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체찰사가 함흥 부근에 진의 설치와 조방장을 맡길 인물 등에 대하여 논하다
〈도체찰사가 아뢰기를,
"전일 탑전(榻前)에서 삼가 성상의 분부를 받들건대, 함흥(咸興)과 가까운 고을에 하나의 큰 진(鎭)을 설치하여 형세상 방어선이 연결되도록 했으면 하셨는데, 이 명을 받고 나서 널리 자문을 구하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적당한 계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대체로 철령(鐵嶺) 이남의 제군(諸郡)에는 완전한 고을이 하나도 없어 손을 대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는데, 따라서 명색이야 진을 설치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효과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감히 섣불리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듣건대 의논하는 자들이 많이 말하기를 ‘조정에서 철원(鐵原)의 드넓은 땅에 조방장(助防將)을 두려고 하나 그 지역은 서울 도성과 겨우 수일 정(程)의 거리밖에 안 되니 형세상으로 불편하다. 그리고 철령 안쪽이나 바깥쪽이나 모두 둔병(屯兵)할 만한 곳이 없으니 온당한 계책이 전혀 못 된다.’고 하였는데, 이 주장이 범연하게 나온 것은 아닌 듯하기에 강원도 내에서 얼마나 곡식을 얻을 수 있는지 통틀어 헤아려 보고 대략이나마 두서를 잡은 뒤에 계품(啓稟)해서 복의(覆議)를 거쳐 시행하려 하였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그 진은 회양(淮陽)에 설치해야만 철령 일대를 제압하고 둔병(屯兵)에게 군수 물자를 공급하여 급할 때 책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니, 그러면 도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양은 지금 부사가 김장생(金長生)인데 그는 무마하는 일에는 능하지만 무략(武略)에는 부족하니 일을 감당해내지 못할 듯합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따로 합당한 조방장을 택하여 철원에 임명하고 이어 회양 부사 김장생과 서로 맞바꾼 뒤 신의 종사관(從事官)과 함께 공동으로 조치케 했으면 하는데, 그러면 강원도 안에서 양식을 마련하는 일이 매우 적절하게 이루어지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조방장으로 합당한 인물로는 그런 사람이 없지 않지만 일을 주관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찾기가 힘듭니다. 영흥 부사(永興府使) 이괄(李适)이 본래 일 처리하는 솜씨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지금 막 고령(高嶺)에서 영흥으로 옮겨 왔는데 또 회양으로 옮기게 한다면 정사(政事)하는 체모가 아닐 듯하고, 또 영흥 역시 중진(重鎭)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허완(許完)을 계청해서 보내고 싶은데, 반드시 직접 뵙고 곡절을 아뢰야만 명백하게 될 수 있겠기에 진현(進見)할 때를 기다리다 보니 아직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준겸(韓浚謙)이 이미 함경도 순찰사에 임명되었는데, 이괄이 한준겸에 대해서는 상피(相避) 관계에 놓여 있어 마땅히 체직될 혐의가 있으니 장차 직책없는 사람으로 될 것이고, 또 듣건대 지금의 부사직도 임기가 다 차서 체직될 예정으로 있다고 합니다. 이밖에 전 경상좌수사였던 이광영(李光英)도 재간과 국량이 있는 것으로 이름이 드러났으니, 즉시 유사로 하여금 이괄·이광영·허완 등 3인 중에서 적절히 비의(備擬)하여 한 사람을 택해 임명토록 하소서. 회양은 형세상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나 너무나도 결딴이 난 상태로서 아무도 없는 지역에서 일을 해 나가려면 비상한 수단을 동원해야만 될 것이기에 황공한 심정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양식을 비축해 군사를 양성하고 진을 설치해 제어할 계책을 십분 착실히 수행하여 기필코 효과를 보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82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570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庚戌十月初十日 丙子辛巳(都體察使啓曰: "前日榻前伏承聖敎, 欲於咸興近邑置一大鎭, 以爲聯綴之勢, 承命以來, 廣詢深思, 未得其宜。 蓋緣鐵嶺, 以南諸郡無一完邑, 難以着手, 名雖置鎭, 未見實效, 故未敢易言矣。 後聞議者多言: ‘朝廷設助防將於鐵原曠蕩之地, 去京都纔數日程, 形勢不便。 鐵嶺內外無一屯兵之所, 甚非得計。’ 此說似非偶然, 故通量江原道內得穀之宜, 略成頭緖, 方將啓稟覆議施行矣。 顧念置於淮陽, 然後其於控制嶺抱, 供奉屯兵, 以爲緩急策應之地, 不爲無助。 淮陽今府使金長生, 長於撫摩, 短於武略, 恐不堪事。 臣之愚意, 欲別擇助防將可當者, 以授鐵原, 仍與淮陽府使金長生相換, 與臣之從事官, 公同措置, 江原道內辦糧之事則甚爲得宜。 助防將, 可當者則不無其人, 至於幹辦之才, 未見其人。 永興府使李适素有幹才, 而新自高嶺纔移永興, 又移淮陽, 似非政體, 且永興亦是重鎭。 其次則欲以許完啓請以送, 而必須面稟曲折, 方得明白, 故佇竢進見, 未得其便矣。 今則韓浚謙旣授咸鏡巡察使, 李适於浚謙, 有相避當遞之嫌, 而將爲無職之員, 且聞今府使亦瓜滿當遞。 慶尙前左水使李光英亦以幹局著稱, 卽令有司就於李适、李光英、許完等三員中, 稱量滿 備擬, 擇一而授之。 淮陽形勢甚便, 而蕩敗已甚, 作事於無人之地, 非常手段所能辦, 惶恐敢啓。" 答曰: "依啓。 詩 峙糧養兵, 設防控禦之策, 十分着實爲之, 期見成效。")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82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570면
- 【분류】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