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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23권, 광해 1년 12월 21일 무진 1번째기사 1609년 명 만력(萬曆) 37년

유구 국왕이 조경 사신을 인하여 답한 자문의 내용

유구 국왕(琉球國王)이 조경 사신(朝京使臣)을 인하여 우리에게 자문(咨文)으로 답하였는데, 그 자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구국(琉球國) 중산왕(中山王)이 후한 인정에 감사하며 영원히 이웃간의 호의를 맺자는 일에 관한 내용입니다. 만력(萬歷) 34년100) 8월 14일 귀국의 자문에 의거하건대 ‘귀국과 폐방(敝邦)을 더듬어 보건대 영토가 끊겨져 있어 사사로이 교통하기는 어렵지만 정성스러운 뜻은 서로 믿을 만하여 피차의 간격이 없었습니다. 근년에 폐방의 절사(節使)가 귀국의 바다에서 표류하던 원역(員役)을 명나라로 데리고가 귀국으로 돌아가기 편하게 하였는데, 귀국도 또한 다시 이렇게 해주었습니다. 이로부터 매번 진공(進貢)과 연절(年節)을 인하여 서로 빙문(騁問)하면서 번갈아 배신(陪臣)을 교환했는데 인정과 의리가 더욱 돈독하였으니, 멀리서 바라보며 덕을 사모하는데도 다행스러움이 실로 많았습니다. 지금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후한 의물(儀物)을 받게 되었는데, 번봉(藩封)의 소중함을 유시하면서 우방의 정의를 거듭 언급하고 다시 적정(賊情)을 나누어 탐지하여 빨리 알리고 전하자고 하였습니다. 천하의 같은 무리는 화복(禍福)을 서로 함께해야 하니, 이치가 이와 같음이 마땅합니다. 이번에 동지 하례를 인하여 배신 홍준(洪遵) 등을 보내 명나라에 진공하고 이로 인하여 약간의 변변찮은 의물을 가지고 멀리 미미한 정성을 표합니다. 그리고 인하여 답하는 자문을 써서 배신에게 아울러 보내어 경사(京師)로 가져가게 하여 귀국의 사신에게 전해주게 했는데, 좌우에 도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했습니다.

나라에 도착한 뒤에 열거하신 열 가지 물품에 대해서는 후의에 감사하면서 길이 잊지 않겠습니다. 다만 살펴보건대, 폐방과 귀국은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명나라에 대하여 함께 신하라고 부르는 입장으로 본다면 같은 분야 안에 있는 것이니, 마음으로 서로 통하고 정신으로 서로 달려가 이성(異姓)과의 우호를 맺음에 있어 원근(遠近)을 이유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때문에 여러 번 후한 하사를 받았고 해마다 문안이 끊기질 않았으니, 폐방이 무엇을 잘하였기에 하집사(下執事)에게 이런 것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단 말입니까. 생각건대, 지난해에는 우리 백성을 살려주었고 뿐만 아니라 폐방이 큰 은혜를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받고 있으니, 많은 백성들의 자손이 하늘을 쳐다보며 멀리서 귀국에 대하여 사례하지 않는 이가 없어 죽교(竹橋)의 은혜가 쇠퇴하지 않을 것입니다. 올해에 또 조공하는 시기를 당하여 배신 정자효(鄭子孝)를 보내어 대궐에 나아가 바치게 하고 인해서 가져간 것을 귀국의 사신에게 전해 바치도록 하니, 살펴서 받아주기를 바랍니다. 하찮은 의물로 애오라지 조그마한 정성을 표하는 것이 매우 부끄럽기는 하지만 버리지 않는다면 다행이겠습니다.

폐방이 근년에 명나라로 부터 관복(冠服)을 내려받고 왕작(王爵)을 습봉(襲封)하도록 하는 은혜를 받아, 비로소 귀국과 함께 형제 나라로서의 떳떳함을 맺을 수 있게 되었으며 같이 울타리 구실을 하는 나라로서 중임을 맡은 신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천하가 태평하여 파도가 일지 않아 항해하는 배가 편안한 은혜를 입어 국가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니 적추(賊酋)가 의기를 상실하여 감히 다시는 사마귀처럼 무모하게 중원을 엿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명나라의 위엄스런 명령과 신령한 밝음으로 그들을 굴복시켜 편안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며, 우방이 화목하면 복은 저절로 이를 것입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맹약을 맺어 귀국은 형(兄)이 되고 폐방은 아우가 되어, 형제가 명나라를 부모처럼 우러러 섬기며 즐겁고 화목하게 빙문(騁問)하기를 청합니다. 하늘과 땅이 다하도록 함께하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자문으로 답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475면
  • 【분류】
    외교-유구(琉球) / 외교-명(明)

  • [註 100]
    만력(萬歷) 34년 : 1601 선조 34년.

己酉十二月二十一日戊辰琉球國王, 因朝京使臣, 咨覆于我。 其咨曰:琉球國 中山王爲答謝厚情, 永結隣好事。 萬曆三十四年八月十四日, 準貴國咨, 稱貴國、敝邦, 疆場有截, 義難私交, 而誠意相孚, 彼此無間。 近年以來, 敝邦節使, 將貴國漂海員役, 轉移天朝, 以便回國, 貴國亦復如之。 自是每因進貢、年節, 互相問, 替交陪臣, 情義益敦, 望風慕德, 爲幸實多。 今蒙厚儀, 又出心貺, 諭以藩封之重, 申之友邦之誼, 更分探賊情, 馳奏轉示。 天下同倫, 禍福相濟, 理宜如此。 玆者爲緣賀至, 委差陪臣洪遵等, 進貢天朝, 因此略將薄儀, 遠表微忱。 仍修復咨, 倂付陪臣, 着令齎付京師, 轉交貴使, 庶幾得達左右等情。 "到國隨將後, 開十種物件, 感謝厚意, 垂之不朽矣。 但照敝邦與貴國, 雖有風馬牛之隔也者, 然自同稱臣于天朝視之, 則共在覆載之內, 以心相照, 以神相馳, 合異姓之好, 不以遠近隔耳。 是故屢蒙厚貺, 歲問不絶, 敝邦何修, 得此于下執事哉? 緬想先年, 活我黎庶, 匪敝邦戴荷洪恩, 于玆未艾, 則黎民子孫, 無不仰天遙謝貴國, 竹橋之恩爲不替也。 今歲又當貢期, 差遣陪臣鄭子孝, 詣闕獻納, 仍付齎上貴國使馳獻, 乞爲鑑納。 深愧菲儀, 聊申微忱, 幸毋棄之。 敝邦邇年, 荷天朝頒賜冠服、襲封王爵, 始能與貴國, 締兄弟之雅, 同藩之朝, 爲股肱臣子。 且蒙海不揚波, 舟楫安寧, 國泰民安, 賊酋喪膽, 不敢復挺螳臂以睥睨中原。 顧天朝威命、靈爽, 有屈服之, 亦友邦和睦, 福有自來矣。 自今以往, 請結永盟, 貴國爲兄, 敝邦爲弟, 以弟兄而仰事天朝父母, 歡睦騁問。 願與天長地久之耳, 爲此咨覆。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475면
  • 【분류】
    외교-유구(琉球)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