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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35권, 광해 2년 11월 16일 정사 3번째기사 1610년 명 만력(萬曆) 38년

사헌부에서 허균이 사정을 쓴 자취가 뚜렷함을 들어 사판에서 삭제 할 것을 청하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전 목사(牧使) 허균(許筠)은 본디 경망스럽고 아첨을 잘하는 사람인데 조그마한 재주가 있는 것을 무기로 삼아 일생동안 해 온 일이라곤 그저 은밀히 자기 사욕을 채우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예전에 경외(京外)의 대소 과거에 시관(試官)이 되었을 때에도 대부분 사정(私情)을 따라 행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천시를 받아 온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殿試) 때에 대독관(對讀官)이 되어서는 더욱 거리낌없이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노력하였는데, 거자(擧子)의 답안지를 거둘 때에는 일부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자리를 잡고 거두는 시험지를 하나하나 가만히 살폈으며, 또 차비관(差備官)이 있는 근처에서 숙박하면서 자표(字標)를 탐지해 누구누구가 지은 것인지를 모두 알아내고는 시험 답안지 5백여 장을 모두 자신이 읽어 보겠다고 청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과거 시험 성적을 매길 때 자기 멋대로 손을 써서 어떤 것은 잘되고 어떤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심사할 때마다 앞장 서서 의견을 제시하였으며, 자기가 뽑고 싶은 사람의 답안지가 불합격 대상에 이미 포함되어 있을 경우라도 멋대로 직접 뽑아내어 합격자 명단에 올렸으므로 동참했던 시관들이 둘러 앉아 서로 돌아보면서 모두 가증스럽게 여겼습니다. 그가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면서 사정을 쓴 자취가 뚜렷하여 숨길 수가 없는데 이에 대해 나라 안에 말들이 자자하고 물정(物情)이 날이 갈수록 더욱 분개하고 있으니, 사판(仕版)에서 삭제해 버리도록 명하소서.

행 호군(行護軍) 신종술(辛宗述)종준(宗遵) 【폐희(嬖姬) 신씨(辛氏)의 오빠인데, 【신씨는 바로 인빈 김씨(仁嬪金氏)의 표질녀(表姪女)이다.】 〈이에 앞서 김귀인(金貴人)이 후궁(後宮) 중에서 가장 많은 총애를 선왕에게 받았는데, 하루아침에 선왕의 건강이 악화되자 귀인이 뒷날 자신의 몸을 보전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하여 화를 면할 계책을 꾸미려 하였다. 이 때 신씨가〉 미색(美色)이 있는 데다 총명하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궁중으로 끌어들인 다음 동궁에 소속되게 하였는데,〉 상당히 문자를 이해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마침내 총애를 독점하였는데 왕이 날마다 함께 돈내기 바둑을 두면서 정사를 팽개치고 보지 않은 탓으로 안에 계류된 공사가 무려 수백 건에 이르렀다. 그런데 종술이 이 총희 덕분에 역시 총애를 흠뻑 받아 당상의 지위에까지 오른 것이었다. 】 미천하고 패려(悖戾)한 사람으로서 첨사(僉使)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니, 그것만도 이미 외람되다고 할 것입니다. 그가 재직하고 있을 당시에 불성실하게 행동한 자취가 많이 드러났는데, 아무리 궁전(弓箭)을 잘 마련한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당시에 또한 물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중하게 가자(加資)하여 당상의 직위에까지 올렸으므로 물정이 모두 분개하고 있으니 개정하도록 명하소서.

형조 정랑 백대형(白大珩)은 사람됨이 무뢰배와 같고 행실이 패려하기만 한데, 본직에 제수되고 나서는 더욱 거리낌없이 방자하게 굴면서 형옥(刑獄)에 있어 구속하고 석방하는 일을 사정(私情)을 써서 임의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신(宰臣)들이 연회를 벌이는 장소에서 공공연히 창기(娼妓)를 따라갔으므로 그 음란하고 방종한 정상을 듣고서 경악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파직을 명하소서."

하니 【이때 재신들이 청평 부원군(淸平府院君) 한응인(韓應寅)의 집에 모여 연회를 베풀면서 기악(妓樂)을 많이 불렀는데 백대형이 친하게 지내는 창기도 그 가운데에 끼어 있었다. 이에 백대형이 저녁을 이용해 말을 달려 와서 그 집 방앗간에 숨어 있으면서 그 기녀가 나오는 것을 엿보고 있다가 손을 잡고는 함께 말을 타고 달아났기 때문에 이렇게 아뢴 것이었다. 】 답하기를,

"말세(末世)에 들어 와 공도(公道)가 있다면 오직 과거(科擧)에 남아 있다고 할 것이다. 국가에서 정해놓은 법이 지극히 엄하고 중한데 허균이 사정을 쓴 것이 이처럼 뚜렷이 드러났고 보면 그가 뽑은 거자(擧子)라고 해서 어찌 서로 내막을 통하지 않았을 리가 있겠는가. 인심과 세도(世道)가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법부(法府)는 엄히 조사해 처치함으로써 이런 폐단을 통렬히 개혁토록 하라. 신종술은 관례를 적용해서 논상한 것인데 어찌 꼭 개정해야 하겠는가. 백대형 등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578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司憲府啓曰: "前牧使許筠, 本以輕妄便佞之人, 挾其小技, 一生行事, 只是陰濟己私而已。 前爲京外大小試官時, 亦多循私用情, 爲人所賤久矣。 今此殿試時, 爲對讀官, 益無忌憚, 務售其欲, 擧子收券之時, 故坐不遠之地, 所收券子, 一一默察, 又止宿于差備官所在近處, 探問字標, 某某所製, 無不與知, 試券五百餘 , 皆請自讀。 科次之時, 任意下手, 某得某失, 隨考隨唱, 其所欲取者, 雖在落幅, 擅自抽出而陞之, 同參試官, 環坐相顧, 莫不痛惡。 其專擅行私之迹, 昭不可掩, 國言藉藉, 物情久而愈憤。 請命削去仕版。 行護軍辛宗述 宗遵 【嬖姬, 辛氏之兄 辛氏仁嬪金氏表姪女也。 (先是, 金貴人受寵先王, 冠於後宮, 一朝先王違豫, 貴人恐將不保於後日, 欲爲免禍之計。 聞辛氏)有色且慧, (引入宮中, 納于東殿,) 頗曉文字(至是)遂專寵, 日與賭碁, 廢事不視, 留中公事, 多至累百度。 宗述以姬之故, 亦被優渥, 至陞堂上。】以微賤悖戾之人, 至陞僉使, 亦已濫矣。 當其莅任之時, 多有不謹之, 雖有弓箭措備之事, 其時亦有物議。 今者至授堂上重加, 物情皆憤, 請命改正。 刑曹正郞白大珩爲人無賴, 行己悖戾, 及授本職, 益肆無忌, 刑獄囚放, 任意行私。 且諸宰宴會處, 公然逐娼, 其淫縱之狀, 聞者莫不駭愕。 請命罷職。" 【時, 諸宰會于淸平府院君 韓應寅第設宴, 多聚絃歌, 大珩所私娼, 亦與其中。 大珩乘夕馳到, 隱於其第杵臼間, 窺其出來, 携手竝馬而走, 故有是啓。】答曰: "末世公道, 唯在科擧。 國家設法, 至嚴至重, 許筠行私, 如是其顯著, 則其所取擧子, 豈有不相知情之理乎? 人心世道, 一至於此, 極可寒心。 法府嚴處置, 痛革此弊。 辛宗述照例論賞, 何必改正? 白大珩等事依啓。"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578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