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규의 일로 인해 자신의 파직을 행 대사간 이필영이 요청하다
〈행 대사간 이필영(李必榮)이 아뢰기를,
"신이 정유년041) 가을 외람되이 한원(翰苑)에 있을 때 신구 관원의 취재(取才)하는 일로 비변사에 갔었는데, 한 사람이 평량자(平涼子)를 쓰고 마포의(麻布衣)를 입고 방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신이 낭청에게 묻기를 ‘저 사람은 누구인데 무슨 일로 왔는가?’ 하였더니, 답하기를 ‘곽규(郭珪)라는 사람인데, 기복(起復)하여 소모관(召募官)으로 삼아달라 요구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신은 놀라움을 이기지 못해 혼자 마음속으로 여기기를 ‘부모의 상은 진실로 정성을 다해야 할 일인데, 조정에서 억지로 기복을 시킨다 해도 자신의 출처(出處)가 국가의 존망과 관계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고사하여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다. 저 하찮은 일개 소관(小官)이 국가의 성패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감히 기복을 도모한단 말인가.’ 하고는, 마음으로 항상 그의 사람됨을 통렬히 미워하였습니다.
마침 전날 동료들과 이 일을 언급하여 그의 죄를 탄핵하여 바로잡으려 하였는데, 이제 곽규(郭珪)가 스스로 해명하는 말이 그의 부모는 모두 난리 전에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말을 해준 그 사람이 잘못 안 것인지, 신이 잘못 들은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매우 괴이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가 스스로 해명한 것이 매우 자세하니, 신이 어찌 감히 스스로를 옳다고 하여 다른 사람을 지극히 원통한 처지에 빠지게 한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도리어 신이 들은 것이 잘못되었는가 의심하여 바야흐로 그 사실을 확인하고 허물을 자인하고자 했는데, 이내 들으니 며칠간 지체하는 것을 원망하여 곽규가 공공연히 더러운 말로 비난했다고 합니다. 또 그와 친한 사람을 사주하여 신이 스스로를 탄핵하도록 위협하기를 못하는 짓이 없이 한 데다가, 또 위협하고 욕하는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신이 곽규에 대하여 애초에 터럭만한 미움도 없었습니다. 다만 악을 미워하는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같은 것이어서 발론하였던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를 모함하려는 뜻이 있었다면, 어찌 고를 수 있는 다른 말이 없어서 꼭 이 일을 가지고 말을 했겠습니까.
이것은 모두 신이 용렬하고 못나 신중하지 못함으로써 사람을 사실과 다르게 논박하여 남의 심한 비난을 초래한 결과입니다. 낯두껍게 그대로 직책에 있을 수 없으니, 신의 파직을 명하시어 망언하는 자의 경계가 되도록 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기다렸다.〉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113장 B면【국편영인본】 31책 445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註 041]정유년 : 1597 선조 30년.
○(行大司諫李必榮啓曰: "臣於丁酉秋, 忝冒翰苑, 以新舊取才事, 往詣備邊司, 則有一人戴平涼子, 穿麻布衣, 坐于房裏。 臣問于郞廳曰: ‘這是何許人, 來幹何事?’ 答稱: ‘郭珪其姓名, 而將要起復爲召募官’云。 臣不勝驚駭, 私語于心曰: ‘親喪固所自盡也。 自朝廷勒指起復, 一身出處非關國家存亡, 則猶可以固辭而止耳。 彼幺麽一小官, 何預於成敗之數, 而敢圖起復也?’ 心常痛嫉其爲人。 適於頃日, 與同僚言及此事, 駁正其罪, 今珪自明之言, 渠之父母俱死於亂前。 無乃彼言之者誤認耶? 臣之聽之者錯聞歟? 是未可知, 殊極怪也。 然渠之自明甚悉, 臣何敢自以爲是, 而不動念於人之至冤之地哉? 臣反疑臣之見聞之謬, 方欲得其實而引咎, 旋聞珪怨其遲延數日, 公然醜詆。 又嗾其所親者, 脅臣自劾, 無所不至, 且劫辱之言, 不一而足。 臣之於珪, 初無纎芥之嫌, 只以嫉惡之心, 人所同得而發。 若或有意傾陷, 則豈無他辭之可摭, 而必以此而爲之說哉? 此無非臣庸蠢無狀, 不能愼重, 論人失實, 厚招人謗。 不可靦然仍冒, 請命鐫罷臣職, 以爲妄言者之戒。" 答曰: "勿辭, 退待。")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113장 B면【국편영인본】 31책 445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