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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33권, 광해 2년 9월 5일 정미 7번째기사 1610년 명 만력(萬曆) 38년

5현을 문묘 종사하는 일로서 교서를 내리다

〈중외(中外)의 대소 신료·기로(耆老)·군민(軍民)·한량인(閑良人) 등에게〉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 등을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는 일로 교서를 내리기를,

"하늘이 대현(大賢)을 낸 것은 우연치 않은 일로서 이는 실로 소장(消長)의 기틀에 관계되는 것이다. 덕이 있는 자에게 상사(常祀)를 베풀어야 함은 의심할 나위가 없는 일이니 존숭하여 보답하는 전례(典禮)를 거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에 반포하여 귀의할 바가 있게 한다.

우리 동방을 돌아보건대 나라가 변방에 치우쳐 정학(正學)의 종지(宗旨)를 전수받은 일이 드물었다. 기자(箕子)에 의해 홍범 구주(洪範九疇)의 가르침이 펼쳐져 예의의 방도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라 시대의 준재들도 사장(詞章)의 누습(陋習)을 벗어나지 못했고,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천 년 동안에 겨우 포은(圃隱)108) 한 사람을 보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우리 조종(祖宗)께서 거듭 인덕(仁德)을 베푸시는 때를 만나 참으로 문명을 진작시키는 운세를 맞게 되면서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과 같은 다섯 신하가 나오게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제자(諸子)109) 가 전한 것을 터득하고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의 공을 이룩한 이들로서 그 법도가 매한가지이니, 참소하고 질시하는 무리들을 그 누가 끼어들게 할 수 있겠는가. 포부를 펴고 못 펴는 것은 시대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설령 한 시대에 굴욕스러운 일을 당했다 할지라도 시비는 저절로 정해지는 것이니 어찌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만 알 성질의 것이겠는가.

이황만 보더라도 양조(兩朝)의 인정을 받은 현신(賢臣)으로서 뜻은 삼대(三代)110) 를 만회하려는 데 있었는데, 그의 주장과 가르침을 보면 실로 해동의 고정(考亭)111) 이라 할 만하고, 잘못을 바로잡고 규계(規戒)를 올린 것은 하남(河南)정씨(程氏)112) 에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추증(追贈)하고 시호(諡號)를 내리는 일은 융성하게 거행했지만 단지 종사(從祀)하는 일만은 미처 행할 겨를이 없었다.

정덕(正德)113) 기원(紀元)114) 때에 처음으로 종사하자는 유신(儒臣)의 요청이 있었는데, 그뒤 선왕(先王)께서 즉위하신 초엽부터는 다사(多士)의 항장(抗章)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건대 그 거조를 경솔하게 취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하신 것일 뿐이니, 어찌 높이고 숭상하는 것이 지극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야 있겠는가.

내가 왕위를 계승함에 이르러 그들과 같은 시대에 있지 못함을 한탄하며 전형(典刑)이 나에게 있어 주기를 바랐으나 구천에서 다시 일으킬 수 없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이에 문묘에 종사하여 제사를 받들면서 백세토록 사표(師表)로 삼게 하는 동시에, 40년 동안 고대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응답하고 천만 세에 걸쳐 태평의 기업을 열 수 있도록 하리라 생각하였다. 이는 대체로 이만큼 기다릴 필요가 있어서 그러했던 것이니, 어찌 하늘이 아니고서야 그 누가 이렇게 하겠는가.

이에 금년 9월 4일에 증(贈) 의정부 우의정 문경공(文敬公) 김굉필, 증 의정부 우의정 문헌공(文獻公) 정여창, 증 의정부 영의정 문정공(文正公) 조광조, 증 의정부 영의정 문원공(文元公) 이언적(李彦迪), 증 의정부 영의정 문순공(文純公) 이황 등 다섯 현신을 문묘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에 종사하기로 하였다. 아, 이로써 보는 이들을 용동시키고 새로운 기상을 진작시키려 하는데, 이 나라의 어진 대부들은 그 누구나 모두 상우(尙友)115) 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고 우리 당(黨)의 문채나는 소자(小子)들은 영원히 본보기로 삼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이에 교시하는 바이니, 모두 잘 이해하리라 믿는다."

하였다. 【대제학 이정귀(李廷龜)가 지어 올렸다. 】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31책 564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인물(人物)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108]
    포은(圃隱) : 정몽주(鄭夢周).
  • [註 109]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제자(諸子) :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頣), 낙양(洛陽)의 정호(程顥)·정이(程頣) 형제,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희(朱熹) 등을 말하는데, 즉 송대(宋代) 성리학(性理學)의 대가들을 지칭함.
  • [註 110]
    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 시대.
  • [註 111]
    고정(考亭) : 주자(朱子).
  • [註 112]
    정씨(程氏) : 정자(程子) 형제.
  • [註 113]
    정덕(正德) : 명 무종(明武宗)의 연호.
  • [註 114]
    기원(紀元) : 1506 중종 1년.
  • [註 115]
    상우(尙友) : 옛 현인을 벗으로 삼음.

敎中外大小臣僚、耆老、軍民、閑良人等以從祀金宏弼鄭汝昌趙光祖李彦迪李滉等于文廟, 下敎書曰: "天之生大賢也不偶, 實係消長之機, 德必得常祀而無疑, 宜擧崇報之典。 玆用播告, 俾有依歸。 稽我東國之偏荒, 罕傳正學之宗旨。 疇布敎, 雖識禮義之方, 代蜚英, 未免詞藻之陋。 迄至季千載, 僅見圃隱一人。 洪惟祖宗熙洽之辰, 允屬文明振作之運, 有若、李五臣者出, 眞得諸子之傳, 格、致、誠、正之功, 其揆一也, 讒謟媢嫉之輩, 誰使參之? 窮通有時, 縱負一世之屈, 是非自定, 何待百年而知? 惟也, 遭遇兩朝, 其志則挽回三代, 立言垂訓, 實是海東考亭, 格非獻規, 不愧河南程氏。 肆竝隆爵諡之贈, 顧未遑俎豆之儀。 在正德紀元, 始有儒臣之陳請, 自先王初服, 屢見多士之抗章, 惟其擧措之難輕, 豈云尊尙之不至? 逮予緖, 恨不同時, 尙有典刑, 奈九之難作? 其從與享, 庶百世以爲師, 爰答四十載顒望之情, 擬啓千萬世太平之業。 蓋有待而然也, 庸非天而誰歟? 玆於本年九月初四日, 以贈議政府右議政文敬公 金宏弼、贈議政府右議政文獻公 鄭汝昌、贈議政府領議政文正公 趙光祖、贈議政府領議政文元公 李彦迪、贈議政府領議政文純公 李滉等五賢臣, 從祀于文廟東西廡。 於戲! 聳動觀瞻, 作新氣象, 是邦大夫, 賢者孰無尙友之心, 吾黨小子, 斐然永存矜式之地。 故玆敎示想宜知悉。" 【大提學李廷龜。】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31책 564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인물(人物)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