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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19권, 광해 1년 8월 25일 계유 1번째기사 1609년 명 만력(萬曆) 37년

용인에 사는 향화인들의 횡포에 대한 이주책을 비변사가 건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지금 경기 감사 김신원(金信元)의 첩정(牒呈)을 보니 ‘용인(龍仁)에 거주하는 향화인(向化人) 박길상(朴吉祥) 등 10여 호의 남녀 합계 80여 명이 고을 5리 안에 있는 장터 큰 길가에 거주해 살아온 것이 이제까지 7, 8년입니다. 그곳은 크고 작은 행인들이 밤낮으로 오고가는 곳인데, 길상 등이 수하 16, 18명을 거느리고 밤에 산행(山行)을 한다고 칭하면서, 어떤 자는 말을 타고 어떤 자는 걸으며 혹 활과 화살을 들거나 혹 장검과 몽둥이를 들고, 무리를 지어 행인이나 짐을 쫓아가 약탈하였는데, 이렇게 한 것이 지난 봄부터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읍내의 원전(元田)을 이유없이 뺏어 경작하거나 무성하게 자란 벼곡식을 공공연히 베어가며, 수많은 우마(牛馬)를 멋대로 놓아서 기릅니다. 백성들의 고발장에 따라 매번 차인(差人)을 보내 부르면, 문득 관차(官差)를 구타하여 손을 쓸 수 없게 만듭니다. 심지어는 나무하고 소먹이는 촌사람들조차 감히 혼자 출입을 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앞으로 시골의 도적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 우려되니, 후환을 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본 고을의 향화인이 부리는 폐단이 점차 만연하여 매우 걱정스러우니, 미리 선처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양호(兩湖)의 가까운 곳에 옮겨 각 고을에 나누어 둠으로써 무리를 지어 횡행하지 못하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향화 호인(向化胡人)들이 내지에 뒤섞여 있어 끝내 점차 세력이 커지는 걱정은 예로부터 있었다. 이제 마땅히 멀리 떨어진 절도(絶島)에 나누어 두어 진압하기 어려운 폐단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경기 근처에 살고 있는 종족은 점차로 딴 곳으로 옮기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149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449면
  • 【분류】
    호구-이동(移動) / 외교-야(野) / 사법-치안(治安)

己酉八月二十五日癸酉備邊司啓曰: "今見京畿監司金信元牒呈, 則‘龍仁接向化朴吉祥等十餘戶, 男女竝八十餘口, 邑底五里場內大路邊居生, 于今七八年。 大小行人晝夜連續, 吉祥等率下十六七八, 稱夜山行, 或騎或步, 或持弓矢, 或持劍杖, 行人卜物作黨追逐, 出沒劫奪, 如是者自前春尤熾。 邑內元田無端劫耕, 茂盛禾穀公然刈取, 許多牛馬任意放畜。 從民告狀, 每每發差招致, 則輒打官差等無數亂打, 使不得下手開口。 至於樵牧村人等, 亦莫敢孤單出入。 將來之慮, 不止草竊而已, 後患不可不防。’ 事牒報 矣。 本縣向化作弊, 漸至滋蔓, 極爲可慮, 不可不預爲善處。 姑令移送兩湖 , 分置各邑, 俾不得成群橫行何如?" 傳曰: "向化人雜處於內地, 竟致滋蔓之患, 自古有之。 今宜分置邊遠絶島, 俾無難圖之弊。 畿甸所居之種, 漸次移送于他處。"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149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449면
  • 【분류】
    호구-이동(移動) / 외교-야(野) / 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