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 감사 윤휘가 민정에 있어서의 호패의 폐단을 논하여 올리다
전라 감사 윤휘(尹暉)가 치계(馳啓)하기를,
"호패(號牌)에 관한 한 가지 일이야말로 지금 입장에서 그만둘 수 없는 일이기에 일체 인행(印行)되어 온 사목(事目)에 의거하여 각 고을에 신칙하고 명심해서 거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무학(武學)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자도 더러 나오고, 모군(某軍)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도 더러 나오고 있으며, 이밖에 자진해서 출두하는 여정(餘丁)도 적지 않으니, 이것은 진정 목전에 벌어지는 통쾌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신이 각 고을을 돌아다니면서 가만히 민정(民情)을 살펴 보건대, 세상이 야박해지고 풍속이 잘못되어 사람들이 옛날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품고 있는데, 일단 이 일이 시행된다는 말을 들은 뒤로 사서(士庶)는 보존될 수 없을 것처럼 여겨 허둥대고, 아무것도 모르는 소민(小民) 중에는 간혹 산속으로 도피하면서 차라리 죽을지언정 호패를 차지는 않겠다는 사람도 나오고 있으니, 인심이 이렇게 되고서야 어떤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승려의 경우는 모두가 뜬구름처럼 정처없이 떠돌며 군역(軍役)을 피하고 있기 때문에 명부를 근거로 추적하여 단속하면서 각자 호패를 차게 하였는데, 그 결과 이 무리들이 제일 먼저 원망하는 마음을 품게 되어 정태(情態)가 이상해지고 있으니 뒷날 반드시 걱정이 없으리라고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조정이 정신을 집중하여 강력히 시행하고 있는 일인만큼 번신(藩臣)이 된 자의 사체로 보면 오직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이 잠자코 봉행해야 마땅하겠습니다만, 현재의 형세가 어떻다는 것을 직접 보았기에 망령되이 진달드리는 것입니다. 절목을 관대하게 늦추어주고 또 기한을 물려 조용히 장부를 작성하게 해서 후회되는 일이 없게 하는 한편 묘당으로 하여금 무마책을 아울러 강구하게 해서 저절로 안정이 되도록 해 주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 서장(書狀)을 보건대 민심이 지극히 우려된다. 충분히 강구하여 혹 기한을 넉넉하게 늦추어 주거나 평이하게 처치하여 인심을 크게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이 뜻을 비변사에 말하라."
하였다. 【당시 시정(市井)의 부유한 백성들이 둥근 목패(木牌)를 차지 않으려 하여 궁금(宮禁)과 서로 통하면서 갖은 계책으로 폐지시키려 하였다. 그래서 왕도 조정의 논의에 쫓겨 감히 중지시키지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좋지 않게 여겼는데, 윤휘가 바로 이러한 왕의 뜻을 맞추려고 이렇게 서장을 올린 것이었다. 】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577면
- 【분류】호구-호적(戶籍)
○全羅監司尹暉馳啓曰: "號牌一事, 在當今不可已之擧, 一依印來事目, 申飭列邑, 刻意擧行。 或有武學願屬者, 或有某軍願入者, 此外餘丁之自現者, 亦爲不少, 此則固快目前之事也。 臣巡遍列邑, 默察民情, 則世薄俗末, 人懷姑息, 一聞此事, 士庶遑遑, 若不可保者, 無知小民, 間有逃避山中, 寧死不欲佩持, 人心至此, 何事可爲? 至於僧人, 雲浮無定, 皆是逃役之人, 逐名團束, 各令佩持, 此輩先懷怨恨之心, 情態異常, 他日之虞, 難可保其必無。 朝廷銳意力行之事, 藩臣事體, 惟當含默奉行之不暇, 而目見時勢, 妄爲陳達。 若寬緩節目, 且退期限, 從容成籍, 俾無後悔, 令廟堂兼講撫摩之策, 使之自安。" 傳曰: "觀此書狀, 民情極可憂慮。 十分講究, 或徐緩期限, 平易處置, 俾不至大失人心可矣。 此意言于備邊司。" 【時, 市井富民不欲佩圓木牌, 交通宮禁, 百計圖罷。 故王雖迫於朝論, 不敢中止, 意甚不悅, 暉逢迎王意, 有此狀聞。】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577면
- 【분류】호구-호적(戶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