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중초본] 35권, 광해 2년 11월 3일 갑진 1번째기사
1610년 명 만력(萬曆) 38년
문과와 무과의 합격자를 발표하였는데 사정을 쓴 흔적이 보이다
문과와 무과의 합격자를 발표하였다. 【〈선종 대왕(宣宗大王)의 신위(神位)를 태묘(太廟)에 옮겨 모신 뒤에 별시(別試)를 실시하여 신광업(辛光業) 등 19인을 뽑았다.〉 전시(殿試)의 시관(試官)은 좌의정 이항복(李恒福), 이조 판서 이정귀(李廷龜), 형조 판서 박승종(朴承宗), 호군 조탁(曺倬)·허균(許筠)·홍서봉(洪瑞鳳)·이이첨(李爾瞻), 승지 이덕형(李德泂) 등이었다. 그런데 점수를 매겨 뽑을 때에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왕법이 행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공도(公道)가 씻은 듯 없어지고 염치가 길에 떨어져 사람마다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사정(私情)을 따른 결과, 박승종은 자기 아들 자흥(自興)을 뽑고, 조탁은 자기 동생 길(佶)을 뽑고, 허균은 형의 아들 보(寶)와 형의 사위 박홍도(朴弘道)를 뽑고, 이이첨은 사위의 아비 이창후(李昌後)와 이웃 친구 정준(鄭遵)을 뽑았는데, 박자흥이 또한 그의 사위였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아들 사위 동생 조카 사돈의 합격자 명단[子壻弟姪査頓榜]’이라고 하였는데, 사위나 며느리의 어버이를 사돈이라고 한다. 】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575면
- 【분류】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