, 바로 신의 지금의 경우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 소회가 많기에 말씀드리는 것인데, 만약 채택해 주신다면 고향에 돌아가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못하다면 신이 직위에 있다고 해서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직임을 담당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속히 신의 직임을 체차하시고, 진달한 여러 말씀들을 허물하지 마소서."

했는데, 왕이 이르기를,

"오늘 경을 보니, 《주역》에 말한 ‘대인(大人)을 보아서 이롭다.’고 한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경이 비록 병이 들었지만 아직 그렇게 노쇠한 나이는 아니니, 더이상 사퇴하지 말고 힘써 나랏일을 보필하라."

하니 원익이 아뢰기를,

"이렇게 말씀하시니 역시 형식적인 말씀입니다. 만약 진정으로 말한다면, 마땅히 ‘직임을 갈고 말은 채택하겠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부득이 여러 번 사장을 올리게 된다면 어찌 미안하지 않겠습니까. 신이 바라는 것은 전하께서 실제에 힘쓰는 것일 뿐 특별히 소신을 대우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을 실제에 힘쓰면 다스리는 도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 꼭 윤허를 받고 싶습니다."

하면서, 한편 조아리고 한편 말씀드리며 더욱 더 간절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나의 뜻은 이미 하유하였으니 굳이 사양하지 말라."

하니 원익이 말하기를,

"늙어 병든 옛신하를 갈아서 내보내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의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윤허하지 않으니 결국 구색만 갖추게 됨을 면할 수 없습니다. 물러가 사장을 올리겠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일은 반드시 계획을 잘 세워야 하는 것이다. 호패(號牌) 문제 한 가지만 해도, 당초에 다른 대신들에게 물었을 때는 외방의 폐단이 많을 것이란 말을 안 했었다. 그런데 지난 겨울 간원에서, 민생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강력하게 진달하기에 다시 대신들에게 의논했으나, 대신들은 모두 시행해야 한다고 하므로, 지금 시행하려는 것이다. 이 뒤에 과연 백성들을 소란스럽게 하는 일이 없겠는가. 경의 생각은 어떤가?"

하니 원익이 말하기를,

"언관이 한 말은 소요를 염려한 말로써 보는 바가 없지는 않겠지만, 대저 조정 대신과 비변사가 함께 의논해서 모두 타당하다고 하여 이미 청국(廳局)까지 설치하고 각패(刻牌)까지 하려는 마당에, 일개 언관의 말 때문에 갑자기 중지한다면, 이 뒤에는 아무리 호령해도 백성들이 결코 믿지 않을 것입니다. 실로 관건에 관계되는 일로써 매우 중대합니다. 절목을 잘 만들어서 시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사대부가 먼저 차고 다니기 시작하고, 서울에서 지방까지 원근에 따라 차례로 기한을 정해서 차게 하되, 만약 폐단이 생기면 그에 따라 변통하여 시행한다면 잘 될 것 같습니다."

하였다. 정세미(鄭世美)가 아뢰기를,

"〈전부터〉 시강원의 관원을 택차(擇差)하는 일에 대해 여러 번 전교하였으니, 동궁을 보양(輔養)하여 성취하려는 도리가 지극합니다. 그러나 전조(銓曹)는 이를 봉행하려는 뜻이 없이 의례적인 충원만 하고 있고, 심지어 교서관의 권지를 주의(注擬)하기까지 합니다. 지금부터는 엄선하여 의망(擬望)하게 하소서."

하고, 권흔(權昕)은 아뢰기를,

"기축년076) 역옥 사건 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공론이 정해진 지 오래이고, 성상께서도 이미 환히 알고 계신 일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신원하는 일에 대해서, 지난해에 언관의 계사에 따라 대신들이 수의해서 입계하였으나, 아직까지 처분이 없어서 사람들의 마음이 답답합니다. 속히 밝은 처결을 내리시어 한결같은 안팎 사람들의 뭇마음에 보답하소서."

하였다. 〈오정에 파하고 나왔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65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정론(政論)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법제(法制) / 사법-행형(行刑)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註 075]
    추수(推數) : 앞으로 닥쳐올 일들을 미리 헤아리는 일. 점술, 도참 같은 것.
  • [註 076]
    기축년 : 1589 선조 22년.

辰初, 御經筵。 侍讀官睦大欽進講《尙書》 《多方》。上曰: "此言以多方簡, 代作民主。 民之擇君如此。 雖不辟, 民何以叛之至此乎?" 大欽曰: "不善, 故民叛之; 善, 故民從之。 人心向背, 大可畏也。" 領事李元翼曰: "以天下之心言之, 則誠如筵官所啓; 以君臣之義言之, 則聖人亦有微意。 故於文王, 則稱以至德; 於, 則稱以慙德。 叩馬之諫, 亦萬古之綱常也。 大抵爲臣者, 實與爲民者不同。 民者各爲生理, 故上失其道, 則自相叛亂。 民心離合之間, 天命之去就決矣。 爲臣者, 雖事 之臣, 不死於其君, 則不免爲失節之臣。 實是之罪人也。 二者不可偏廢也。" 同知事李廷龜曰: "之賢聖之君代作, 世傳家法, 固結人心。 故民不忘遺德, 不卽服, 此《多方》之所以作也。 方之虐, 民在膏火, 有‘曷喪之’, 旣定之後, 則雖以之德, 不能遽化, 帝王明德之效, 於此大可見矣。" 檢討官權昕曰: "以三代觀之, 則刑罰得中, 故天下服矣。 末世則刑罰失中, 有罪者, 或由斜徑而倖免, 此雖似爲仁然, 仁者非煦煦之謂也。 公而愛人者, 仁之實也。 刑政不可不愼也。" 王曰: "近來刑政解弛, 王法不行, 極可寒心。 何以如此乎?" 李元翼曰: "以小臣觀於今日, 可謂賞罰之政, 皆亡矣。 雖不得歷指某事, 而自上不爲提挈綱維, 故如此也。 大槪賞罰明, 然後紀綱擧焉。 自上宜絶去私意, 至如刑獄之事, 唯付按獄之官, 罪得其實, 則雖在私昵貴近, 亦無所撓貸, 爲下者, 疇敢不奉承上意乎? 臣往往以收議事觀之, 上意苟欲宥之者, 則雖發遣御史, 審知其情之事, 獄官議啓之時, 曲爲回護之辭, 如臣者, 亦不能明知其罪狀, 泛然附名於他人獻議之下。 議得亦甚難矣。 自上宜以爲: ‘賞罰由我而不明, 惕然動念, 思所以改之’, 則幸甚矣。 若自上旣不以此爲心, 則在下者, 亦各以私爲心矣, 賞罰何由而公乎? 且爵賞者, 所以駕馭人材也。 一失其用, 無以爲國。 人君愛惜愼重, 簡賢授能, 必待有功者而賞賜之、寵秩之, 勿以疎遠而或吝, 勿以私昵而或濫, 則人皆勸勉矣。 賞罰旣明, 則紀綱自振, 內而百官, 外而四方, 無不從令矣。 大槪雖使爲君, 非賞罰, 則無所措手足矣。 下之人, 必專攻上身, 亦似一偏然, 萬事之條理本末, 無一不在於上身, 若不歸之於上身, 則下之所爲, 徒虛事耳。 自上宜念其必歸上身之意焉。 以愼罰言之, 則非但開釋爲愼罰, 死罪則誅之者, 亦所以愼罰也。 罰當其罪, 則一人辟宥, 千萬勸懲, 刑政自擧矣。 刑政旣擧, 則百事可做, 他何憂哉?" 李廷龜曰: "人不畏法, 誠如上敎。 朝廷纔立法令, 旋爲壞了。 以小事言之, 捧承傳之事, 卽日犯之, 無意奉行, 此無他, 賞罰不擧之故也。 人君徒以賞罰馭下, 馭下之道, 此外無他。 而近來賞僭罰弛, 無功者得賞, 有罪者無罰, 故人不畏法矣。" 李元翼曰: "人主每以人心不善爲言。 以在下者言之, 監司、守令亦必曰: ‘此地人心不善。’ 此蓋爲上之常談也。 人心誠不如古矣。 然傳曰: ‘斯民也, 三代之所以直道而行者也。’ 苟能明其賞罰, 則風行草偃, 人心自服, 要在擧要領而已。 自上所當察而行之者也。" 上曰: "刑政解弛則然矣。 雖罪之, 亦不畏法, 皆予不逮所致, 予多愧焉。 賞則近來典禮頻繁照例之事, 不得不爾矣。" 李元翼曰: "經徑大禮, 則自上賞之者亦宜矣。 然此皆臣子職分內事也, 而遽以官爵賞之, 用之如水, 故官爵輕矣。 況不問某也能幹某事, 某也不能幹某事, 而以之賞罰, 徒以日月久近, 輕重其賞。 故隨衆進退, 漫不知何事者, 而差定之日字多, 則輒與賞職之類。 或有不能者, 臺官置之不糾, 而以至典禮之終, 則亦混參於賞職之中。 雖不卽爲除職, 旣奉承傳, 則實是賞職也。 承傳置簿, 積成卷軸, 銓曹雖欲一一奉行, 開卷汗漫, 無處下手, 其勢然也。 苟有宰相請囑, 則不得不行, 而承傳則反置之。 豈以請囑重於承傳乎? 特以承傳多, 故難於取捨, 而至於如此。 事體不亦未安乎? 濫賞如是, 故人無所勸, 雖令不行矣, 下之人, 亦固有行私者矣。 然豈自以爲未出於正, 而不諫君上乎? 此所以盡善之道, 望於上身也。 若自上或有私累, 則朝廷更將做得甚事? 自上必無私累, 然後下皆觀感, 自不爲私。 雖如臣無狀者, 亦何敢有私乎? 如此則朝廷自正, 治體自立矣。 小官之言上闕失者, 自上或疑其沽直, 或疑其布揚君過, 或以爲渠亦不出於正也乎? 必須絶去是念, 平心察納, 則人之邪正, 亦可因此而知矣。 佞人則必以君心好惡, 逢迎焉; 善人則必以事理是非, 抗爭焉。 旣逢迎也, 寧不遜于志; 旣抗爭也, 寧不逆于心乎? 就其遜志者而察焉, 就其逆心者而求之, 則人之邪正難逃矣。 《書》 曰: ‘知人則哲。 惟帝其難。’ 人固難知矣。 然卽此觀之, 則蓋亦思過半矣。 古人曰: ‘君仁則臣直。’ 必有納諫之君, 然後爲臣者, 得以盡言。 蓋自恃其君必有以容之也。 以歷代觀之, 納諫之時, 則言者常多, 罪言之世, 則諫者必無, 勢所然也。 君若不仁, 其誰肯諫而死哉? 諫而死者, 龍逢比干之外, 無人焉耳。 臣下若言闕失, 欣然聽之, 然改之, 則尤有光於初未嘗有過之時矣。 蓋初自無過, 則人以爲尋常, 及其聞過而能改, 則人心聳動悅服, 皆欲來諫矣。 豈不尤有光於無過之時乎? 且凡於爲善, 上之人豈能獨爲哉? 下無助則不能矣。 好自用, 則無效矣。 下之所言, 如有可補治道者, 必加嘉獎, 使之皷動, 則衆善必集矣。 夫取人爲善, 其善無窮者, 亦然。 誰肯以此爲上不足而下有餘哉? 用人者, 君德之次也。 若失於用人, 則不善者滿朝矣。 有何可爲之事乎? 自殿下卽祚以後, 久廢經筵, 群臣賢否, 何由知乎? 不知其賢否而但以私好惡而用之, 則殿下之用, 不其謬乎? 大槪人君之於用人, 必聽其言、察其心, 先定涇渭, 然後用之。 則其見用者, 勉勵而思奮; 其不見用者, 恐懼而省過。 故智者、愚者, 皆效其力。 而殿下則旣無相接而知其賢否之時, 不知何所據而用舍乎? 但昔在潛邸之日, 或有宮僚相接之時, 而所論不是治道, 只是臨文講說而已, 則亦豈能盡知其爲人乎? 祖宗朝則頻接臣僚, 大內之中, 亦或引入, 奏事之際, 無間出入, 故人之賢否, 克知灼見。 而今時則接臣下, 但在經筵, 而經筵亦曠, 人之賢否, 無以知之。 若以好惡爲之取舍, 則用人安得以公乎? 自上不可不頻爲引接。 苟欲引接, 如此寒節, 何必朝講? 不時召對, 無所不可矣。 且殿下自在潛邸, 聖學高明, 何事虛文? 只可臨文講論治道, 且使之各所懷, 則正是切實美事。 若此數遍音釋, 豈足以補益高明乎?" 因泣下, 嗚咽不能語曰: "古人云: ‘欲法, 當法神祖。’ 小臣自, 蒙先王恩寵, 侍在經幄觀之, 則卽位初年, 勤御經筵, 一日再三, 無日不爲。 此豈非殿下之所聞知者乎? 晩年違豫, 故未免作輟, 當其勤御之時也, 儒臣豈敢暫曠, 亦豈敢一刻怠棄乎? 自先朝罕御經筵之後, 始有闕直之弊, 而臣每一聞來, 不覺瞿然也。 其在先朝末年, 則不寧而廢經筵, 今者臣亦知聖候之素弱矣。 然豈如先王違豫之日乎? 經筵不可不爲之勤御也。 彼入直之官, 雖年少後進之人, 豈不聞知故事乎? 自上不御經筵, 故以爲閑漫之地而如是爲之, 只欲以罷職推考而祛其弊, 則必不可得矣。 若勤御經筵, 而猶踵前習, 不但罷職推考而已, 雖重治亦可也。 先朝非但經筵, 其於公事, 裁決亦勤, 雖夜深之時, 不廢出納。 宰相之家, 豈如此乎? 就宿之後, 卽則郞廳雖持公事到門, 不得言之者多矣, 而先王則如是焉。 時急之事, 固其然矣, 雖不緊之事, 亦旋入而旋下。 今則公事未免遲滯, 此雖自上氣弱而然, 憂勤之道, 不可不思也。 積而又積, 則剖決之際, 亦難詳矣。" 【王卽位以來, 講筵久廢, 庶事裁決亦怠。 雖臺諫啓辭, 每致移日乃下。 而或至犯夜, 王常居寢內, 故雖宦寺輩, 亦不得進覿。 王嘗問宦寺李鳳禎曰: "汝何以能肥大如此?" 鳳禎對曰: "小臣在昔先朝時, 則先王長御公事廳, 勤決庶務, 故小臣常侍左右, 晝(則)不遑食, 夜(亦)不安眠。 今則殿下無出御公事廳之時, 故小臣終日偃息, 夜亦安臥身, 無勞苦之事, 豈得不肥大乎?" 蓋以諷喩也。】 曰: "闕直事不但玉堂, 講院亦然。 雖是不開筵之致, 槪是紀綱頹廢之故也。" 元翼曰: "自上若勤御經筵, 重治闕直, 則紀綱亦自立矣。" 曰: "公事遲滯事, 予固知之。 其勢不得不然。 祖宗朝則但入緊關之事, 今則微細事皆入之。 以先朝而觀之, 如天使時, 則事務固多矣, 常時則豈如今日之多乎? 若緊急之事, 則今亦雖夜入之, 而先急後緩, 故不緊之事, 自至遲滯矣。 且速爲裁決非難, 而古人亦有‘乘快誤決’之戒, 欲詳愼, 故如此矣。 啓辭當體念焉。" 元翼曰: "祖宗朝事, 小臣亦豈不聞乎? 今則該司一郞官, 猶不爲之事, 必煩天聽, 公事安得不煩乎? 祖宗朝則承旨頻令入對, 問其可否, 雖相臣亦令入對議事, 故上下之情相通矣。 今者承旨如客而坐於外, 但爲出納文書而已, 則事務之多, 固其所也。 若上下之情相通, 則自上但當摠大綱, 而國家自治矣。 以治體言之, 人君固當不親細事也。 今則微細事亦入之敎, 至爲允當矣。 殿下若欲省事, 則此在殿下處置之中, 非在下者之所可爲也。 且卽位之初, 人皆欲言, 至於韋布, 亦能言之。 其所稱說, 豈盡可用, 豈盡無所補哉? 近日以來, 則朝廷之間, 未有以闕失聞者, 殿下以爲太平無事乎? 臣意以爲: ‘所以無言者非他, 特以向者言事之臣, 相繼被斥, 故有所摧沮而然也。’ 當時言事者, 豈所以沽直也, 豈所以布揚君過也? 殿下若爲聽納, 則皆是利國家之言, 而或廢棄之、斥逐之, 以訑訑之色, 厭聞之下, 其誰肯盡言? 況人君有雷霆之威, 雖和顔色而使之盡言, 猶且恐懼而不敢自盡矣。 自古人君, 亦或有震怒之時, 而風霆無竟日之怒, 故用於諫官者, 則用於諫官, 置之經幄者, 則置之經幄, 所以人心悅服矣。 今之被譴者不一, 其人若還收用, 使人聳動, 則敢諫之士, 蔚然輩出矣。 唯在殿下引導而已。 以私情之弊言之, 天下治亂、國家存亡, 只在公私, 而今者內而朝廷, 外而州郡, 公道滅而私意起。 私意旣起, 則無以維持, 而亂亡隨之矣。 殿下若能公以存心, 取舍人物, 剖決刑獄, 施爲事務之際, 無一不出於公, 則庶可以革弊矣。 蓋君心者, 萬化之源。 專攻雖似一偏然, 不如是則無策矣。 必須澄澈本源, 公明應接可也。 臣之所以勸御經筵者, 人君每與儒臣、士大夫講論治道, 則本源自爾澄澈, 應接自爾公明, 而君德成就矣。 不然而常居大內, 每與宮人同處, 則宮人之言, 豈是治道? 所言皆上悅聞, 所事皆上欲爲, 上雖高明, 安得不爲其所撓奪乎? 見《高麗史》, 太祖, 以雜術開國, 豈如我朝之以禮爲國哉? 然其言曰: ‘人君欲得臣民之心, 在於從諫、遠讒而已。’ 此是五百年精神氣脈也。 夫諫者, 以時政得失而爲言, 故皆出於事理之當然。 苟能聽之, 則群情悅服, 治效自著。 若讒言者, 自斜徑暗昧而入, 不過爲己之私言也。 或至信用, 則群情大失, 無復可爲矣。 從諫、遠讒, 可謂至言。 以殿下常居大內故啓之, 且臣所聞之言, 不敢不盡。 似聞宮禁之間, 多有左道之事。 蓍龜、卜筮, 古人亦固用之。 今之所謂左道者, 豈與古之所謂蓍龜、卜筮者彷彿哉? 必痛絶之可也。 若拘於此, 則事理不明, 終至於害治道矣。" 【時, 上頗惑左道, 故命科學鄭思倫、還俗僧李應斗等, 皆以推數進, 待敎禁門, 寵賚優厚。 凡有擧措, 一聽其吉凶拘忌之說, 法宮之不卽移御, 亦用此輩之言也。 至於事神要福之事, 靡所不爲。 是時, 將有移御之擧動, 而日行淫祠於新闕, 缶皷聲聞于外, 都民相與語曰: "死而爲鬼神, 可飽御廚膳"云。】 又啓曰: "小臣將不能供職, 而今日得瞻天顔, 死亦何恨? 欲盡達所懷, 而氣急不能。 敢更進一言。 近來朝廷, 但以簿書期會爲務, 而保民之政, 置之相忘。 守令賞罰, 亦出於幹事, 而不出於保民。 此自上所當留念者。 苟以保民爲心, 一事一令, 皆出保民之心, 則斯民可蒙實惠矣。 但自上居崇高之位, 安知凡百供奉, 皆責於白屋村民? 近來許多大禮之費, 秋毫莫非生民膏血。 若知其然, 念念在玆, 則保民之心, 油然生矣。 苟或不然, 澤不下究, 民無生理, 則龍蛇赤子, 離合須臾, 實與爲臣者不同。 豈不可畏乎? 《書》曰: ‘顧畏于民巖。’ 此之謂也。 祖宗朝立經陳紀, 非不至矣, 而經亂以後, 法壞弊生, 無以維持。 所謂守成難於創業者, 正謂今時矣。 自上每以變亂舊章爲難, 舊章固可遵守也, 若弊生而不爲更張, 則何異於膠柱乎? 必也隨弊更張, 擇人授之, 然後方可無弊矣。 雖然其要, 則莫如頻接臣僚, 問其便否而行之也。 又有一道。 不節用則傷財, 傷財則害民, 害民則惡在保民乎? 近來黃愼竭心力爲之, 而亦將不能支, 吾無復有可繼之道, 豈非可慮者乎? 嘗聞前朝用度極煩, 而專責於戶部, 戶部之官, 至有歸逋者。 今者地部空竭, 各司皆罄, 自上若不儉約, 則該司不得不責出於民, 民安得不困哉? 以 紅腐之時, 猶且儉約, 而近日則文具過侈, 故頃日亦以省浮費獻議。 蓋浮費不省, 則繼用之道, 決非戶曹之所能也。 必須十分減省, 然後可責於黃愼。 若如前朝逃走之時, 則雖黃愼, 亦將如之何哉? 小臣氣力, 將不得行公之狀, 前已略陳之矣。 今此首相之職, 萬無堪任。 以此關念, 沈痾轉苦, 而自上以臥閤論道爲敎。 責臣下, 當以其所能, 臣敢論何道, 前後擢用, 至於此極, 臣非木石, 寧不感激思奮乎? 勢不得供, 卽欲爲呈辭, 而如是遲延者, 誠欲一覿天顔, 只俟經筵。 今旣入侍, 退死何恨? 無狀小臣, 衰朽至此, 自上有何私愛而只榮其身乎? 必以爲先朝舊臣, 有所期待而然也。 古人曰: ‘中人之資, 爲恩遇效忠。’ 正謂臣之今日也。 故以 有所懷, 仰達天聽, 若賜採擇, 歸死松楸, 亦無恨矣。 如不然, 則臣在職何補? 萬無供仕之理。 唯願速遞臣職, 凡所陳達, 勿以爲咎。" 王曰: "今日見卿, 可謂‘利見大人。’ 卿固病矣, 年紀不至衰耗, 勿爲更辭, 勉輔國事。" 元翼曰: "以此爲敎, 亦以爲文具也。 若以誠實, 卽當下敎曰‘職則遞之, 言則擇之’可也。 若不得已而呈辭, 至於累度, 則豈不未安乎? 臣所遠務實者, 此之設也 願者, 願殿下務實而已, 不特待小臣也。 凡事皆務實, 則治道成矣。 願於今日蒙允。" 且拜且言, 愈懇不已。 王曰: "予意已諭, 勿爲固辭。" 元翼曰: "遞去老病舊臣, 亦是治國之一體, 而不爲允許, 勢將不免文具。 退爲呈辭矣。" 王曰: "作事必謀始。 號牌一事, 當初問于他大臣, 而亦未嘗言及外方之多弊矣。 前冬諫院力陳民生怨苦之狀, 更議于大臣, 則大臣皆以爲可行, 故今將行之矣。 此後果無擾民之事乎? 於卿意何如?" 元翼曰: "言官所言, 亦慮擾, 不無所見, 第朝廷大臣與備邊司僉議停當, 已設廳局, 方爲刻牌, 而以一言官所啓, 遽爾停罷, 則此後雖有號令, 民必不信。 機關所係, 實爲重大。 善爲節目, 則行之固當。 臣意士大夫先爲佩持, 中外遠近, 次次定限佩持, 而如有弊端, 隨而變通, 似合事宜矣。" 鄭世美曰: "(自前)春坊僚屬擇差, 累爲傳敎, 爲東宮輔養成就之道至矣盡矣。 而銓曹無意奉行, 未免苟充, 至以校書權知注擬。 請自今極擇擬望。" 權昕曰: "己丑逆獄冤死之人, 公論之定久矣。 聖鑑亦已洞燭。 而伸理一事, 上年因言官啓辭, 大臣處收議入啓, 而尙無發落, 人心鬱抑。 唯望亟下明旨, 以答中外同然之衆心(也。" 午正罷)出。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65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정론(政論)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법제(法制) / 사법-행형(行刑)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