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중초본]44권, 광해 3년 8월 4일 신미 3번째기사
1611년 명 만력(萬曆) 39년
요광 도어사 양호가 전에 조선을 경략할 때 세운 유애비의 송시문을 청하다
요광 도어사(遼廣都御史) 양호(楊鎬)가, 전에 그가 조선을 경략(經略)하였을 때 세운 유애비(遺愛碑)의 송시문(頌詩文)을 요구하니 왕이 예조에 명하여 별도의 송덕비(頌德碑)를 모래재[沙峴] 너머에 세우고 몇 본을 인쇄하게 하였다. 또 여러 신하에게 명하여 널리 찬송시(贊頌詩)를 지어 대제학으로 하여금 감정하게 하여 5, 6권을 인출하였고, 또 본국의 3차 변무 주문(辨誣奏文)으로 그 책머리에 서문(序文)을 넣어 보냈다. 양호가 또 소판본(小版本) 수백 권을 요구하였는데, 모두 허락해 주었다. 양호가 정응태(丁應泰)의 무고(誣告)로써 오랫동안 벼슬에서 쫓겨나 있다가 다시 기용되었으므로, 이것으로서 전의 일을 속시원히 설원하고자 한 것이었다. 식자들은 그가 비루하고 경솔한 사람이라고 의심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96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645면
- 【분류】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