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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26권, 광해 2년 3월 23일 기해 10번째기사 1610년 명 만력(萬曆) 38년

남이공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남이공(南以恭)을 홍문관 부제학으로, 【대저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분당(分黨)된 이래 동인들이 잇따라 정권을 잡았으나, 동인은 남인(南人)과 북인(北人)으로 나누어졌고 북인은 소북(小北)과 대북(大北)으로 나누어졌다. 대북 중에는 골북(骨北)과 육북(肉北)이 있었고, 소북 중에는 또 청북(淸北)과 탁북(濁北)이 있었는데, 남이공은 청북의 괴수였다. 처음에는 이산해(李山海)로 괴수를 삼아 이이첨 등과 함께 유성룡을 공박하였고, 후에는 또 김신국(金藎國)의 무리와 더불어 홍여순(洪汝諄)을 공박하였는데, 산해와 이첨과는 서로 달랐다. 후에 이첨이 또 산해의 아들 경전(慶全)과 함께 여순을 공박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남인·북인, 대북·소북, 골북·육북이 나누어진 것이고 청북·탁북은 후에 영경(永慶) 시대에 일컬어진 것이다. 선왕조에 남이공이 홍여순과 혈전(血戰)하였으나 끝내는 민몽룡(閔夢龍)에게 당하여 여러 해 동안 벼슬을 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상이 즉위한 초기에 서용되었다. 당시 영경(永慶)이 이미 패하고 시사(時事)가 크게 변하자 모든 사람들은 말하기를 "일국(一國)이 새로 시작하는 초기이니, 당파의 흔적을 씻어내고 한마음으로 국사(國事)에 힘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첨과 이공은 각각 그의 무리들과 요직에 나누어 점거하였었다. 대개 정창연(鄭昌衍)과 유희분(柳希奮)이 그들의 괴수가 되었을 때에는 남인(南人)이 간혹 섞이었고 서인(西人)도 혹 등용된 자가 있었는데, 창연이 이조에서 체직됨에 미쳐서는 희분 등이 시론을 주장하여 대각(臺閣)에 영경(永慶) 시대의 사람이 많았으니, 이른바 청북(淸北)이다. 비록 영경의 당(黨)이라고 하지만 생각건대 그후 영경과 서로 달리하였고, 이공의 무리는 또 영경과 더불어 시종을 같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성과 덕망이 쇠하지 않아 다시 조정의 권력을 잡았으니, 전에는 김남(金南)이라 칭하더니 이제는 남박(南朴)이란 말이 있다. 이공의 사람됨은 재국(才局)이 있고 기백(氣魄)이 많으니, 사람들은 제어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하였다. 】 박이서(朴彛叙)를 형조 참의로, 【취미와 언론과 진퇴(進退)와 행지(行止)는 남이공과 같은데, 일을 다스리는 재능은 그와 비교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여러 해 동안 폐거(廢居)했었는데, 선조(先朝) 말기에 다시 서용되었다. 이 때에 이르러 시론(時論)을 주장하였으나 〈다만 논의가 화평 유지를 힘써 자못 함께 공경하고 협동하자는 뜻이 있었다.〉 . 】 윤길(尹)을 봉상시 정으로, 유색(柳穡)을 성균관 사성으로, 송영구(宋英耉)를 시강원 필선으로, 이욱(李稶)을 사헌부 장령으로, 김권(金權)을 여주 목사(驪州牧使)로 삼았다. 【김권의 사람됨은 선량하나 다른 재능이 없었다. 〈이이와 성혼을 존숭하여 현인이라 하였다. 일찍이 청반(淸班)에 들어가 시론(時論)에 이의를 제기하였고 당적(黨籍)을 좋게 여겨 백발이 되도록 어정거렸으나 다만, 문장과 뛰어난 재능이 없었다.〉 】


  •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31책 515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변란(變亂)

○以南以恭爲弘文館副提學。 蓋自東西分黨以來, 東人相繼用事, 而東分爲南北, 北分爲小北、大北。 大北中有骨肉, 小北中又有淸濁, 以恭淸北之魁也。 初以李山海爲首, 與李爾瞻等, 攻柳成龍, 後又與金藎國輩, 攻洪汝諄, 而與山海爾瞻相異。 後爾瞻又與山海慶全, 攻汝諄, 此乃南北大小北骨肉之分, 而淸濁則後來永慶 所稱也。 先王朝, 以恭汝諄血戰, 而卒爲閔夢龍所鏖, 坐廢累年, 今上初得敍。 時永慶旣敗, 時事大變, 衆以爲: "一國更始之初, 不可不洗滌痕跡, 同心國事。" 而爾瞻以恭, 各以其類, 分據要津。 蓋昌衍希奮, 爲之兩首也, 南人間雜, 而西亦或有用者, 及昌衍遞銓, 希奮等主張時論, 臺閣多永慶時人, 所請謂淸北也。 雖曰永慶之黨, 意者後來能與永慶相異, 而以恭輩則又不與永慶終始, 故聲望不替, 復執朝權, 前稱金南, 今有南朴之說。 以恭爲人, 有才局多氣魄, 人以爲難制之 云。 朴彛叙爲刑曹參議【氣味、言論、進退、行止, 與以恭同, 而 治事之才, 罕有其比。 廢居累年, 先朝末復敘。 至是主張時論, (但論議務持和平, 頗有寅協之意。)】, 奉常寺正, 柳穡爲成均館司成, 宋英耉爲侍講院弼善, 李稶爲司憲府掌令, 金權驪州牧使。 【爲人良善, 無他能。 (尊李珥成渾爲賢。 嘗入淸班, 立異時論, 甘心黨籍, 蹭蹬白首, 第不文無才華。)


  •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31책 515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